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따라 내려간 시골 친할머니 집에서, 여름방학 한 철을 통으로 보낸 적이 있다. 할머니 댁 앞에는 새로 포장된 콘크리트 길을 따라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또래 없는 할머니댁에서 방학을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해가 일찍 돋는 아침에도 시골집 문밖을 나서면 동네 아이들이 이미 나와 놀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무리에 끼여 스스럼없이 놀았다. 낮 동안만큼은 시골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래도 붉게 물든 지평선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엄마 생각이 났다. 어두운 밤이 되면 엄마가 쏟아지는 별만큼이나 보고 싶었다. 헛헛한 마음이 웃자란 때는 오직 밤뿐이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 헛헛함을 채워줄 얼굴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온 동네를 쏘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데리고 다녀준 동네 아이들 덕분이었다. 어느 날, 또래 소녀 하나가 꽃을 가득 꺾어왔다. 그리고 내게 커다란 코스모스 목걸이와 화관을 만들어 씌워 주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기쁨이 솟구쳤다.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그 다정한 꽃 왕관이야말로 나를 동네 아이로 받아들여 준 첫 환대였다. 나는 그렇게 금세 그곳의 일원이 되었다.
아이들의 환대는 꽃에만 그치지 않았다. 손재주 좋은 남자아이는 밭두렁으로 내려가 누워 있는 수수를 골라 왔다. 대나무의 쪽을 나누듯 수수 껍질을 길게 쪼개더니, 껍질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안쪽의 수수깡 마디를 잘라 껍질과 껍질 사이를 이었다. 눈앞에서 안경이 뚝딱 만들어지는 모습이 꼭 마술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수수깡 안경을 쓰고 바라본 자연은 그 전 세상보다 훨씬 채도가 높았다.
시골은 매일매일 놀 것투성이였다. 언니, 오빠, 또래 친구들을 따라 꽤 먼 길을 외길로 따라 걸어가면 방죽이라고 부르는 곳이 나왔는데, 은빛 물결이 햇볕에 반짝였다. 물이 흐르는 별천지였다. 드문드문 키 작은 덤불 위로 나비와 잠자리가 표표히 날고, 얕은 물에는 붕어, 말조개, 물방개, 납자루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시원한 물줄기를 가르며 살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희한한 생명체가 푸릇푸릇 가득 숨을 쉬는 곳이었다. 돌을 뒤집어 종일을 놀아도 싫증 날 일이 없었다. 모래 속을 살짝만 파도 민물조개들이 나왔고, 모래무지 같은 여느 물고기들과 전연 다르게 생긴 각시붕어 같은 종도 살았다. 볼에 연지 곤지를 찍은 듯한 각시붕어는 알록달록이 색옷을 입어 신기하기만 했다.
말조개들은 물가에서 혀를 내밀고 해수욕을 하곤 했는데, 슬그머니 다가가면 깜짝 놀라 순식간에 혀를 끌고 모래 속으로 쏙 숨었다. 모래펄 속을 꼬물꼬물 헤집으며 숨은 조개를 찾아내는 숨바꼭질도 한때의 놀이였다. 펄투성이가 되어 조개를 찾다 보면 방죽에서의 하루가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작은집 소들도 집으로 돌아왔다. 소가 질퍽한 똥을 푸지게 싸며 앞서 걸어가면, 쇠똥구리는 아주 큰 똥 경단을 만들며 그 뒤를 열심히 따랐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두 발을 열심히 굴렸는데, 생각보다 그 속도가 무척 빨라서 한참을 쳐다봤다. 그때 든 생각은 ‘쟤네는 왜 이리 분주하게 경단을 굴리는 걸까, 왜 몸보다 큰 똥을 가지고 가지? 똥을 가져가서 뭘 하려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당장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야 쇠똥구리가 똥 경단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은 그 안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지저분해 보였던 똥 경단은 어느 과학 글에서 보았던 표현처럼 위대한 '산란실이자 양육실'이었다. 쇠똥구리가 똥 경단을 굴리는 속도가 생각보다 무척 빨랐던 이유 역시, 똥 공을 빠르게 굴려야 경쟁을 피하고 새끼를 낳을 아기집을 지킬 수 있어서였다. 뒤늦게나마 ‘생활력 갑’인 쇠똥구리의 치열한 삶의 무게를 알고 나니 깊은 존경심이 일었다.
쇠똥구리는 똥을 굴리며 마을의 청소부 역할도 함께 했다. 땅속에 묻힌 똥 경단은 토양의 기름진 영양분이 되어 식물들이 싹을 틔우도록 도왔다. 똥 속에 섞여 있던 작은 씨앗들이 파릇하게 싹을 틔워 올리며 동네 들녘을 한층 더 푸르게 가꿔 나갔다. 쇠똥구리를 다시 꼭 한번 보고 싶지만, 이제는 볼 수 없다. 지금 DMZ 안에 살아남아 있는 쇠똥구리는 내가 보았던 그 종이 아니다. 부단히 똥을 굴리며 나와 함께했던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은 아닌 것이다. 서식지를 파괴한 종의 일원으로 살아온 세월에 또 한 번 착잡함이 인다. 언젠가 다시 한번, 똥 경단을 굴리는 쇠똥구리의 모습을 꼭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골에서 보낸 시간은 들풀과 물뱀, 이름 모를 생명체를 처음으로 만났던, 보물찾기 같은 소풍이었다. 어린이들만의 세계에서 어른의 개입 없이 오롯이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어준 대자연. 그 안에서 동네 꼬마 모험가들은 자연의 유대를 알았다. 뙤약볕이 작열하던 그해 여름, 하얗던 얼굴이 시커먼 얼굴이 될 때까지, 그때 차오르던 매일매일의 설렘이 아직도 가슴에 걸려있다.
시골 소녀에게 화관을 선물 받고 자연에 담뿍 빠졌던 어린 날이 떠올라 들꽃 화관을 만든다. 처음 만난 도시 소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화관을 얹어주던 그 해맑고 풋풋했던 소녀의 마음을 담아, 들꽃 화관을 엮어 수반 위에 얹는다. 다시 만나면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 소담한 들꽃들을 선물하고픈 마음으로, 젓가락나물과 고광나무꽃, 백조팝과 소국을 모아 함께 화관을 엮는다. 하지만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풀에 숨어 있던 작은 벌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행복했던 코스모스 화관의 추억을 뒤로한 채, 들풀 화관은 그저 머리에 얹는 상상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