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눈은 무엇을 골랐을까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11

by호시우행

수많은 변이 가운데 어떤 식물을 다음 세대의 씨앗으로 남겼는가


콩밭은 멀리서 보면 한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같은 날 씨를 뿌리고 같은 밭에서 자라는 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밭 안으로 들어가 한 포기씩 살펴보면 차이가 보인다. 줄기가 곧게 선 포기가 있고 옆으로 퍼진 포기도 있다. 꼬투리가 고르게 달린 포기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 열매가 몰린 포기도 있다. 익어 가는 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같은 작물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똑같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농부는 밭을 걸으며 이런 차이를 본다. 수확을 앞둔 때에는 식물의 상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포기와 조금 다른 식물이 눈에 들어오면 걸음을 멈추어 살펴볼 수 있다. 당장 뽑아 버리거나 수확하는 대신 그대로 두고 지켜볼 수도 있다. 씨앗으로 남길 식물을 고르는 일은 거창한 작업장에서 시작되지 않고 이런 밭의 관찰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한 포기를 눈여겨보았다고 해서 새로운 품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식물에서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심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 해에 비슷한 특성이 다시 나타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같은 선택을 이어 갈 수도 있고 다른 식물을 고를 수도 있다. 한 번의 선택보다 여러 해에 걸친 반복이 중요했던 까닭이다.


식물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같은 작물이라도 유전적으로 완전히 같은 개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밭에서도 햇빛을 받는 정도와 물의 양, 토양의 상태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차이가 모두 유전적인 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차이는 다음 세대의 재배를 거쳐야 그 성격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농부가 선택한 식물이 다음 해에도 비슷하게 자랄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난해에는 좋아 보였지만 다음 해에는 기대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는 다른 식물을 선택하거나 기존의 선택을 멈출 수 있다. 농사에는 같은 조건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씨앗을 고르는 일에도 늘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다.


한 포기의 상태가 좋다고 해서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식물이 가진 유전적 특성 때문일 수 있다. 그해의 비가 알맞았거나 밭의 한쪽에 물이 더 잘 들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햇빛을 더 많이 받은 자리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 농부는 이런 요인을 하나씩 분리해 측정하지 않아도 여러 해의 농사를 겪으면서 반복되는 차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농민의 선택은 이런 반복된 관찰 속에서 이루어졌다. 올해의 결과를 보고 내년의 씨앗을 정하고, 내년의 결과를 보고 다시 판단했다. 농부에게 밭은 한 해의 결과만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선택을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같은 씨앗을 심었는데 결과가 달라지면 판단을 수정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러 해 비슷한 결과가 이어지면 그 식물에서 받은 씨앗을 계속 사용할 이유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농부가 식물의 유전자를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식물의 모습과 농사 결과를 통해 다음 세대에 남길 가능성을 판단했다. 현대의 유전학이 없던 시대에도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작물 집단의 유전적 구성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특정한 식물에서 받은 씨앗을 계속 심으면 그 식물이 가진 유전적 특성이 다음 세대에 나타날 기회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도 세대가 바뀌면서 선택은 일어난다. 환경에 더 잘 견디는 식물이 살아남아 더 많은 씨앗을 남길 수 있다. 농경지에서는 여기에 사람의 선택이 더해졌다. 농부가 어떤 식물의 씨앗을 다음 파종에 사용하면 그 식물의 특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의 판단이 식물의 번식 과정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농부가 식물을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농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밭에서 실제로 나타난 식물 가운데서였다. 식물 자체가 가진 생물학적 특성이 선택의 범위를 정했다. 날씨와 토양 같은 환경도 그해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농민의 선택은 식물과 환경이라는 조건을 벗어나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선택에는 실패도 있었다. 씨앗을 남긴 식물이 다음 해에는 기대만큼 자라지 않을 수 있다. 한 해의 기후가 특별히 좋았기 때문에 나타난 모습일 수도 있다. 반대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던 식물이 다른 해에는 더 안정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농부는 이런 결과를 다시 경험하면서 다음 씨앗을 선택했다.


