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재회 <어반자카파>
결혼식 이후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친구들이 만나자는 연락이 계속 이어졌다.
이 날은 오래전 대학 동기였던 민석이 저녁을 먹자고 한 날이었다.
이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약속 장소로 갔다.
연남동이었다.
해가 진 뒤의 거리는 주말을 앞둔 사람들로 붐볐다.
식당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골목마다 작은 술집과 카페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뒤섞였다.
민석이 예약해 둔 식당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이희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미 몇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야, 미국놈 왔다.”
사람들이 웃었다.
이희는 빈자리를 찾다가 잠시 멈췄다.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도 그날과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콧물을 훌쩍이지 않았다.
그러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혜윤이 먼저 말했다.
“어?”
이희도 그녀를 봤다.
3월.
결혼식.
추운 날씨.
볼에 붙어 있던 하얀 휴지 조각.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순간.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앗, 결혼식 때.”
혜윤이 말했다.
“맞죠?”
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신랑 친구분.”
“네.”
“미국에서 왔다고 했던.”
“그것도 맞고요.”
혜윤은 잠깐 웃었다.
이희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 혜윤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이 원래 아는 사이였어?”
“아뇨.”
혜윤이 먼저 대답했다.
“한 번 봤어요.”
그게 전부였다.
둘은 다시 만났지만,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술이 한두 병 비워질 때까지도 대화는 여러 사람 사이를 떠돌았다.
누군가는 회사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혼한 친구 이야기가 나왔고, 신랑이 신혼여행지에서 벌써 싸웠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희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근데 너는 진짜 미국에서 건축하는 거야?”
“응.”
“설계?”
“주로.”
혜윤이 옆에서 물었다.
“건축가?”
이희가 그녀를 봤다.
“비슷해요.”
“왜 비슷해요?”
“설명하면 길어요.”
“그럼 짧게.”
이희가 잠시 웃었다.
“건축사.”
“아, 그러니까 가 아니고 사.”
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어려운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요.”
“애매하게 대답하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길게 설명해도 재미없거든요.”
혜윤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 그건 맞네요.”
잠시 뒤 이희가 물었다.
“혜윤 씨는요?”
“저요?”
“뭐 해요?”
“출판사 다녀요.”
혜윤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작은 출판사예요. 마포에 있는.”
“국문과 나왔어요?”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출판사 다니니까 때려맞춰본건데...”
“헤헤 맞아요. 근데 뭐 그럴듯한 이유로 간 건 아니에요.”
“그럼요?”
혜윤은 잠깐 생각했다.
“점수 맞춰서 간 거예요. 어문계열이 점수가 좀 낮았거든요. 요즘은 나와서도 돈이 안된다나...”
“그래서 바카라은 좋아하고요?”
“그럼요, 어릴 때부터 읽는 건 무조건 다 좋아했어요.”
혜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1년 정도 취업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잘 맞더라고요.”
“국문과는 잘 맞았어요?”
“아니요.”
“왜요?”
“저는 소설 읽고 시 읽는 줄 알았는데.”
혜윤이 잔을 내려놓았다.
“국어의 원리 배우고, 문법 배우고 어려운 고문학 배우고.”
“그게 국문과니까.”
“그러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이희가 다시 웃었다.
혜윤은 그를 한번 흘겨봤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사람 인생이 웃겨요?”
“아니요.”
“그럼요?”
“말하는 게.”
“뭐가요.”
“허술해서.”
혜윤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뭐라고요?”
이희는 그제야 자신이 생각을 소리 내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아..아니.”
그가 말했다.
“그냥...”
“허술하다고 했죠?”
“아까는 아니고.”
“아까라고요?”
혜윤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봤다.
이희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결혼식 때요.”
“결혼식?”
“그때 처음 봤을 때.”
혜윤은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지었다.
이희는 더 말할까 하다가 관뒀다.
볼에 휴지 붙이고 콧물 흘리고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말하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상한 사람이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처음 봤는데 그런 소리 들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혜윤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는 자기도 웃고 있었다.
그날 밤 이희는 정혜윤이라는 사람이 출판사에 다닌다는 것과, 국문과를 좋아해서 간 것은 아니라는 것, 수학을 몹시 싫어했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됐다.
그리고 혜윤은 한이희가 1990년생이라는 것과,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미국으로 갔다는 것, 실리콘밸리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리콘밸리면.”
혜윤이 말했다.
“되게 대단한 데 아니에요?”
“그냥 회사예요.”
“거기서 뭐 해요?”
“건물 설계하죠.”
“구글 같은 데?”
“뭐 그런 회사들 건물도 있고.”
혜윤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영화에 나오는 미래 도시 같은 것도 만들어요?”
“아직은요.”
“아직은?”
“언젠가는 모르죠.”
혜윤이 웃었다.
“화성에 도시 만드는 거?”
이희가 그녀를 봤다.
“화성?”
“네.”
“왜 갑자기 화성이에요?”
“그냥.”
혜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미래 도시 얘기하니까.”
