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기억을 걷는 시간 <넬>
이준 일행이 아르테미스 돔 기지에 도착했다.
보호복 탈의를 한 후 시스템 점검을 거쳐 시스템실로 향하는 내내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도윤이 묵묵히 앞장섰고, 지우와 민수가 그 뒤를 따랐다.
이준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지하 도시의 가장 깊은 곳을 보고 있었다.
오래전에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공간.
작은 도시 하나는 될 법한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말도 안 되는 영상.
이준은 계속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푸른색.
처음에는 그저 색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면이 밝아지는 순간, 누구도 그걸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었다.
하늘이었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아래로 물이 보였다.
푸른 하늘과 바다.
이준은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화성의 지하에서 발견된 영상 속에는 분명히 푸른 하늘이 있었다.
“저기.”
앞에서 걷던 지우가 낮게 말했다.
도윤이 걸음을 멈췄다.
“응?”
“아까 그거.”
지우는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말했다.
“정말 지구일까?”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모르지.”
“지구가 아니면요?”
민수가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이번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통로 안에는 네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이준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지구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렇다고 지구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왜 그런 영상이 여기 있는가.
누가 남긴 것인가.
수천년 전에 어떤 지적 생명체가 있었단 말인가.
이곳은 도대체 어디였는가.
이준은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하던 일을 정리해보자.”
이준이 말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각자 장비를 정리했다.
기록 장치를 분리하고, 탐사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전송하고,
영상 파일의 원본을 따로 보관했다.
작업은 기계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준은 손을 움직이면서도 계속 화면 속 장면을 생각했다.
전송이 끝났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이준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제야 개인 단말에 쌓여 있던 알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기지 내부 메시지였다.
탐사 일정 변경.
장비 점검.
데이터 검토 요청.
개인적인 연락도 있었다.
부재중 통화는 두 개였다.
그 중 하나는
한이희.
아버지였다.
이준은 메시지 시간을 확인했다.
몇 시간 전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 걸려온 모양이었다.
별도의 메시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준은 단말의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멈췄다.
지금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할까.
어차피 급한 일이었다면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 뒤에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정말 급한 일이었는데 메시지를 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거라면.
이준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그마저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아마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준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그 잠깐 사이 이준은 통화를 끊을까 망설였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켜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얼굴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에는 흰머리로 덮힌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떠 있었다.
아버지의 뒷편으로는 백색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흰 공간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뭘하다가 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구에서는 개인 통화 중 상대방의 실제 배경을 보여주지 않게 됐다.
처음에는 프라이버시를 위한 기술이었다.
이준이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 기능을 꽤 즐겼다.
AI를 이용해 자신의 방을 바꿔놓았다.
누군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사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누군가는 유리창 너머로 야경이 펼쳐진 사무실을 배경으로 삼았다.
실제로는 좁은 원룸에 앉아 있으면서도 화면 속에서는 고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한동안은 그런 것들이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통화가 연결되기 전부터 배경을 고르는 데 시간을 썼다.
오늘은 해변.
내일은 산장.
어떤 사람은 아예 달 표면을 골랐다.
그 시절에는 그저 놀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경은 사라졌다.
화려한 가짜 공간도.
실제 공간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백색 화면뿐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다음에는 보안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당연해졌다.
어느 구역에 사는지 어떤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조차 개인정보였고 외부에 전송되면 안 됐다.
2060년의 지구는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이준은 화성에 와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멀리서 봐야 나무가 아닌 숲이 보이는 법이었다.
“왜.”
한이희가 먼저 말했다.
이준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전화 했었어요?”
“응.”
“무슨 일인데.”
“뭐 그냥.. 뉴스에 화성 탐사 이야기가 나오길래.”
이준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뭐. 맨날 하는 일인데.”
화면 속 아버지는 몇 년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이준은 그 얼굴을 보고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한때는 그랬다.
아버지가 늙는 것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
언젠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불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감정은 사라졌다.
“별일 없지?”
이희가 물었다.
“없어요.”
“거기는.”
“여기도요.”
“그래.”
침묵이 흘렀다.
이준은 문득 자신이 왜 전화를 했는지를 생각했다.
건강상의 문제라던가 국가에서 불렀다던가
무슨 위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할 말은 없는데 전화를 한다.
전화를 해놓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
이준은 그게 싫었다.
“뭔 일..있어요?”
“뭐가.”
“전화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희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
화면 밖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있긴 뭐가 있어. 별일 없으면 됐어.”
그 말에 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늘 어디론가 바쁘다며 나갔다.
처음에는 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냥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진 뒤에도 한이희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병원에서 돌아와도 잠시 후 다시 나갔다.
현장에 간다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설계 때문에 가봐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잘 나가던 건축사였다.
이준이 아는 한 그랬다.
2035년. 초지능이 등장할 무렵이었다.
주거 공간은 거주자의 건강 상태와 소비 패턴,
직업과 가족 구성까지 분석해 자동으로 설계됐다.
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실제로 편리했다.
건물은 더 안전해졌고.
낭비는 줄었다. 도시는 예전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이준은 어릴 때는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설계한 건물이 실제로 세워지는 것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자주 밖으로 나갔다.
뭘하러 다니는 지 알 수 없었다.
이준은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영상 추모기록관에는 갔다 왔어요?”
이준이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한이희가 고개를 들었다.
“왜.”
“갔다 왔냐고요.”
“지난달에.”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였다.
이준은 화면 속 아버지를 바라봤다.
이희는 올해 70세가 됐다. 그런데 그는 나이보다 휠씬 더 늙어 보였다.
2060년의 서울은 인간의 불로장생의 욕구로 인해 최첨단 성형기술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제는 간단한 주사 시술만으로도 20년은 젊어 보이게 할 수 있었다.
살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뺄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한이희는 젊어지는 기술을 거부했다.
그런 늙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이준의 눈에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이준에게 아버지는 이상하게 늘 그 시절에 멈춰 있는 사람이었다.
소독젤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있는.
병실 문을 열면 엄마가 혼자 있는 곳.
한이희는 화면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엄마는.. ”
한이희가 고개를 들었다.
“됐어요. 저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이준은 통화 종료 버튼을 찾았다.
이준이 먼저 통화를 끊었다.
영상 단말기에는 백색 화면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았다.
이준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아버지의 얼굴이 있던 곳에는 이제 자신의 모습만 희미하게 비쳤다.
이준은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 붉은 땅이 보였다.
화성의 하늘은 언제나 같은 색이었다.
그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병상에 누워서도 바카라을 읽던 여자.
정혜윤.
그녀는 암세포로 인해 몸이 점점 약해지는데도 끝까지
손에서 바카라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참 바카라을 읽다가도 자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저 멀리 있는 화성을 엄마는 그리워했다.
그때 이준은 두 사람 모두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지하에서 본 영상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떠올랐다.
푸른 하늘.
천천히 흘러가던 구름.
그 아래에 펼쳐져 있던 끝없는 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준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4부 1장 끝
2장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