모든 씨앗이 의식적인 선택을 거쳐 다음 세대로 간 것도 아니다. 수확한 곡식 가운데 일정한 몫을 그대로 종자로 사용하기도 했다. 밭에서 떨어진 씨앗이 다음 해에 다시 자라기도 했다. 농사 과정에는 사람의 의도와 함께 우연도 들어 있었다. 한 지역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과정을 전부 계획된 선발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씨앗을 고르는 방식도 농가마다 같지 않았다. 어떤 농민은 밭에서 눈에 띄는 식물을 따로 골랐을 수 있다. 어떤 농민은 특정한 식물보다 밭에서 얻은 씨앗 전체를 다음 파종에 사용했을 수 있다. 작물의 종류와 재배 방식, 지역의 농업 관습에 따라서도 종자를 남기는 방법은 달라졌다. 농민의 선택은 하나의 규칙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씨앗은 한 농가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이웃에게 씨앗을 나누어 주거나 다른 농가에서 씨앗을 받아 심을 수 있었다. 받은 농민은 자신의 밭에서 그 씨앗을 다시 재배했다. 그 결과가 좋으면 계속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씨앗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의 씨앗이 여러 사람의 밭을 거치면서 새로운 선택을 만나는 일이 생겼다.

이렇게 보면 토종씨앗은 어느 날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재배된 씨앗에는 수많은 농민이 해마다 남기고 바꾼 선택이 들어 있다. 어떤 선택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선택은 농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떤 씨앗은 한 농가에서 오래 남았고 다른 씨앗은 여러 농가로 퍼졌다. 그 차이가 오랜 시간 쌓이면서 지역의 농민 품종과 재래종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 ‘같은 콩, 다른 마을’의 차이도 다시 볼 수 있다. 같은 작물이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 데에는 단순히 지역 이름이 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 농가와 지역에서 씨앗을 이어 온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을과 마을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만들어 가는 가장 작은 단위인 한 포기의 선택이다.


농부가 밭에서 한 포기를 골랐다고 해서 그 식물이 곧바로 지역의 씨앗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음 세대에서 다시 재배되고 다른 식물과 함께 비교되며 여러 차례 선택을 받아야 한다. 한 농가에서 시작된 선택이 다른 농가로 넘어갈 수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선택만이 씨앗의 성격에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토종씨앗을 단순히 ‘오래된 씨앗’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씨앗이 몇 년이나 묵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밭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농민이 심고 거두고 다시 남기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식물 사이의 차이가 계속 선택되었다. 토종씨앗의 모습에는 그 반복된 재배와 선택의 흔적이 들어 있다.


농민의 선택은 현대의 육종과도 구별해야 한다. 현대 육종에서는 원하는 특성을 가진 부모를 계획적으로 교배하고 후대의 식물을 조사하면서 선발한다. 농민의 선택은 자신의 밭에서 실제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고 다음 파종에 사용할 씨앗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현대 육종이 농업에 많은 새로운 품종과 생산상의 이점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농민 선택을 이상화하거나 현대 육종을 단순한 단절로 볼 필요는 없다.


달라진 것은 씨앗을 선택하는 장소와 방식이다. 예전에는 농부의 밭이 씨앗을 시험하고 다시 선택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오늘날에는 연구기관에서 육성된 품종이 종자 생산과 유통을 거쳐 농민의 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농민이 씨앗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선택 이전에 어떤 씨앗이 시장에 나와 있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훨씬 커졌다.


그 변화 속에서 토종씨앗을 바라보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오랫동안 농민이 직접 씨앗을 이어 온 과정에서 무엇이 선택되었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 안에는 식물의 변이도 있었고 환경의 영향도 있었으며 농민의 판단도 있었다. 어느 하나만으로 씨앗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밭에서 한 포기의 식물을 골라 씨앗을 남기는 일은 아주 작은 선택이다. 그날 당장 밭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음 해에 심을 씨앗의 일부가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그 씨앗이 다시 자라고 또 다른 선택을 받으면 작은 차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농부는 식물의 미래를 미리 알고 선택한 사람이 아니었다. 눈앞의 밭에서 나타난 차이를 보고 다음 농사에서도 확인해 볼 식물을 골랐다. 그 선택은 다음 해의 밭에서 다시 시험을 받았다. 여러 세대에 걸친 토종씨앗의 역사는 그런 작은 선택들이 이어진 시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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