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함, 에키놉스와 고슴도치 레온이

by에코바바


청보라색 꽃 에키놉스는 뾰족한 가시가 도드라지는 꽃이다. 라틴어로 ‘고슴도치 모양’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 덕분인지, 이 꽃을 볼 때면 반려 고슴도치 레온이가 떠오른다. 시골 할머니 집 근처 둑방에서 우연히 야생 고슴도치를 만났던 기억 덕분에, 반려동물로 우리 집에 온 레온이었다. 레온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면 바짝 세워진 가시가 정말 에키놉스와 닮아 있었다. 꼭 뾰족한 밤송이 같았다.


에키놉스는 줄기와 잎사귀까지 잔뜩 화가 난 듯, 꽃부터 잎까지 모두 가시가 돋아 날카롭다. 날 선 모습이 스치면 아플 것 같지만 그 자체로 마음을 끌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바늘처럼 돋은 가시 하나하나가 실은 모두 꽃으로,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모여 두상화를 이룬다. 봉오리가 딱딱하고 은빛 도는 서슬 퍼런 가시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바늘 끝마다 수백 개의 작은 별꽃들이 폭죽 터지듯 피어난다.


겉으로는 “가까이 오지 마. 상처받기 싫으니까.”라는 듯 쌀쌀맞게 가시를 세우지만, 만개하고 나면 전혀 다른 꽃처럼 포근해진다. 그렇게 변신한 에키놉스를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마치 몸을 웅크렸던 고슴도치의 보드라운 배를 마주한 것처럼 말랑말랑한 기분이 든다. 멀리서 보면 얼음장처럼 차갑고 뾰족한 가시를 에둘러놓고는, 그 너머에는 여린 속내를 품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 바로 에키놉스다. 그 몽환적인 보랏빛 또한 나에겐 애정의 대상이다.




뾰족함을 지닌 무 꼬투리는 하얗고 소박한 네 장의 무꽃 잎이 지고 나면 연한 초록색의 열매가 생겨난다. 주렁주렁 열매를 맺으면서도, 여느 꼬투리들과 달리 하늘로 뾰족하게 솟는다. 벌레나 쥐 같은 작은 생물들이 닿지 않게 꽃대가 높이 자라며 바늘처럼 뾰족하게 공중에 떠 있다가, 마침내 씨앗이 완전히 익으면 스프링처럼 탄성을 갖고 바람과 줄기가 흔들릴 때 더 멀리 튕겨 나간다.


탁월한 무의 생존 전략으로 씨앗은 멀리 뿌리 내릴 수 있고, 멸종 가능성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나처럼 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소비해서도 무는 멸종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안심이다. 가을무가 나오면 과일처럼 썰어 입에 넣어주던 엄마와의 추억 때문인지 나는 무를 참 좋아했다. 맛있다는 인상만큼이나, 가을무는 달고 시원했다.


겨울이 오기 전, 엄마는 좁은 부엌에서 큰 독에 동치미를 한가득 담갔다. 커다란 독을 한가득 채울 만큼 그때의 엄마는 젊었다. 서두름 없이 독을 채운 엄마의 동치미는 한겨울 밥상에서 빛을 냈다. 끝까지 물러지지 않고 아삭하게 익은 동치미가 밥상에 오르면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바깥에서 제아무리 찬바람이 쌩쌩 불어와도 뜨끈뜨끈한 안방에서 마시는 동치미 한 대접 앞에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보면, 할아버지와 깎아 걸어 둔 홍시의 안부를 묻는 여유도 생겨났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던 어린 날의 작은 시름도 씻겨 내려갔다.


씨앗을 품은 통통한 구슬 목걸이를 꿰어놓은 듯한 무 꼬투리, 그리고 뾰족한 에키놉스, 냉이초, 장미, 클레마티스, 옥시를 한데 모아 뾰족 센터피스를 완성한다. 뾰족함으로 보고 따뜻함으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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