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푸른 요람 4부 남겨진 사람들

4장- 처음부터 지금까지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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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와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다.


잠시 후.

이준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자 기지의 공기가 다시 피부에 닿았다.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온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정해진 습도.

천장에 설치된 조명.


이곳에서는 아침과 밤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아버지와 통화한 뒤에는 늘 비슷한 감정이 남았다.


화가 났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는 점점 알 수 없게 됐다.

아버지는 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


건축사.

아버지의 도면 위에 있던 선들은 실제 건물이 됐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이준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 사람.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찾는 사람.

그래서 고고학이었다.


AI의 발달로 점점 아무 쓸모도 없어져 버린 유물과 같이 변해버린 학문.

누군가가 왜 그런 전공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재미있을 거 같아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전부를 다 말한 것도 아니었다.


2035년 이후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초지능을 새로운 기술이라고 불렀다.

AI를 두려워하며 사용하지 말자고 공동체를 만들어

전력을 사용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테두리를 만드는 집단도 생겨났다.

AI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도로에 불을 지르고

격하게 항의하는 시위도 각 국가에서 매번 일어났다.


몇 년이 지나자 이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기술 하나가 세상에 추가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도시는 다시 설계됐다.

낡은 교통망은 하나씩 폐쇄되거나 다른 시스템에 흡수됐고,

수십 년 동안 덧붙여진 서울의 이동 구조는 통째로 재편됐다.


2035년 이후 서울의 교통망은 한 번 크게 바뀌었다.

도로와 철도, 개인 이동망은 더 이상 서로 분리된 체계가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지하철 노선은 대부분 사라졌고,

남은 선로와 새로 뚫린 구간은 하나의 통합 이동망으로 묶였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G-트랩이었다.

사람들은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G-트랩 역시 그렇게 일상이 됐다.


처음에는 새로운 이동 기술이라며 떠들썩했지만,

이준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누구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이동할 때 타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준의 세대에게 2020년대의 지하철 노선도는 오래된 지도 같은 것이었다.

1호선과 2호선, 몇 호선이 어디를 지나가는지 앱을 보고 찾던 시대.

지금도 유년 시절에 있었던 그런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다른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인간들은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계속 늘어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론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 혼자 무언가를 설계한다는 것은 오래된 방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준은 복도 끝에 멈춰 섰다.

휴대용 단말을 꺼내 보았다.

아까 걸려왔던 전화는 아버지 외에도 한 통 더 있었다.


우주정거장의 태성이었다.

차단벽 너머로 붉은 지표가 보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곳을 바라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수초만에 함박웃음을 띤 태성의 큰 얼굴이 떠올랐다.

“여보셔, 살아있냐?”


이준은 오랜만에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잘 있냐.”

“나야 잘 있지. 넌 뭔 소식 있던데 이 형님한테 말도 안하고 말야!”

“뭐.”

“뭔가 나왔다며”

“아직 그거 극비 보안 사항인데..”

“얌마, 이 강태성이 모르는 게 어딨냐.”

“뭔가 진전이 있는거야? 뭐가 진짜 있어?”


흥분한 태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준은 살짝 미간을 찌뿌렸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어.”

“그래. 100% 될 때까지 너에게 확실한 건 없겠지.”


김빠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내 태성은 이준이 떠난 후 우주정거장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태성의 수다가 이준의 불편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지난 20여 년간 이준에게 태성은 그런 존재였다.





이준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대학은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았다.

초지능이 등장한 뒤, 교육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지식을 가르쳤고,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맞춰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었다.

굳이 모든 아이가 같은 과정을 밟으며 열두 해를 학교에서 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초중등 교육과정을 대폭 줄이자는 안이 검토되었다.

반발은 거셌다.

아이들이 지식을 배우는 속도와 인간으로 성장하는 속도는 같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통해 열 살짜리 아이가 대학 수준의 지식을 익힐 수 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열 살에 슬롯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민단체와 교육단체들은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친구를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실패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시간까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초중등 교육의 기간은 유지되었다.

대신 변화는 그 이후에 집중되었다.

대학과 대학원, 석사와 박사로 이어지던 길고 복잡한 과정은 통합되고 단축되었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전문 지식을 순식간에 습득하고 분석하는 시대에,


인간이 같은 지식을 몇 년씩 반복해 배우는 방식은 빠르게 의미를 잃어갔다.

무엇보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할 일이 생기는 시대도 아니었다.

한때 대한민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 진학은 오랫동안 가장 보편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초지능이 슬롯 곳곳으로 들어온 뒤에도,

모든 사람이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이유가 있는지는

아무도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장학금을 늘렸다.

등록금을 전면 면제하는 학교도 생겼다.

학생들의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며 입학을 권하는 대학도 있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방대학부터 차례로 무너졌다.

한동안 사람들은 예전의 말을 그대로 썼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말도 의미를 잃었다.

