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더 나았을까. 그는 더 이상 소식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친구의 SNS 팔로우를 취소해버렸다. 그것이 절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 사소한 연락도 주고받지 않게 됐다.
그는 사실 친구와 꽤 가까이 지냈다. 언젠가 집으로 초대해 해물탕을 끓여 대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해감이 덜 된 조개를 넣은 탓에, 친구는 자잘한 모래를 연신 씹어야 했다. 그럼에도 친구는 계속 숟가락을 들었고, 오히려 그가 친구를 말렸다. 그는 자신을 배려하는 친구에게 다정함을 느꼈다. 그제야 제대로 조개를 해감하는 법을 배우게 된 그는 친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했고, 그것을 좋아하려고 애썼다.
애초에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그도 좋아하려고 애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의 배려가 따뜻했을지라도, 태도의 차이는 만남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태도의 차이란 사실 미디엄 웰던과 미디엄 레어의 스테이크 굽기처럼 취향의 차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접시 사이의 거리는 이미 일곱 번을 접은 종이처럼 더는 접히지 않아 이보다 가까워질 수 없는 상태 같았다. 일곱 번이 아니라 여섯 번이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얼 먹고 마시면 좋을지, 그런 것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견해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그는 친구와 만날 때마다 내심 자신의 지갑 사정을 걱정했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자리라면 더 좋을 텐데, 하고 망설이고 있는 찰나였다. 친구는 네가 먹지 않거나 남기더라도 괜찮아, 그런 말을 하며 주문을 망설이지 않았는데, 그는 되레 알게 됐다: 어쩌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달라질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돌아보면 그는 친구에게서 보이던, 그와는 미묘하게 다른 태도가 늘 껄끄러웠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 꿈을 대하는 태도, 돈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그랬다. 그에게 무거운 것은 친구에게는 가벼운 것이었고, 그에게 떠 있는 것은 친구에게는 내려앉은 것이었으며, 그에게 우연인 것은 친구에게는 필연인 것이었다. 그는 마치 천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장이라면 분명 반대편에서는 바닥일 테다, 그는 넘을 수 없는 층간의 두터운 콘크리트를 느꼈다. 어딘가 낯선 그것은 그저 둘의 자라온 환경이 다른 탓이겠거니, 지레짐작해버리고 그는 마음을 닫았다.
관계란 꼭 주고받아야만 세워지는 것이 아닐 테지만, 그는 주고받은 것들을 저울의 양쪽에 달아보곤 했다. 저울이 크게 기우는 것은 좋지 않아, 어리석게도 그는 저울을 그대로 두어버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선물이라는 것이 그랬다. 메신저에 문득 어느 친구의 생일이라는 소식이 뜨면 그는 잠시 고민했다. 정말 친했던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어쩌다 연락이 뜸해진 사이인데 지금 선물을 해도 될까, 하지만 그 친구가 내 생일을 기억해 줄까, 예상에 없던 지출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선물하는 데에도 꽤나 인색했다.
그는 결혼식에도 잘 가지 않는다. 그건 그가 게이라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서로가 성소수자임을 알고 친해진 사이를 제외하고, 그는 누구에게도 스스로 게이라는 걸 밝힌 적이 단연코 없다. 그래서 그는 결혼식에 가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 있는 자신의 답답한 처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 거라며 쓸쓸해했다― 아직 이성 간이 아닌 결혼식에는 가본 적 없지만.
어쩌다 결혼식에 가게 된 때에 그는 자신은 받아볼 수 없는 축의금을 봉투에 담으면서, 이 정도면 섭섭해하지 않겠지,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을 하면서도 복잡해진 마음을 알아차리곤 했다. 그는 분명 진심을 다해 축하를 건네기는 했지만, 자신이 앉은 하객석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는 결혼을 축하하는 데에도 꽤나 인색했다.
유대란 무엇인가, 유대에는 조건이 있는가.
그에게 우정은 어렵다. 친구라는 것이 이렇다 단정할 만한 존재도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 쯤이야 잘 알지만, 갈망하는 존재가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친구를 갈망한다.
그는 친구가 많은 사람을 보면 부러워한다. 깊은 사이든 아니든, 주변에 친구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점이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갈망하는 친구의 모습이 따로 있는 듯하다. 그저 괜찮은 사이라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해서, 주변에 많은 사람을 두지 못한다. 죽는 날까지 갈망을 채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친구 사이를 망친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니까, 하며 두려워하지 말자 다짐도 했지만, 이미 덕지덕지 붙어버린 유대의 조건. 떼어버릴 수 없는 유대의 조건이 퍽 까다롭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어느 주말 아침, 그는 외로움을 한가로움이라 오해하며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그가 보게 된 사진은 중학교 때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던 친구가 어린 자식과 함께 간 놀이공원에서 올린 것이었다. 한가로움이 사실 외로움이었음을 알아차렸을 즈음, 특별할 것 없던 그 사진은 문득 친구 사이에 이런저런 조건을 다는 일을 떠올리게 했다.
분명 그는 그 사진을 올린 친구의 결혼식에도 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불편했을 하객석이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는 것이 오히려 적당하다 여길 정도로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 사이가 돼버렸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각별하고 소중한 친구다. 친구의 집에 걸린 웨딩 사진이든, 미처 얘기하지 못한 그의 정체든, 꿈이든 직업이든 무엇이든 그건 상관할 것이 아니었다. 잊히지 않은 것은 학교 끝나고 함께 먹던 떡볶이 한 접시, 체면 차릴 필요 없이 함께 불렀던 노래 한 소절, 자주 늦는 그의 습관 때문에 종종 들었던 친구의 불평 한마디였다.
어떤 조건에 들어맞지 않아도 예고 없이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사이가 있다. 무엇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 사이가 있다.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는 저울을 그대로 두어버리는 법에 대해 떠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어느 주말 아침에 그는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