“화성에 도시 만들면 재미있겠네요.”
“그렇죠?”
“근데 저는 못 살 것 같은데.”
“왜요?”
“답답할 것 같아서.”
이희가 말했다.
“창문 없을 수도 있는데요.”
혜윤의 표정이 금방 구겨졌다.
“그건 싫은데.”
이희는 잠시 그녀를 봤다.
“창문 없어도 살 수 있죠.”
“그건 사는 게 아니죠.”
그때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우리 이제 갈 사람 가자.”
시간이 꽤 늦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계산을 나누고 겉옷을 챙겼다.
혜윤도 가방을 들었다.
그런데 식당 밖으로 나온 뒤 그녀가 뒤를 돌며 말했다.
“근데 저는 조금 더 마시고 싶은데.”
몇 명은 고개를 저었다.
“난 내일 출근.”
“나도.”
“나는 집 반대 방향이야.”
혜윤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래. 다 가.”
그때 이희가 뒤에서 쭈볐거리며 말했다.
“저는 한 잔 더 마셔도 되는데.”
혜윤이 그를 봤다.
잠시 후 말했다.
“그래요, 그럼.”
둘은 근처의 작은 바로 들어갔다.
바 안쪽은 어두웠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희와 혜윤은 바 테이블 끝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두 번째 술을 주문한 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혜윤이 먼저 물었다.
“영화 좋아해요?”
“가끔요.”
“SF도?”
“좋아하죠.”
혜윤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션〉 봤어요?”
이희가 웃었다.
“봤죠.”
“저 그거 되게 좋아하는데.”
“왜요?”
“재밌잖아요.”
“그냥 그 이유예요?”
“영화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요?”
“없죠.”
혜윤은 잔을 들었다.
“저는 화성에 가보고 싶어요.”
“진짜로요?”
“네.”
“갔다가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그건 싫고.”
“그럼 뭐가 가고 싶은 거예요.”
“화성은 보고 싶죠.”
이희가 말했다.
“사람이 진짜 살게 될까요?”
“언젠가는요.”
“언제요?”
“아마도 우리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혜윤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와, 말도 안 돼.”
“왜요.”
“너무 빨라요.”
“생각보다 안 빨라요.”
이희는 테이블 위의 냅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펜을 하나 빌렸다.
“처음부터 이렇게는 못 만들죠.”
그가 냅킨 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밖은 위험하니까.”
그 아래에 선을 그었다.
“처음에는 지하.”
혜윤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지하에 도시를 만든다고요?”
“아마.”
“왜 지하예요?”
“온도도 그렇고. 방사선도 피해야 하고.”
이희는 선을 몇 개 더 그었다.
“생활 공간이 있고. 물 재활용 시설이 있고. 식량 만드는 공간이 있고.”
“농장?”
“네.”
“지하에서?”
“그럼 위에다 감자밭 만들어요?”
혜윤이 웃었다.
“〈마션〉처럼?”
“마크 와트니는 어쩔 수 없었던 거고.”
두 사람은 잠시 영화 이야기를 했다.
혜윤은 영화를 두 번 봤다고 했다.
2015년에 나온 뒤 극장에서 봤고, 몇 년 뒤 다시 한번 봤다고.
영화 속에서 한 사람이 텅 빈 행성에 혼자 남겨지는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혜윤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화성 하늘을 지구의 하늘처럼 만들면 좋겠어요.”
“화면으로요?”
“음..화면이든, 진짜 대기가 흐르는 하늘이든 뭐든.”
“해도 뜨고 지고?”
“네.”
“날씨도 만들고?”
“그건 좀 귀찮고.”
“별은요?”
혜윤이 잠시 생각했다.
“별은 있어야죠.”
이희는 그녀를 봤다.
“어.. 그게 가능할까요?”
“우린 답을 찾을거에요. 늘 그랬듯이.”
혜윤은 영화 인터스텔라 대사를 인용했다.
이희는 웃었다.
이번에는 피식이 아니었다.
조금 오래 웃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화성 이야기를 했다.
이희는 도시의 구조를 이야기했고, 혜윤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이희가 물과 산소를 말하면 혜윤은 학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희가 통로와 생활 구역을 말하면 혜윤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하에 무슨 공원이 있어요.”
“나무라도 심어야죠.”
“인공조명으로?”
“네.”
“굳이요?”
“건축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상상력이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이희는 잠시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허술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그는 정혜윤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날 밤 바를 나왔을 때는 이미 막차가 끊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은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역 앞에서 잠시 멈췄다.
“저 이쪽이에요.”
혜윤이 말했다.
“저는 반대쪽.”
“그럼.”
“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혜윤이 손을 들었다.
“다음에 봐요.”
이희도 손을 들었다.
“네.”
혜윤은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근데.”
“네?”
“화성에 도시 만들면.”
이희가 그녀를 봤다.
“하늘 꼭 보이는 집을 만들어요.”
그러고는 웃으며 돌아섰다.
이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번호를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