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이나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며 함께 놀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에도 죽이 잘 맞아서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기 때문에 같이 놀지 못한다고 했다. 궁금했던 나는 친구를 따라 함께 교회에 가기로 약속했다. 일요일, 나는 아침부터 배가 무척 아팠다. 체한 느낌이라거나 소화가 안 되어 쓰린 정도가 아니라, 뭔가 심각한 이상이 생긴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그 친구의 집에 전화를 걸어, 오늘 교회엔 못 간다고 전했다. 오후 두 시쯤 됐을까, 움켜쥐고 있던 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다.
어릴 적, 나는 친척 집에 방문해 사촌 형제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어느 친척 집에 놀러 갔을 때, 그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친척들이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사촌 형제들을 따라 함께 교회에 갔다. 교회의 어느 방안에는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 한 명과 나와 같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곳에서 그 20대 청년은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놀이를 곁들인 방식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선행과 악행,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에 대해 설교했고, 나는 제법 열심히 듣긴 했으나, 어떤 것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가족들 앞에서 교회에 대한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배운 클래식 음악은 서양에서 왔고, 대부분이 유럽 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몇백 년 전 유럽의 음악이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으로 나뉠 만큼 교회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중세 시대, 트라이톤(증4도 또는 감5도)은 악마의 음정이라 불렸다.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믿은 3박자를 2박자보다 신성하고 완벽한 박자라 여겼으며, 신이 부여한 완벽한 악기인 목소리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는 성악을 기악보다 우월한 것이라 보았다. 한때 음악은 주인이 있는 것처럼, 음악으로써 신을 거스르는 행위를 해선 안 되었다.
인류 역사와 함께 음악도 많은 변화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많은 음악가들은 음악을 신앙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한다. 특히 클래식은 아직까지도 교회와 밀접해서, 내 주변의 음악인들은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교회를 다니다가 음악을 배우게 된 건지 아니면 교회를 통해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건지, 아무튼 내가 배우는 음악에는 교회가 영원히 따라붙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런 것이, 클래식에는 교회로 인해, 교회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많다.
나의 예전 피아노 선생님은 레슨 시간에 매번 찬송가를 치게 했다. 처음엔 그저 초견 연습으로 시작했지만, 그 정도 난이도의 곡을 초견으로 연주하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시험이 임박했거나 연습이 잘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상황이면, 찬송가를 치던 내 손을 붙들고서는 앞날을 잘 보살펴 달라며 기도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종종 네 안의 예수님과 만나야 한다며 교회에 다닐 것을 계속 권유했다. 나는 선생님의 애틋한 마음이 고마웠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동안 내가 음악을 배운 것은 그저 예술이라는 행위로부터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었다. 옥타브를 비대칭적으로 분할하는 7음음계로부터 발생한 조성 체계의 모순이 즐거웠고,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움직임까지도 내 미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알맞았다. 바흐의 완벽한 작품 속 신을 찬양하기 위한 수비학이나 수사학적 기법은 대단히 놀라웠지만, 내게는 추상 속에서 붙잡은 질서 외에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18살 등굣길에서 감탄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하느님을 향한 외침도 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이 없는 세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기로 한 약속을 앞두고 움켜쥐었던 배가 도로 말짱해진 것은, 일종의 암시였을지도 모른다. 몸의 일에 뜻을 붙이다니, 신을 믿는 사람이나 할 법한 해석이지만. 그동안 내 삶에 신은 없었다. 나의 부모와 형제에게도 신은 없었으며, 그들은 신을 찾지 않는다. 어떤 것도 신에게 묻지 않는다. 신이 없는 세계를 받아들인다.
나는 닿기를 바랐던 것 같다. 친척 집에서 식전 기도를 할 때도, 피아노 선생님이 내 손을 붙잡았을 때도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예의에 불과했을까. 무엇 하나 닿지 않았다.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는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손으로 모아 쥔 공기 한 줌은 나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 일요일처럼 배가 아프고, 또 말짱해진다. 내가 모아 쥔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신을 찾지 않게 만들었을까. 우연인가, 아니면 태도나 의지인가, 그것도 아니면 타인인가. 차고 넘치는 부정적 경험들이 상통하는 지점, 내가 게이이기 때문인가. 나를 원하지 않는 신, 나도 원하지 않게 된 것인가. 차별을 이겨내는 것만도 나는 힘들어, 하지만 성소수자라도 종교인인 경우는 흔하다. 그렇다면 이 단절감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신이 죽은 삶, 그렇다고 초인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고독을 느끼면서도 신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어색함을 숨길 수 없다. 내가 찾는 위안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