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13
수확철이 되면 농부의 손은 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만난다. 벼 이삭을 손으로 쓸어 보기도 하고, 콩깍지를 만져 보기도 한다. 같은 밭에서 자란 것이라도 손에 닿는 느낌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비슷했던 식물이 손을 거치면서 다른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씨앗을 고르는 일에는 이렇게 눈으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 들어 있었다.
농부가 밭에서 식물을 살피는 시간은 수확하는 날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싹이 올라올 때부터 밭의 모습을 지켜보고, 작물이 자라는 동안 여러 차례 상태를 확인한다. 어느 식물이 다른 것보다 일찍 자리를 잡는지, 어느 포기가 쉽게 쓰러지는지, 어느 이삭이 알차게 여무는지 같은 차이가 농사 과정에서 반복해서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본 모습보다 여러 해 동안 쌓인 경험이 다음 판단에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이런 지식은 바카라에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농부가 ‘이 식물은 좋은 씨앗이 된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이유를 몇 가지 문장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판단이 아무 근거 없이 이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랫동안 같은 작물을 기르면서 비슷한 식물을 여러 번 보고, 수확하고, 다시 심어 본 경험이 판단의 바탕에 놓여 있었다.
현대의 과학에서는 식물의 특성을 여러 측정값으로 기록할 수 있다. 키를 재고, 수량을 세고, 종자의 무게를 달고, 발아율을 조사할 수 있다. 농민의 밭에서는 이런 측정이 매번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농부는 자기 눈앞의 식물이 지난해와 어떻게 달랐는지, 같은 밭의 다른 식물과 무엇이 달랐는지를 비교하면서 판단했다. FAO도 농민의 품종 선발이 과학적 육종에서 사용하는 유전자형 자체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현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한다.
손은 눈이 놓치는 것을 확인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잘 여문 이삭은 손에 잡았을 때 알곡이 충분히 들어찬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마른 꼬투리를 만졌을 때 아직 수분이 남아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을 하나의 공식처럼 정해 놓을 수는 없다. 작물마다 다르고 농사 조건마다 다르며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농부의 몸은 밭의 변화를 여러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식물의 색과 모양은 눈으로 보았고, 줄기와 이삭의 상태는 손으로 확인했다. 작물이 익어 가는 때는 밭을 오가며 살폈고, 수확한 농산물은 실제로 먹거나 가공해 보았다. 씨앗을 고르는 판단은 어느 한 감각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이 겹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 경험은 한 해의 농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올해 심은 씨앗의 결과를 보고 내년에 다시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 좋았던 식물이 다음 해에도 같은 결과를 내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농부의 판단에는 ‘지난번에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기억이 들어갔다. 밭을 보는 눈은 지난 농사의 결과를 함께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밭을 보여 주면서 “이런 것은 남겨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머니가 딸에게 씨앗을 보여 주며 어느 것을 따로 두어야 하는지 알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아이가 직접 밭에 들어가 식물을 보고 만지고 수확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 차이를 익히기도 한다. 농업의 지식은 설명과 함께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이어졌다.
FAO가 소개하는 지역 종자 체계에서도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지역의 지식은 경험에 바탕을 두고 오랜 사용을 통해 시험되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지식으로 설명된다. 씨앗의 선택과 보존 역시 농민이 실제 농사에서 얻은 지식과 슬롯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농민의 감각을 특별한 능력으로 신비화할 필요는 없다. 오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달라지고 밭의 상태가 달라지면 익숙한 판단이 빗나갈 수도 있다. 사람의 기억에도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농민의 경험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농사에서 반복해서 확인되고 수정되어 온 지식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어느 씨앗을 남길지 판단할 때에는 실패한 기억도 쌓인다. 지난해에는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 남겼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던 씨앗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씨앗이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 선택에서 판단이 조금 달라진다. 경험은 성공한 사례만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실패를 기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지식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웃 농민이 밭에 와서 씨앗을 받아 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씨앗을 비교하기도 했다. 어떤 농부가 잘 거둔 씨앗을 다른 사람이 받아 심어 볼 수도 있었다. 같은 씨앗을 받아도 결과가 다르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농민의 경험은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다시 시험되었다.
