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열리는 것만 고른 것은 아니었다>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12

by호시우행

수확량·맛·저장성·조리법·노동량이 씨앗의 선택에 미친 영향


가을에 콩을 거두는 밭에서는 비슷한 크기의 콩자루가 나와도 농부가 모두 같은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 많이 나온 자루가 있으면 수확량이 많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 온 사람에게 수확량은 여러 판단 가운데 하나였다. 콩을 거둔 뒤 무엇을 해 먹을지, 얼마나 오래 두고 먹을지, 껍질을 벗기기 쉬운지, 다음 농사에 필요한 노동이 얼마나 드는지도 함께 살펴야 했다.


어떤 콩은 수확량이 많아도 집에서 잘 먹지 않았다. 삶았을 때 맛이 좋지 않거나 음식에 쓰기 불편할 수 있었다. 반대로 양은 많지 않아도 된장이나 메주를 만드는 데 알맞은 콩이 있었다. 밥에 넣어 먹기 좋은 콩과 장을 담그기에 좋은 콩의 쓰임도 같지 않았다. 농부가 씨앗을 고르는 일은 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엌과 저장공간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다음 해 씨앗을 남길 때 농부가 보는 것은 눈앞의 양만이 아니었다. 올해 얼마나 많이 거두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작물이 집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중요했다. 가족이 자주 먹는 음식에 잘 맞는 작물이라면 다음 해에도 심을 이유가 생긴다. 농사는 시장에 내다 팔 작물만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한 집의 먹거리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했다.


콩을 삶아 본 사람이라면 같은 콩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물에 불리는 시간이나 익는 정도가 다를 수 있고, 껍질의 상태나 식감에도 차이가 있다. 된장이나 메주를 만들 때도 콩의 특성은 결과에 영향을 준다. 농부가 다음 해에 어떤 씨앗을 남길지 판단할 때 밭에서 보았던 모습과 집에서 먹어 본 결과가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쌀도 마찬가지다. 논에서 수확량이 많다고 해서 그 벼가 모든 농가에서 가장 좋은 씨앗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밥을 했을 때의 식감이나 저장하는 동안의 상태, 지역에서 주로 먹는 방식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농가에서는 밥맛이 중요하고, 어떤 농가에서는 떡이나 다른 음식에 적합한 성질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씨앗은 농산물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저장성도 중요한 문제였다. 농민에게 수확은 한 해의 농사를 끝내는 일이면서 다음 수확까지 먹을 것을 보관하는 일이기도 했다. 곡식이나 콩이 저장 중에 쉽게 상하거나 벌레 피해를 크게 받는다면 수확량이 많아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든다. 반대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씨앗과 먹거리는 한 해의 농사 결과를 다음 계절까지 이어 주었다.


여기에서 먹을 곡식과 씨앗의 판단이 겹치면서도 달라진다. 사람의 식탁에 오래 견디는 작물이 다음 해의 종자로도 유리할 수 있지만, 먹기에 좋은 특성과 재배하기 좋은 특성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농부는 두 가지를 따로 생각하기도 하고 함께 생각하기도 했다. 한 해의 농사가 남긴 결과를 다음 농사와 다음 식생활에 어떻게 나눌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동량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같은 수확량을 내는 작물이라도 재배와 수확에 드는 수고가 다를 수 있다. 줄기가 쓰러지기 쉬운 작물은 수확할 때 더 많은 손이 필요할 수 있고, 수확 시기가 고르지 않으면 여러 차례 밭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농부에게 좋은 씨앗은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씨앗이 아니라 자신의 밭과 노동 조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씨앗이기도 했다.


특히 가족의 노동력이 농사에 직접 연결되던 농촌에서는 이런 차이가 작지 않았다. 모내기와 김매기, 수확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일이 몰려 있을 때는 작물의 특성이 농사 일정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같은 작물을 심더라도 노동을 구하기 쉬운 농가와 그렇지 않은 농가는 판단이 달라질 수 있었다. 씨앗 하나의 특성이 한 집의 농사 계획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밭의 조건도 선택을 달리 만들었다. 물이 충분한 논과 물을 오래 머금기 어려운 밭에서 같은 작물을 똑같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한 지역에서 잘 자란 씨앗이라도 다른 농가의 밭에서는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농민은 자신의 밭에서 실제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서 씨앗을 계속 사용할지 판단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씨앗’이라는 말은 농민의 삶에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수확되는 씨앗이 언제나 가장 좋은 것도 아니었다. 가장 맛있는 씨앗이 재배하기 쉬운 것도 아니었다. 저장에는 좋지만 조리하기 불편한 씨앗도 있을 수 있었다. 농민이 선택한 씨앗에는 서로 다른 조건 사이에서 이루어진 판단이 들어 있었다.


