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습 노트는 바카라상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쌓였고,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은 연필을 쥘 때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는 세 명의 선생님을 사사했는데, 선생님들께 레슨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하루에 두 번 이상의 레슨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면 많은 시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허비해야 했지만, 그는 연습 노트를 꺼내 무릎에 두고 앉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못다 한 숙제를 하곤 했다. 매일매일 자신의 게으름과 싸웠다.
시험을 끝낸 그는 불안에 빠졌다. 자신이 했던 실수와 오답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입학시험은 일 년에 단 한 번 뿐이기에 그냥 아쉬움으로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는 특히 청음 시험에 약했다. 그 음이 아니었는데, 그 박자가 아니었는데, 하며 자신이 쓴 답을 고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고치지 않은 몇 개의 음들은 지난 삼 년을 반성하고 이후의 일 년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있을 때쯤, 그는 합격 소식을 받았다.
괴로웠던 지난 시간이 무색해졌다. 그는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할 정도여서,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 맞는지 의심했다. 의심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의 부모님은 크게 기뻐했다. 잘됐다, 두 분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회사 사람들에게 한턱내며 경사를 축하했고, 그의 어머니도 어딜 가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는 안심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에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대학 생활에 대해 토로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 좋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는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것이 어려움을 버티게 하는 이유임을 설명했다. 그가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과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괴로워했던 때에 대해 늘어놓자,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어머니가 말했다. "너만큼, 너보다 더 한 애들도 떨어졌어. 운이 따라준 거니까 감사해야지." 그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건 행운이 아니야. 서랍 한 칸을 채운 노트와 굳은살은 운으로 설명되지 않으니까.
대화를 마친 후에 그는 대학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에게 들었던 말이 "잘했다"나 "수고했다"가 아니라 "잘됐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머니의 말이 겸손을 의미하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아직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회사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한 것이 결실이 아니라 행운이던가.
그는 작곡을 전공으로 삼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의 굉장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래서 사실 전공 공부에 있어서 부모님의 정서적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였다. 진로에 대한 적극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그가 작곡을 전공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특히 어머니는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그에게 투자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런 속내는 결국 그의 마음속 빼내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저 음악을 좋아했을 뿐이었는데도, 부모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더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부모님은 그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크게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잘 헤쳐나갈 것임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열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이미 그런 훈육 방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TV에 푹 빠져 있던 그에게 시청 시간을 하루 최대 한 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했던 부모님이, 언젠가부터 그 시간을 넘겨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따끔하게 혼났을 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부모님의 선택이 통했음을 알게 되었다. 몇 시간이고 얼마든지 TV를 봐도 괜찮았지만 막상 실컷 보고 나니 질려버리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모님의 현명한 태도는 그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쥐어준 셈이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던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비가 오는 날 우산 밖으로 내쳐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 뒤 부모님의 기뻐하는 얼굴 앞에서 그가 느꼈던 것이 행복이 아니라 안심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우산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진로에 관한 것이라면 스스로 비용과 수익을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부모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걸 바카라임이라 불렀다.
세 명의 선생님의 눈에는, 제 두 손으로 우산을 만들고 있는 아이가 얼마나 서툴고 어리석어 보였을까. 어른스럽지 않은데도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는 아이, 그는 의무감에 늘 짓눌려 있었다. 그 의무감 때문에, 어리광 부리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그걸 그는 바카라임이라 불렀다.
자식을 향한 훌륭한 인내와 믿음은 또한 그 정도에 있어 형제간에도 차이가 존재했다. 그의 형은 그와 달리 조급해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형을 안타까워하며 적성을 찾고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기회와 도움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당연하게도 성격이라든가 흥미나 적성 따위가 분명 많이 다르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그런 부모님의 태도에 크게 서운함을 느꼈다. 돌아보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받는 것에도 늘 순서가 있었다. 형이 받는 세뱃돈은 동생보다 단돈 천 원이라도 더 많았어야 했다.
그것이 많은 부모가 첫째와 둘째에게 흔히 느끼는 각별함의 차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운한 감정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 걸림돌 때문에 실패를 너무나도 두려워했던 자신이, 입학시험에서의 실수 하나를 용납하지 못했던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언제나 그를 작게 만들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낸 것을 자랑했을 때도, 혼자 준비한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을 자랑했을 때도 아버지는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문제 풀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 방식이나 콩쿠르에서의 경쟁 상대 수를 꺼내며 지적하고는 대단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또 그가 마늘과 양파를 잘 먹지 못한다거나, 독특한 말투 때문에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거나 하는 약한 점을 보일 때에도 어머니는 그를 감싸주지 않았다. 그의 약한 점은 어머니가 이모들이나 동창 친구들에게 꺼내놓기 좋은 화젯거리에 불과했다. 나중에 그가 마늘과 양파를 잘 먹을 수 있게 되고, 소중한 친구를 만나 우정을 키우기 시작했음에도 그는 부모님 앞에서 늘 작은 존재였다.
부모님은 때때로 그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그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 무덤덤한 편은 아니었기에 작은 일에도 앓는 소리를 잘 내곤 했지만, 어떤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가 실수로 면도칼에 살을 베어 아파했을 때, 어머니는 상처를 보고 말했다. "칠칠치 못하게."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끝내 말을 삼켰다. 계단에서 크게 넘어져 다쳤을 때도, 환절기에 목감기에 걸렸을 때도 어머니는 네가 조심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예고 없이 자취방을 찾아오는 것이 불쾌해 미리 연락 주고 방문해 달라 말했을 때는 어머니는 예민하게 굴지 말라며 다그쳤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인생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잘못된 결정이나 불운한 일에 누구보다도 깊게 후회하곤 했다. 부모님에 따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그가 겪는 우울 및 불안 증세에 대해 부모님에게 가볍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상담사를 만나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 사실을 듣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듯했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이번에는 부모님이 그의 문제에 대해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 뒤, 부모님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히 말을 꺼내면서도, 작은 일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너의 성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며 이야기했다. 그날은 마침 상담사에게 자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세상의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고 온 날이었어서, 그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마음이 다시 심란해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소중한 친구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단 한 번도 자신이 게이인 것과 같은 자아에 대한 고민을 부모님에게 말한 적이 없다. 솔직하게 말할 자신도 없거니와, 부모님에게 털어놓는 것이 그에게 안도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 눈에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 그 사람의 인정 속에서 얻게 되는 긍정과 당당히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 그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혼자 피로감을 견디는 쪽을 택했다. 부모의 존재는 일부분일 뿐이라면서 합리화해버리고는, 그냥 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릴 적 잡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고,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할 뿐이다. 때때로 왜 나에게는 인내와 믿음이 허락되지 않는 건지, 궁금해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에게 돌아올 그 대답은, 이미 그에게 들어와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는 스스로에게만 질문한다. 믿지 않는 신에게도 묻지 않는다. 질문에 지친 그는 때때로 의지할 곳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기댈 곳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어 줄 수 없다.
어른이 된 그는 부모에게도 그들의 사정이 있을 거라며 짐작하지만, 그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부모를 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