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푸른 요람 4부 남겨진 사람들

2장 우연히 봄. <로꼬, 유주>



2019년 3월. 서울.


결혼식로비.JPG


3월이면 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때였다.


낮에는 햇볕이 제법 따뜻했지만 해가 기울자 바람이 달라졌다.

겨우내 건물 사이에 갇혀 있던 찬 공기가 아직 서울을 떠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희는 한국에 와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거의 7년 만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는

그해 초 회사가 맡은 한국 프로젝트 때문에 서울에 왔다.

정확히는 한국의 한 기술기업이 추진하는 연구시설 설계였다.


미국 본사에서 만든 설계안을 들고 와 현지 건축사와 만나야 했고,

클라이언트와 몇 차례 조율할 일도 있었다.

적어도 두어달은 한국에 머물러야 했다.

한국에 와 있는 동안 만날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들, 군대 시절 선후배, 대학 동기들. 결혼식..

누구 하나 만나기 시작하면 그다음 약속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그날 오후 결혼식은 꼭 가야 했다.

신랑은 대학 시절 꽤 가까웠던 친구였다.

이희는 결혼식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3월의 서울 날씨는 애매했다.

햇볕이 비치는 곳은 제법 따뜻했지만 건물 사이로 강풍이 뼛속을 에렸다.


이희는 토요일 오후 차량으로 꽉 막힌 택시 안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신랑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디냐.”

이희는 짧게 답했다.

“가는 중.”


잠시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신부 친구들 예쁘다. 늦지 마라.”


이희는 피식 웃었다.

‘이 자식, 결혼하는 날까지 헛소리하고 있네.’


이희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차가 예식장 앞에 멈췄다.


토요일 오후, 예식장 로비에는 하객들로 가득 차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달뜬 표정으로 서성이는 여자들,

오랜만에 꺼내 입은 듯 어색한 정장을 입은 남자들,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보였다.


입구 한쪽에서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 축의금 봉투를 꺼내 들고 있었다.


이희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어서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런 풍경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비는 꽃 냄새와 향수 냄새, 사람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이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멀리서 가볍게 손을 흔드는 남자를 발견했다.

신랑이었다.

“어이”


이희가 다가가니 친구는 반갑게 웃었다.

“이 자식, 이제야 왔구나.”

“야, 만약 안 왔으면 축의금 안 내도 됐냐?”

“마, 그건 당연히 따로 보내야지.”

“이건 여전히 양심도 없네.”


둘은 짧게 웃었다.

신랑은 이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어.”

“미국 놈이 됐네. 연락도 안 하고.”

“결혼하는 날까지 잔소리야.”


신랑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붙잡혀 갔다.

이희는 남겨진 대학 동창들 사이에 섞였다.

몇 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을 옮긴 친구도 있었고, 아직도 대학원에 붙어 있는 친구도 있었다.


대화는 별것 없었다.

누가 어디서 일한다는 이야기.

누가 누구랑 결혼했다는 이야기.

미국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

한국에 언제까지 있느냐는 질문.

이희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결혼식이 시작됐다.

신랑은 긴장한 얼굴로 입장했고, 신부는 예상보다 많이 울었다.

친구들은 신랑이 우는 모습을 보지 못한 걸 두고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식이 끝나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자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희도 사진 몇 장에 끼었다.


그리고 식이 끝났다.

사람들은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바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다음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신랑과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신부 쪽 친구들 몇 명은 자연스럽게 남았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 그냥 한잔하고 갈까?”


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내가 쏜다.”

“오늘 결혼한 사람이 제일 먼저 간다고?”

“그러니까 빨리 가.”


사람들이 웃었다.

그렇게 신랑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이 섞인 작은 무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희는 그 무리 안에서 처음으로 혜윤을 제대로 보게 됐다.


그녀는 회색 모직 재킷을 입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재킷 앞섶을 잡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누가 건넨 휴지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훌쩍였다.


볼 한쪽에는 눈물과 콧물을 닦고 남은 하얀색 휴지 조각이 붙어 있었다.

이희는 잠시 그녀를 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예쁜데 조금 허술한 구석이 있네.


이희와 혜윤은 처음 같은 무리에 섞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혼식장을 나와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4부 2장 끝

3장으로 이어집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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