씨앗을 주고받는 일은 단순히 알갱이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 씨앗을 어느 밭에 심었는지, 언제 심었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움직였다. 어떤 농민은 특정 씨앗을 계속 찾았고, 어떤 농민은 자기 밭에 더 맞는 씨앗을 따로 골랐다. 씨앗의 이동과 지식의 이동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말로 남은 것도 아니다. 농부가 밭을 한 바퀴 돌면서 어느 식물이 눈에 띄는지 판단하는 과정은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 수확한 곡식을 손에 올려 보고 어느 것이 알찬지 살피는 일도 문서로 남기기 어렵다. 그해의 날씨와 밭의 상태를 기억하면서 다음 해의 씨앗을 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은 농업의 실제 모습에 들어 있었지만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쉽게 사라졌다.
특히 씨앗을 고르고 관리하는 일에는 여성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도 많았다. 집에서 먹을 곡식을 다루고, 씨앗을 고르고, 저장하고, 다시 필요한 때 꺼내는 일이 여성의 농업 노동과 연결된 경우가 있었다. 다만 모든 지역에서 여성이 같은 역할을 맡았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지역과 작물과 농가의 노동분담에 따라 역할은 달랐다. FAO의 자료에서도 여성의 종자 선택과 관리 역할이 중요했던 사례와 지역에 따라 역할이 달랐던 사례가 함께 확인된다.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과 다르다. 오히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그 지식의 내용을 정확하게 복원하기 어려워졌다. 씨앗은 남아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생겼다. 같은 이름의 씨앗을 찾아도 그 씨앗을 다루었던 사람들의 경험까지 함께 되살리기는 어렵다.
토종씨앗을 보존한다고 할 때 이 부분을 놓치기 쉽다. 씨앗을 냉장고나 저장고에 넣어 두면 생물학적 자원은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씨앗을 언제 심었고 어떤 식물을 남겼으며 어떤 농사 조건에서 잘 자랐는지에 관한 경험까지 자동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씨앗과 씨앗을 다루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FAO는 농민 품종과 재래종이 농민의 선발과 종자 보존, 교환, 재배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속 변화하는 유전적 다양성의 저장고라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는 씨앗뿐 아니라 그 씨앗을 다루는 농민의 지식이 함께 놓여 있다.
그래서 농민의 손끝을 말할 때 단순히 옛날 사람들의 ‘감’만을 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랜 기간 반복된 관찰과 경험이 몸에 익은 상태에 가깝다. 오늘 밭에서 본 것이 어제의 경험과 비교되고, 올해의 결과가 지난해의 기억과 비교된다. 그 비교가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준다. 감각은 경험에서 떨어져 나온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경험이 몸에 남은 한 형태였다.
이런 지식은 새로운 기술과 만날 수도 있다. 농민의 경험을 과학과 반대편에 세울 필요는 없다. 오늘날에는 농민의 현장 관찰과 과학적 측정을 함께 이용해 지역에 맞는 품종을 찾거나 선발하는 방식도 이루어진다. FAO 역시 농민의 품종 선택과 현장 실험을 과학적 연구와 연결하는 참여적 접근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정확한가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 농민의 경험이 어떤 질문을 가지고 식물을 바라보았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연구자는 수량과 형질을 측정할 수 있고, 농부는 자기 밭에서 그 식물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오랫동안 볼 수 있다. 두 지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식물을 관찰한다. 어느 한쪽을 없애야 다른 쪽이 살아나는 관계도 아니다.
토종씨앗의 역사를 따라가면 씨앗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 한 씨앗이 여러 세대 살아남았다는 사실 뒤에는 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고, 다시 심어 본 사람이 있었고, 실패한 뒤 다른 씨앗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식은 말로 전해졌고 어떤 지식은 몸에 남았다. 씨앗의 생명은 사람의 경험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 농부가 손바닥 위에 씨앗을 올려놓는 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작은 씨앗 몇 알은 서로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지난 농사의 결과와 올해 밭의 모습이 함께 떠오를 수 있다. 어느 씨앗을 남길지 결정하는 일은 손바닥 위에서 끝나지 않고 지난 시간과 다음 농사 사이로 이어진다.
손끝으로 고른 씨앗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 씨앗이 다음 밭에서 다시 자라면 농부는 자신의 판단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잘못 골랐다면 다음에는 다른 씨앗을 찾았다. 잘 맞았다면 그 씨앗을 다시 남겼다. 그렇게 경험은 씨앗을 바꾸고, 바뀐 씨앗은 다시 경험을 만들었다.
기록되지 않은 감각과 경험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농민이 식물을 정확하게 통제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민이 식물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보고 자신의 농사에 맞는 판단을 계속 수정해 왔다는 이야기다. 토종씨앗은 그런 판단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밭에 남긴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