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에 새겨진 계절>

토종 씨앗, 문명을 묻다 9

by호시우행

동일한 날짜, 동일한 시각에 정성스레 심은 콩 알갱이라 할지라도 들판 위에서 푸른 꽃을 피워 올리는 시각은 저마다 같지 않다. 따스한 햇볕이 차오르는 평야 지대의 들판에서는 이미 보랏빛 꽃망울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산자락 밑 서늘한 비탈밭에서는 여전히 푸른 잎만 무성하게 무성할 수 있다. 어느 밭에서는 가을 바람을 받아 꼬투리가 단단하게 차오르는데, 또 다른 골짜기 밭에서는 밤기온이 서늘하게 내려앉아 작물의 생육이 더디게 지체되기도 한다.


씨앗은 인간이 종이에 찍어낸 숫자의 달력을 읽지 않는다. 대신 피근에 닿는 기온의 온기와 햇살의 길이, 땅속 습도의 미세한 변화를 전신으로 마주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고유한 생명의 시간을 고요히 살아낼 뿐이다.

오랫동안 흙을 매만지며 살아온 농민에게 계절이란, 달력 위에 정갈하게 인쇄된 날짜보다 훨씬 먼저 온몸의 감각을 타고 찾아온다.


손끝으로 흙을 쥐어보며 겨울 동안 굳었던 땅이 비로소 녹아내리는 시기를 알아채고, 새벽녘 들판을 바라보며 무서운 늦서리가 서서히 물러나는 순간을 눈여겨살핀다. 장대비가 한 바퀴 쓸고 지나간 뒤 밭에 들어가 쟁기질을 할 수 있는 온전한 날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봄 씨앗을 뿌린 직후 며칠 동안 단비가 내려줄지 아니면 가뭄이 찾아올지를 수없이 가늠한다. 모를 내고, 잡초를 매고, 수확 낫을 드는 시기 또한 결코 농부의 일방적인 기분이나 임의적인 계산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작물이 스스로 자라나는 생물학적 속도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그리고 앞뒤로 사슬처럼 이어지는 다른 농작물들의 전체 일정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씨앗 하나를 언제 밭에 심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는, 결코 한 가구의 소소하고 작은 결정일 수 없다. 너무 일찍 욕심을 내어 씨를 뿌리면 땅속에서 트인 고운 싹이 갑작스러운 늦서리와 추위를 맞아 차갑게 무너져 버린다. 반대로 너무 늦게 씨를 뿌리면 결실을 맺기도 전에 서늘한 가을 추위가 들이쳐 알곡이 껍질 속에서 채 익지도 못한 채 쓰러지게 된다. 한창 꽃이 피어나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절기에 지루한 장맛비가 길게 이어지면 그해 결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며, 가을철 수확기에 거친 비가 겹쳐버리면 잘 여문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노동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농사란 단순히 식물을 인위적으로 기르는 기술이 아니라, 식물이 가진 생명의 시간표에 인간의 일상과 노동의 시간을 온전히 맞추어가는 숭고한 기다림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한 작물이 정직하게 밭으로 들어가면,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농가의 전체 일정 또한 긴밀하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가을철 벼를 거두어들인 자리에 곧바로 보리나 밀을 심어야 하는 남부 지방의 이모작 지대에서는, 벼가 언제 익어서 논을 비워주느냐가 다음 작물의 파종 시기를 절대적으로 결정짓는다. 봄에 심은 작물의 생육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져 늦게 익는다면, 그 뒤를 이어 밭을 채워야 할 후작 작물의 자리까지 사정없이 밀려나고 만다. 결국 한 작물이 가진 고유한 생육 기간의 길고 짧음이, 그 밭 전체의 한 해 농사 지형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 것이다.


농민들이 가을 마당에서 다음 해의 씨앗을 가려낼 때, 단순히 눈앞의 수확량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않았던 명백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밭에서 무성하게 잘 자라나는 것만큼이나, 제때에 맞추어 깔끔하게 익어주는 조화로움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무리 수확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수한 종자라 할지라도, 그 지역에 서리가 내리고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속을 채워 익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씨앗으로 선택받아 남겨질 수 없었다. 나아가 다른 농작물의 수확 시기와 번잡하게 겹쳐 온 가공의 일손이 마비되는 사태 또한 깊이 고려해야 했다. 온 동네가 한꺼번에 수확에 매달릴 수 있는지, 우리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무사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지도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차대한 조건이었다.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시간은 결코 밭 하나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작물의 수확 시기가 정해지면 마을 사람 전체의 노동과 삶의 형태 또한 그에 맞추어 일제히 움직였다. 봄철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수십 가구가 온 동네를 순회하며 품앗이를 나누어야 했고, 가을철 수확기에는 하루의 해 길이에 따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동의 밀도가 달라졌다. 한 작물의 성숙이 지체되면 그 뒤에 이어질 온 동네의 계절 농사 전체가 줄줄이 늦어졌다. 농민에게 씨앗의 생육 기간은 곧 자기 가족의 한 해 노동 일정이였으며, 때로는 마을 공동체 전체의 생해 주기를 움직이는 거대한 시간의 축이었다.