벚꽃을 기다릴 만큼 오래 버티지 못하는 대학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준이 대학을 입학하던 2043년이 되었을 때는

대학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방의 많은 대학은 국립대학에 통합되거나 연구기관으로 전환되었다.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명성을 가진 몇몇 대학과 국가가 유지하기로 한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 문을 닫았다.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그곳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단순히 시험을 잘 보는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은 오랜 시간 축적된 학습 기록과 사고의 흐름을 분석했다.

얼마나 많은 문제를 빨리 풀었는가보다,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시대였다.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설계했고,

인간은 그것을 현실로 옮겼다.


2043년의 서울은 밤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도시는 너무 조용하게, 너무 정확하게 스스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캠퍼스를 빠져나온 이준은 한동안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개인 단말이 이동을 권유했지만 그는 확인하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날이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이희는 그런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날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준은 몇 년째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다.


“야, 한이준.”


한 살 더 먹고 학교에 들어온

건장한 체격의 태성의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같은 과 학생 몇 명이 서 있었다.

솜털이 가시지 않은 하얀 얼굴을 한 지우도 있었다.


“어디가냐?”

“그냥.”

“우린 술 마시러 갈 건데.”


유들유들한 성격의 태성이 이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로 갈지 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목적지를 공유하자 이동 경로가 각자의 단말에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G-트랩 진입구까지는 도보로 삼 분.

그곳에서 태성이 말하는 유흥가까지는 육 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환승은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이동했다.

G-트랩 안은 조용했다.

창문은 없었다.

누군가가 벽면에 영상을 띄워 놓고 있었고, 누군가는 잠들어 있었다.

이준은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동이 끝났다.

누군가가 말했다.

“진짜 빨라졌네.”

“맨날 타면서 새삼스럽게.”

“아니, 생각해 봐. 옛날에는 서울 끝에서 끝까지 한두 시간 걸렸대.”

“그래서 다들 출근하다 늙었다고 하잖아.”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준도 잠깐 웃었다.

그날 밤은 이상하게 술을 마시기에 적당했다.

술집은 새로 생긴 곳이 아니었다.


대학가의 오래된 건물을 내부만 개조한 곳이었다.

2043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마셨다.

그 사실만큼은 세상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 위에는 종이 메뉴판이 없었다.


주문 시스템은 각자의 생체 정보와 연결돼 있었고, 과도한 음주가 예상되면 자동으로 제한이 걸렸다.

누군가가 불평했다.


“이것도 진짜 웃긴다.”

“뭐가?”

“술을 마시는데 시스템이 건강 걱정을 해.”

“걱정하는 게 아니라 보험료 계산하는 거겠지.”

“더 싫네.”


누군가 웃었다.

“그럼 인증하지 말고 마셔.”

“그게 되냐?”

“방법은 있지.”

“너 뭐 진짜 하겠다는 건 아니지? 그거 불법이야”

“에이씨, 진짜겠냐. 농담이야.”


이준은 말없이 술을 주문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서 졸업 후의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는 전공을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미 진로를 포기했다고 했다.


“요즘은 진짜 모르겠다.”

누군가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뭘 해도 몇 년 지나면 다 바뀌잖아.”

“그래도 사람은 필요하지.”

“어디에?”


잠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질문이 늘어나고 있었다.

초지능이 등장한 뒤 세상은 분명 더 편리해졌다.


더 안전해졌고.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만큼 인간이 하던 일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AI가 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철학이나 역사, 그리고 인문학과 같이

돈 안 되는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학문이었다.

누군가가 이준을 바라봤다.


“야, 넌 왜 고고학이냐?”

이준은 술잔을 들었다.

“왜?”

“이제 AI가 다 분석해 주는데 그걸 왜 사람이 해.”

“분석은 해주겠지.”

“그럼?”


이준은 잠시 생각했다.

“분석할 걸 먼저 찾아야 하잖아.”

“그것도 AI 로봇이 찾잖아?”

“그럼 내가 그게 없는 다른 데 가면 되지.”

“뭐? 어디로?”

“화성”

“뭐? 화성에 무슨 유물이 있다고.”


이준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그날의 이준은 평소보다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집에 가기 싫었던 날이었다.


이준이 혼잣말처럼 뱉었다.

“내가.. 가면 되지.”


그날 이후 그는 화성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꿈처럼 말한 적도 없었다.

화성에 가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떠드는 소음에

아무도 이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이준 자신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화성으로 떠나기 전 우주정거장 휴게실에서

지우가 그에게 말했다.


“너 대학 다닐 때 술 마시면서 화성에 꼭 가겠다고 했잖아?”

그때 이준은 한참 생각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날 밤을 떠올렸다.

2043년 3월.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화성에 가겠노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던 밤.


그때는 푸른 하늘, 뜨거운 태양이 있던 시대였다.

이준은 다시 지하도시에서 발견한 영상을 떠올렸다.


과거 잃어버렸던 푸르름이 거기 있었다.

그는 천천히 차단벽 쪽으로 다가갔다.

관측창 바깥에는 어둠이 내려 더욱 검붉은 대지가 황량하게 펼쳐져 있었다.


오랜 전 치기 어리던 스무 살의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렸다.


“가보지 않고서는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4부 끝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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