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종소리와 함께 꽃집에 들어온다. 그는 선물용 꽃을 원한다며 오른쪽 선반 마루 꼭대기 화병에 꽂힌 공작 털을 가리켰다. 이어 왼쪽 선반에 진열된 리시안셔스, 다알리아, 아스틸베 등 꽃들을 호명하며 원하는 부케를 그려냈다. 설명에 거침이 없었고, 익숙한 듯 꽤 능숙해 보였다. 꽃 선물의 경험이 많았던 사람임이 분명했다. 앳된 얼굴의 청년은 플로리스트가 만드는 부케를 옆에서 차분히 지켜보다, 완성된 공작털 부케 한아름을 안고 가게 문을 나섰다. 예전 스타쥬(stage) 인턴 실습을 하던 프랑스 꽃집에서의 일이다.
연륜 없는 나이에도 자신의 취향을 주저 없이 얘기하는 청년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탓일까? 노곤해 스러져 자던 날들과 달리 그날 밤은 곰곰 생각이 들었다. 30대 중반에도 자신의 취향을 알지 못하는 상반된 내 모습과 달라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꽃학교에 다녔지만 단박에 내 스타일을 요구할 만큼의 취향이 그때 당시엔 없었다.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어떤 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후보군을 얼버무리다 좋아하는 몇몇 꽃 이름과 색을 나지막이 얘기했을 법한 시기였다.
그날 이후 작고 소소한 것을 내게도 질문하며, 나만의 주파수를 맞춰 보기로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은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어색했다. 타인에게만 향하던 질문을 조금씩 나에게 돌리며 익숙해지는 시간을 채워갔다. 그처럼 ‘거침없는 취향’을 갖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면서. 다만, 취향이란 건 시간이 쌓인 후에야, 천천하고도 서서히 선명해지는 일이었다.
나는 바다를 참으로 좋아했다. 물에 대한 공포와는 별개로, 늘 푸른빛 바다를 꿈꿨다. 그래서 뉴칼레도니아의 아찔한 투명 청록빛을, 모리셔스의 거대하고 묵직한 인도양의 심연을, 보나파르트의 섬 코르시카의 지중해 색을, 인도네시아의 섬들을 찾아다녔다. 그 바다들을 바라보기로만은 아쉬워 두려움을 누르고 수영을 배웠지만, 바다로 풍덩 할 때마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새로운 바다에 몸을 던질 때마다 새로운 용기를 내야 했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짙은 푸른 바다의 파고 앞에서는 전에 없는 더 큰 용기도 내야 했다. 그렇게 바다가 좋았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 바다라는 파란색 미술관을 찾아 대양을 헤매었다. 그래선지 바다에서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온 ‘비너스의 탄생’ 그림 앞에서는 이상하게 심장이 배로 뛰었다. 마치 뜨거운 바닷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진화생물학자 마르틴 노이캄(Martin Neukamm)은 저서『오늘의 다윈 Darwin heute』에서, 인간의 혈액과 바닷물 속에 들어 있는 무기질 함량을 비교하고, 바닷물 속에 들어있는 이온들의 성분비가 인간의 혈액과 거의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바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라고 했다.
이론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나는 본능에 끌리는 작은 생명체처럼 바다를 생명의 모태처럼 느꼈다. 근원을 찾은 듯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합리성을 찾을 이유는 없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파랑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주저함을 떨치고 뛰어들면, 무섭지만 이내 그 파랑의 자유가 온전히 느껴졌다.
파랑은 식물계에서 10%도 되지 않을 만큼 아주 귀한 색이다. 그런 푸른색 꽃이 좋아 인위적으로 블루 염료를 올린 튤립과 카네이션을 메인 재료 삼아 델피늄, 스위트피, 팔레놉시스 난, 유칼립투스 잎과 함께 콜라보 한다. 좋아하는 차 ‘꽃을 향한 격정(passion de fleurs)’ 차에 담긴 푸른색 수레국화잎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파랑을 예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