그렇기에 정직한 농촌에는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삶의 시간표인 '농사력(農事曆)'이 존재했다. 농사력은 단순히 관공서에서 나누어주는 종이 달력에 적힌 날짜의 모음집이 아니었다. 어느 절기에 밭을 갈아엎고, 어느 때에 씨앗을 뿌리며, 어느 시기에 무성한 잡초를 매어주고, 언제 낫을 들어 수확할 것인가를 자연의 정직한 변화와 수백 년의 경험적 지혜를 엮어 정리해 낸 실용적인 생활의 시간표였다.


그 그윽한 농사력 안에는 단순히 기온의 높낮이만 적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앞 작물을 언제 잘라 거두어내는지, 장마철 폭우가 어느 달에 집중되는지, 가을철 첫서리가 언제 내려앉는지, 가족들의 일손이 어느 계절에 비교적 여유로운지, 그리고 이웃의 든든한 노동을 언제 빌려 올 수 있는지가 한데 오롯이 녹아들어 있었다. 농부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맘때쯤 씨를 뿌린다”는 짧은 한마디 속에는, 조상 대대로 흙을 매만지며 쌓아 올린 수백 년의 경험적 데이터가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농사력은 인간이 자연을 제 마음대로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오만한 시간표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이 내놓는 거역할 수 없는 계절의 순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동을 정해둔 거룩한 약속에 가까웠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온 토종씨앗 역시 바로 그 계절의 약속 한가운데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씨앗은 찬 기운이 채 가시기 전 서둘러 땅에 뿌려야만 했고, 어떤 씨앗은 땅이 따뜻하게 덥혀질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가 심어야 했다. 어떤 작물은 여름이 오기 전 짧은 기간 안에 속전속결로 자라나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고, 어떤 작물은 뙤약볕 내리쬐는 긴 여름 전체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가을날 천천히 영글어가야 했다. 농민들은 해마다 자신의 밭 위에서 이 오묘한 씨앗들의 차이를 정직하게 확인하고 가려내었다.


글자로 적힌 서바카라을 통해 배운 지식도 있었지만, 몸의 감각과 노동을 통해 뼈에 새긴 현장의 지식이 훨씬 더 강렬했다. “이 콩은 다른 것보다 조금 늦게 심어도 제때 알아서 알이 찬다.” “이 곡식은 가을 첫서리가 오기 전에 반드시 거두어들여야 한다.” “이 작물은 장마가 터지기 전에 반드시 꽃을 피우고 져야 열매를 맺는다.” “우리 동네처럼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밭에서는 너무 늦게 익는 종자를 심었다간 한 해 농사를 망친다.”


이처럼 시골 마을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정겨운 말들 속에는, 식물의 생육 메커니즘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 지역이 지닌 고유한 계절적 특성에 대한 절박한 경험이 한데 들어차 있었다.


가을 마당에서 다음 해에 심을 씨앗을 고르는 일 또한 이러한 경험적 자산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다. 지난해 너무 일찍 피어난 꽃 때문에 갑작스러운 늦서리를 맞아 꼬투리를 맺지 못한 콩 포기가 있었다면, 농부는 다가오는 해에 그 씨앗을 다시 밭으로 들고 나갈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했다. 지독하게 장맛비가 길었던 해에도 끝까지 줄기가 무르지 않고 열매를 맺어준 강인한 개체가 있었다면 눈여겨보아 종자로 가려내었다. 가을 추위와 첫서리가 예년보다 서둘러 찾아온 해에는, 그 시련 속에서도 제때 익어 고개를 숙인 씨앗이 다가올 농사의 생명줄로서 더욱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평년의 기후만으로는 씨앗이 가진 진정한 생명적 가치를 온전히 판단할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농민들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온몸으로 마주한 계절은 매년 동일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채롭게 흔들렸다. 유난히 폭우가 쏟아진 해가 있는가 하면, 바닥이 갈라지는 지독한 가뭄이 계속된 해가 있었다. 봄철 이상 추위가 길었던 해가 있었는가 하면, 여름철 뙤약볕과 더위가 너무 일찍 찾아온 해도 있었다. 평소에는 그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던 씨앗이, 이처럼 혹독하고 어려운 계절을 만나면서 오히려 자신의 숨겨진 유전적 강인함을 눈부시게 드러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단하지만 정직한 현장의 경험들은 어김없이 다가오는 해의 씨앗 선발로 정직하게 이어졌다.

