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을 만나러

by에코바바


바다를 동경하게 된 건 바카라장에 진열된 세계아동문학전집에 꽂혀 있던 <해저 2만 리>를 읽고 나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해양 괴물을 쫓다 습격당한 해양생물학자 아로낙스 교수와 베일에 싸인 천재 과학자 네모선장의 최첨단 잠수함 '노틸러스호'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전 세계 신비로운 심해 탐험 이야기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도시의 어린 소녀가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원제는 <해저 20만 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이지만 오역되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제목이 어떠하든, 이 거대한 스케일의 상상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여행자를 길러냈음이 분명하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해저 2만 리>를 다시 만난 건, 앙제 꽃 학교에서 만난 나츠미 남매에게서다. 주말에 낭트에 다녀왔다며 보여준 휴대폰 속 자이언트 코끼리 Le Grand elephant 뒤로 심해 생명체를 매단 거대 회전목마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심해 모험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주말, 나는 교외선인 TER 기차에 몸을 싣고 낭트로 향했다. 앙제 Angers와 낭트 Nantes는 약 90km, 차로 약 1시간 거리다. 나는 바닷속 미지의 생명체를 상상하며 보낸 시간을 가슴에 안고, 폐조선소가 자리 잡은 기계 섬 Les Machines de l’ile 으로 향했다.


쥘 베른의 소설<해저 2만 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다 세계 회전목마 Le Carrousel des Mondes Marins’는 쥘 베른이 만든 '바닷속 세상'을 현실로 구현해 놓았다. 보통의 회전목마처럼 예쁜 말이 도는 대신, 여기선 기괴한 바다 생물들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해저 2만 리》에 나올 법한 심해어, 거대 오징어, 게, 아귀, 그리고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호 모양의 기계 잠수함이 2층 회전목마에 매달려 날아갔다. 아이들은 공중을 가르는 역동적인 날치에 올라타 내부에 장착된 레버와 페달로 기구를 직접 조종했다. 기계 동물의 눈이 깜빡이고 촉수를 움직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SF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고, 마치 어린 날의 내가 노틸러스호에 탑승한 것처럼 내 가슴도 안팎으로 함께 고동쳤다. 오래전 바카라장 앞에서 품었던 꿈이 시간을 건너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여운을 품은 채, 상상의 원천이 시작된 쥘 베른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박물관이 된 그의 생가는 북대서양의 거친 풍파를 뚫고 생나제르(Saint-Nazaire)항을 거쳐 루아르강으로 들어서는 거대한 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길목에서 쥘 베른은 하늘과 먼바다를 상상했다. 박물관은 그가 펜으로 그려낸 상상의 세계를 머구리와 심해어, 산호, 범선, 갑각류, 세계지도, 그리고 저서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Il a fait penser, rêver, marcher l'humanité.’

그는 인류를 생각하게 했고, 꿈꾸게 했으며, 나아가게 했다.


1905년 쥘 베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파스칼 그루세(Paschal Grousset)가 그를 기리며 남긴 헌사다.


수많은 여정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낭트 항구에서 시작된 영감이,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하늘과 바다를 꿈꾸게 했다.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이곳에 서 있는 나 역시, 그 깊은 헌사에 조용히 마음 한 조각을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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