김도영의 40홈런
야구의 시선 제71화
- 김도영의 40홈런
야구에는 참 묘한 숫자가 있다.
3할, 20승, 30도루, 40홈런...
숫자 하나가 선수의 한 시즌을 설명하고, 때로는 한 선수의 이름을 역사 속에 새겨 넣는다.
2026년 9월 6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 이날 수많은 KIA 팬들의 시선은 오직 하나의 숫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40.’
김도영의 시즌 40번째 홈런이었다.
그것도 그냥 40홈런이 아니었다.
1999년 이승엽이 세운 KBO 최연소 시즌 40홈런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8월 26일 롯데전에서 시즌 39호 홈런을 때린 뒤 남은 것은 단 한 개였다. 이날까지 홈런을 친다면 김도영은 22세 11개월 4일로 새로운 최연소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한 개’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39호 홈런 이후 비로 경기가 네 차례나 순연됐다. 기회 자체가 줄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였던 KT와의 주말 3연전.
팬들은 김도영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숨을 죽였다.
홈런 하나만 나오면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야구는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 홈런은 없었지만, 김도영은 완벽했다
9월 6일 KT전.
김도영은 3번 타자 3루수로 출전했다.
첫 타석 좌전 안타.
두 번째 타석도 좌전 안타.
세 번째 타석에서는 중전 안타.
네 번째 타석에서는 KT가 아예 김도영과 승부하지 않았다. 자동 고의4구였다.
그리고 8회 마지막 타석.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
홈런을 치면 기록이고, 치지 못하면 이승엽의 기록을 넘어설 기회는 사라진다.
김도영의 타구는 담장을 향하지 않았다.
투수 강습 내야안타였다.
그렇게 최연소 40홈런 기록 도전은 끝났다.
그런데 스코어보드를 다시 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4타수 4안타, 1볼넷, 3득점.
다섯 번 타석에 들어가 다섯 번 모두 살아 나갔다. KIA는 KT를 8대3으로 꺾었고 주말 3연전을 모두 가져갔다. 김도영은 홈런을 하나도 치지 않고도 팀 승리의 중심에 있었다. 카스트로 역시 2루타 3개를 포함해 4안타 6타점을 쓸어 담았다.
‘실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경기였다.
어쩌면 그래서 이날의 김도영이 더 인상 깊었다.
- 기록을 의식하는 순간 야구가 어려워진다
39번째 홈런까지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40번째부터는 달라졌다.
김도영 자신도 기록을 의식했다고 털어놓았다. 타석에서 평소 자신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홈런은 ‘치려고 한다고 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홈런을 의식하는 순간 타격 메커니즘은 조금씩 흐트러질 수 있다. 공을 오래 보고 자신의 스윙을 해야 하는데, 타구를 띄우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팬들의 기대도 커진다.
언론에서는 매일 기록을 이야기한다.
경기장은 매진된다.
자신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수만 명의 관중이 홈런을 기다린다.
스물두 살의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였을 것이다.
김도영은 경기 후 자신이 깨달은 것을 말했다.
‘왕관의 무게.’
기록을 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 이승엽을 넘지 못한 것이 정말 실패일까
야구팬들은 기록을 좋아한다.
누가 가장 빨리 40홈런을 쳤는지, 누가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기록했는지, 누가 가장 많은 안타를 쳤는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선수의 가치를 숫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김도영은 최연소 40홈런 기록에서는 이승엽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시즌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더 의미 있는 도전들이 남아 있다.
KIA 구단 역사에서 40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1999년 외국인 타자 트레이시 샌더스뿐이다. 김도영이 한 개를 더 치면 KIA 역사상 최초의 국내 선수 시즌 40홈런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홈런왕 경쟁 역시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9월 6일은 기록 도전의 ‘끝’이라기보다 다른 야구의 시작에 가깝다.
‘최연소’라는 두 글자를 내려놓았을 뿐이다.
40홈런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고 시즌도 끝나지 않았다.
- 오히려 네 개의 안타가 좋았다
이날 김도영의 경기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홈런이 아니었다.
네 개의 안타였다.
모두 짧고 정확한 타격이었다.
홈런을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안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의 본질에서 보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타격이었다.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자신이 칠 수 있는 공을 정확하게 때리고, 출루해서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연결한다.
그리고 뒤에 카스트로가 있었다.
KT가 6회 김도영을 고의4구로 내보내자 카스트로가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8회에는 김도영이 안타로 출루한 뒤 카스트로가 다시 2루타를 터뜨렸다.
‘김도영을 피하면 카스트로가 친다.’
상대 투수에게는 가장 곤혹스러운 타선의 모습이다.
개인의 기록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이런 연결이다.
KIA가 KT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상위권 경쟁에 다시 힘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기록을 내려놓자 다시 김도영이 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김도영은 "기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서 한 선수의 성장을 본다.
‘40홈런을 빨리 쳐야 한다.’
‘이승엽을 넘어야 한다.’
‘오늘 반드시 쳐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씩 쌓이면 야구가 야구가 아니라 숙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김도영은 이제 그 숙제에서 벗어났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단순하다.
공을 보고, 치고, 달리고, 팀을 이기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기록을 잊었을 때 기록은 다시 따라오기 마련이다.
- 야구는 숫자로 기억되지만 숫자로만 남지 않는다
이날 김도영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최연소 40홈런’이라는 항목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날 경기가 훗날 김도영에게 중요한 하루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2세 11개월의 젊은 타자가 자신을 짓누르던 기록의 무게를 경험했고, 그것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39와 40 사이에는 홈런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선수에게 그 하나는 때때로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다.
그 거리를 억지로 건너려고 할수록 담장은 더 멀어진다.
김도영은 결국 그 담장을 넘지 못했다.
대신 네 번의 안타를 치고, 다섯 번 출루하고, 세 번 홈을 밟았다.
그리고 팀은 이겼다.
어쩌면 야구가 김도영에게 가르쳐준 답은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록을 만들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야구를 계속하다 보면 기록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최연소 40홈런은 놓쳤다.
하지만 스물두 살 김도영의 야구는 이제부터가 더 길다.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은 김도영이 앞으로 어떤 타자가 되어갈지,
나는 40번째 홈런보다 그것이 더 궁금하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