한 해 농사의 실패가 그저 허무한 절망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떠한 조건에서 작물이 무너졌는지, 어떠한 개체가 끝까지 버텨내어 살아남았는지를 가슴속에 또렷하게 기억해 두면, 다가오는 봄날 씨앗을 고르는 농부의 손길은 비할 바 없이 정교해졌다. 농민은 지나간 해의 혹독했던 계절을 반추하면서 다가올 해의 씨앗을 가려내었다.


그렇게 조상들의 씨앗은 수많은 계절의 시련을 무사히 건너가며 지상 위에서 생명을 이어온 것이다. 현대 생물학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식물의 생육 리듬과 성숙 시기는 고유한 유전적 특성과 온도, 일장(햇볕의 길이), 수분과 같은 환경적 요인들의 정교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특정 작물들은 일조 시간의 미세한 변화나 온도 파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를 유전적으로 조정한다. 동일한 작물이라 할지라도 특정 지역의 흙 위에서 안정적으로 결실을 맺으려면, 그 지역이 가진 사계절의 생태적 리듬과 완벽히 부합하는 유전적 생육 스펙트럼을 확보해야만 한다.


물론 과거의 농민들이 이러한 복잡한 식물생리학의 학술 용어를 구체적으로 외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자신이 일구는 밭 위에서 수년 동안 작물의 자람세를 세심하게 지켜보며 몸으로 체득했다. 언제 씨를 뿌려야 싹이 가장 건강하게 틔어 나오는지, 어느 절기에 꽃이 피어나는지, 언제쯤 낫을 들어 거두어들여야 서리의 피해를 피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귀중한 경험적 지식은 가을 마당에서 씨앗을 가려내는 엄정한 기준으로 되돌아왔다.


수십 세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러한 인간의 선발과 자연의 도태가 반복해서 쌓여가면서, 그 지역 씨앗이 가진 생육 특성 또한 완벽하게 차별화된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일찍 익어 자리를 비워주는 조생종의 특성이 반복해서 선택되기도 하고, 그 지역의 짧은 생육 기간에 딱 들어맞는 강인한 성질이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기도 했다. 이것은 단 한 해의 우연한 선택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대에 걸친 기후와의 투쟁 및 농부의 다정한 선발이 만들어낸 생명적 결과물이었다.


그렇기에 사계절의 시간은 씨앗의 단단한 몸체 속에 선명한 흔적을 새겨 넣는다. 그 흔적은 씨앗 표면에 서툴게 적힌 문자가 아니다. 어느 절기에 푸른 꽃을 피워 올리고 열매를 영글어내는지, 얼마나 긴 생육 기간을 필요로 하는지, 어떠한 기온과 일조 조건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자라나는가 하는 생물학적 성질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땅을 일구는 농부가 그 작물의 고유한 특성을 오롯이 알아보아 다가오는 세대의 씨앗으로 남겨두면서, 계절과 씨앗 사이의 거룩한 관계망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이 오묘한 생명의 관계망은 밭두렁을 넘어 사람들의 정겨운 음식 문화로까지 곧장 연결되었다. 가을철 수확한 곡식은 그 계절에 즉시 요리하여 먹기도 했지만, 정성껏 저장해 두었다가 먹을거리가 부족한 서늘한 겨울과 이듬해 봄날에 꺼내어 요리해 먹었다. 어떤 작물은 햇볕에 바짝 말려 헛간에 걸어두어야 했고, 어떤 작물은 깊은 장독 속에 넣어 깊은 발효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작물의 수확 시기가 저장의 시기를 정했고, 그 정성 어린 저장은 다가오는 해의 농사를 지탱할 씨앗을 남겨두는 숭고한 행위와 완벽하게 하나로 얽혀있었다.