시장에 내다 팔 농산물이라면 판단 기준은 또 달라졌다. 판매할 수 있는 크기와 모양, 수확량, 유통에 견디는 성질이 중요해질 수 있다. 반대로 집에서 먹을 작물이라면 가족의 입맛과 조리법이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같은 농민이라도 어떤 작물을 어떤 목적으로 심느냐에 따라 선택 기준이 달라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농민이 씨앗을 선택했다는 말을 단순히 ‘좋은 것을 골랐다’고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농민은 자신에게 필요한 여러 조건을 동시에 놓고 판단했다. 그 조건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수확량은 많지만 맛이 떨어질 수도 있고, 맛은 좋지만 수확량이 적을 수도 있다. 저장에는 유리하지만 손질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 판단은 말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어느 콩이 잘 자랐는지, 어느 콩으로 음식을 했을 때 가족이 잘 먹었는지, 어느 작물이 수확철에 손이 많이 갔는지는 농사를 반복하면서 알게 되는 정보였다. 그러나 12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의 세밀한 감각보다 그 지식이 씨앗의 선택 기준을 넓혔다는 사실이다. 씨앗은 밭에서의 성적표만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한 농가의 씨앗 선택은 그 집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었다. 장을 많이 담그는 집이라면 장을 만드는 데 알맞은 콩이 중요할 수 있다. 떡이나 밥을 자주 해 먹는 집이라면 그 음식에 맞는 벼나 잡곡이 필요할 수 있다. 저장해야 하는 기간이 긴 집이라면 오래 두어도 품질이 유지되는 작물이 유리할 수 있다. 씨앗의 선택에는 농가마다 다른 생활의 모습이 들어갔다.


그 차이는 씨앗을 획일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같은 작물이라도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농사짓느냐에 따라 계속 다른 선택이 이루어졌다. 한 마을의 모든 농민이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한 집에서 중요했던 성질이 다른 집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선택이 여러 세대 이어지면 농가의 씨앗에도 흔적이 남는다. 특정한 음식에 잘 맞는 특성이 계속 선택될 수 있고, 저장이나 재배에 유리한 특성이 반복해서 선택될 수도 있다. 농민이 처음부터 새로운 품종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필요한 씨앗을 계속 남기는 과정이 식물 집단의 성질을 바꾸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농민의 선택이 언제나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해마다 날씨가 다르고 농사 결과도 달라진다. 올해 좋았던 씨앗이 내년에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농민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했지만 그 판단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다. 씨앗 선택은 완벽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여러 조건 속에서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현대 농업에서는 이런 선택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육종가는 수량, 품질, 병해충 저항성, 기계화 적합성, 저장성 등 구체적인 형질을 목표로 품종을 개발한다. 농민은 그 가운데 자신의 농사와 시장에 맞는 품종을 선택한다. 과거 농민이 혼자 감당했던 여러 판단 가운데 일부가 연구와 품종 개발 단계로 이동한 셈이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농민에게 선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떤 품종을 심을지, 어느 밭에 배치할지, 무엇을 판매하고 무엇을 집에서 사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만 과거에는 자신의 밭에서 얻은 씨앗이 다음 해의 선택지가 되었던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판매되는 다양한 품종 가운데 선택하는 비중이 커졌다.


토종씨앗의 가치를 살펴볼 때 이 차이를 함께 보아야 한다. 토종씨앗은 단순히 수확량이 적은 옛날 씨앗도 아니고, 반대로 모든 조건에서 뛰어난 씨앗도 아니다. 오랫동안 그 씨앗을 심어 온 농민들이 자기 생활과 농사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놓고 선택해 온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 씨앗 안에는 생산량만으로 기록하기 어려운 선택의 역사가 들어 있다.


씨앗 하나를 들여다보면 작은 알갱이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씨앗이 다음 해의 밭으로 돌아가려면 농민에게는 여러 판단이 필요했다. 얼마나 거둘 수 있는가를 살피고, 먹었을 때 어떤가를 경험하고, 얼마나 보관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농사에 드는 수고까지 계산해야 했다. 씨앗을 고르는 일은 농업과 식생활을 따로 나누지 않는 판단이었다.


많이 열리는 것은 분명 중요한 성질이었다. 그러나 농민의 삶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잘 자라고, 먹기 좋고, 보관하기 좋고, 농사짓기 감당할 만한 씨앗이 다음 해의 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토종씨앗의 모습은 그렇게 한 가지 기준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밭과 부엌과 저장공간에서 이어진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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