한 해의 정직한 끝자락에 남겨진 씨앗 한 주머니가, 다가오는 해의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위대한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옛 농촌의 시간은 단순히 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는 차가운 직선의 시간이 아니었다. 파종 뒤에 생육이 있었고, 생육 뒤에 풍성한 수확이 있었으며, 수확 뒤에는 정성 어린 보관과 저장이 뒤따랐다. 저장된 곡식 가운데 일부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탱할 양식으로 소비되었고, 가장 단단하고 우수한 일부는 다가올 농사를 위해 조심스럽게 남겨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봄날이 찾아오면 그 소중한 씨앗은 다시 정직한 밭의 흙 속으로 돌아갔다.


이 거룩한 순환의 반복 속에서 농민들은 한 해의 삶을 살아내는 동시에, 다가올 해의 생명을 차분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가을 마당에서 씨앗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히 식물의 종자 알갱이를 곡간에 보관하는 물리적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가오는 해에 과연 어떠한 혹독한 계절과 기후가 몰아칠지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다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그 계절을 겸손하게 맞아들일 생명적 준비를 마쳐두는 일이었다. 가을날 어떠한 특성을 지닌 씨앗을 남겨두었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해 농사의 생태적 선택지와 안전망의 폭은 비할 바 없이 달라졌다.


사계절의 기후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흔들리는 기후 변동의 해에는 이러한 씨앗의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년보다 너무 일찍 매서운 더위가 찾아오거나, 여름철 장맛비가 한꺼번에 무섭게 쏟아져 내리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농촌의 정교한 농사 일정이 순식간에 어긋나 버릴 수 있다. 예전과 완벽히 동일한 시기에 씨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흙과 기후의 생육 조건이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도 있다. 수확의 시기가 기형적으로 달라지고, 그 뒤를 이어져야 할 후작 작물의 농사 일정 또한 줄줄이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오랫동안 한 지역의 사계절 리듬에 온몸을 맞추어 왔던 씨앗과 농사력의 거룩한 관계 또한,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의 파도 앞에서는 다시 정밀하게 조정되고 시험받아야만 한다. 아무리 한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토종씨앗이라 할지라도, 다가올 미래의 미증유 기후까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과거의 혹독한 시련을 잘 견뎌내었다고 해서, 다가올 미래의 상상하지 못한 변동성까지 무조건 이겨낼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러나 수많은 계절의 시련을 통과하며 밭 위에 남겨진 조상들의 씨앗 속에는, 다채로운 환경적 시련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농민들의 깊은 경험과 선택의 역사가 유전적으로 축적되어 있다.


그 축적된 경험이 미래의 완벽한 풍작을 무조건 보장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급변하는 기후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세심하게 살피고 가려내어야 하는지에 대한 위대한 생태적 질문을 던져줄 수는 있다. 이 씨앗은 어느 절기에 푸른 꽃을 피워 올리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가을 알곡을 영글어내는가. 여름철 뙤약볕과 예측할 수 없는 더위를 어떻게 견뎌내는가. 가을철 비가 늦게까지 이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 수확의 시기가 달라졌을 때 뒤이어지는 농사 일정과 충돌하지 않고 유연하게 조화를 이루는가.


봄날 씨앗을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는, 이 정직하고도 절박한 생태적 질문들을 다시 농사의 한가운데로 끌어오는 일이다. 사람은 종이 위에 인쇄된 달력의 숫자로 계절을 세지만, 식물은 흙의 온도와 햇살의 길이, 그리고 비의 변화 속에서 진짜 계절을 몸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땅을 일구는 농민은 그 둘 사이의 미세한 간극 속에서 씨를 뿌릴 날을 정하고, 낫을 들 수확의 때를 판단하며, 다가오는 해의 흙으로 내어줄 다정한 씨앗을 가려낸다.


단 한 알의 토종씨앗이 정직한 밭의 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달력 위에 적힌 숫자 하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숫자를 둘러싸고 수 세기 동안 축적되어 온 수많은 자연의 조건과 농부의 삶의 경험이 함께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토종씨앗에 깊이 새겨진 계절은, 단지 지나간 한 해의 반짝인 날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반복되어 온 파종과 수확, 혹독한 기후적 실패와 정성 어린 선발, 그리고 땀 젖은 노동과 인내의 기다림이 마침내 완성해 낸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다.


상 위 사계절의 흐름이 거세게 바뀌어가는 오늘날, 씨앗은 또다시 엄혹한 생태적 시험대 위에 올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계절의 리듬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다가오는 세대를 위해 밭 위에 남겨두어야 할 씨앗은 과연 어떠한 얼굴을 한 씨앗이어야 하는가.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9화<우리 동네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