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인간을 다시 묻다. 14
아침에 일어나려고 몸을 돌린다. 팔로 침대를 짚고 허리를 세운다. 다리를 바닥으로 내리고 발바닥을 붙인다. 몸이 조금 흔들리면 발에 힘을 준다. 중심이 잡히면 손을 뗀다. 몇 초 동안 팔과 허리와 다리와 발이 차례로 움직였지만, 나는 그 움직임을 따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몸은 늘 그렇게 움직인다. 눈은 앞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는다. 발은 바닥의 높낮이를 느끼고 손은 컵의 무게를 알아챈다. 심장은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뛰고 숨은 쉬어진다. 배가 고프면 속이 먼저 알려주고 피곤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두 하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른다.
손가락 하나가 아파도 몸 전체가 달라진다. 작은 상처 때문에 컵을 잡는 손 모양이 달라지고 병뚜껑을 돌릴 때 힘을 주는 곳도 달라진다. 숟가락을 쥐는 방법까지 달라진다. 아픈 곳은 손가락 하나인데 그 불편함은 손가락 안에 머물지 않는다.
발목을 삔 날에는 그 사실이 더 분명하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오르내리던 계단 앞에서 잠시 멈춘다. 어느 발을 먼저 올릴지 생각하게 된다. 한 발을 올리고 다른 발에 몸의 무게를 싣는다. 내려갈 때는 난간을 잡는다. 계단은 어제와 같은 높이인데 몸이 달라지니 계단을 오르는 방법도 달라진다.
몸의 한 부분이 달라지면 다른 부분이 따라 달라진다. 발이 불편하면 다리가 달라지고 다리가 달라지면 허리의 힘도 달라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몸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부분들이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한 사람의 하루 안에서 이어진다.
다른 사람의 몸을 보면 그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같은 계단을 오르는데 걸음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두 계단씩 오르고 어떤 사람은 한 계단씩 오른다. 난간을 잡는 사람도 있고 중간에 쉬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몸이 다르니 길을 만나는 방법도 다르다.
문도 그렇다.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미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동작이다. 손에 힘을 주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손잡이의 모양부터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팔을 크게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문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문은 같은 문인데 모든 몸에게 같은 문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몸에도 기준을 세운다. 걷는 속도, 계단의 높이, 의자의 높이, 글씨를 읽는 속도, 말을 주고받는 속도에도 익숙한 범위가 있다. 그 범위 안에 있는 몸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벗어난 몸은 설명이 필요해진다.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몸이 원래 그렇게 생겨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오랫동안 비슷한 몸을 중심으로 집과 거리와 학교와 일터를 만들어왔기 때문일까. 내 몸을 생각하면 이 질문을 지나치기 어렵다. 머릿속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분명한데 실제 움직임이 생각만큼 정확하게 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다. 걸음을 옮기려는 생각과 발이 움직이는 사이에 작은 차이가 생긴다. 말을 할 때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 있는데 입에서는 그만큼 빨리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몸을 내 명령을 기다리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걸음을 옮길 때 나는 다리에게 하나씩 지시하지 않는다. 발이 바닥을 느끼고 몸이 기울어지면 다른 쪽 다리가 몸을 받친다. 중심이 흔들리면 몸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움직인다. 그 과정의 대부분은 생각보다 먼저 일어난다.
말도 다르지 않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문장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숨을 고르고 혀와 입술을 움직이고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한 말과 실제로 나온 말 사이에는 몸이 있다.
몸을 기계처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계는 부품으로 나눌 수 있다. 바퀴가 닳으면 바퀴를 바꾼다. 배터리가 망가지면 배터리를 바꾼다. 고장 난 부분을 찾아 새 부품으로 교체하면 다시 움직인다.
그러면 몸도 기계처럼 부품을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일까.
무릎 하나가 바뀐 사람을 생각해보자. 수술이 끝났다고 바로 예전처럼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무릎을 보호하면서 몸이 익혀온 자세가 있을 수 있다. 한쪽 다리에 더 많이 실었던 무게를 다시 나누어야 할 수도 있다.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는 느낌도 달라질 수 있다. 걷는 동안 허리와 엉덩이와 다른 쪽 다리도 달라진 움직임을 익혀야 한다.
바뀐 것은 무릎 하나인데 걷는 몸 전체가 다시 배워야 한다.
여기에는 기계와 다른 점이 있다. 몸은 새 부품을 끼우고 원래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달라진 부분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새로 익힌다.
그렇다고 몸을 부품으로 나누어 보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의사는 아픈 곳을 찾아야 한다. 무릎을 살피고 심장을 살피고 혈관과 신경을 살펴야 한다. 몸을 부분으로 나누어 보는 일은 몸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몸은 검사표에 적힌 무릎이나 심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사는 무릎을 본다. 나는 그 무릎으로 걷는다. 의사는 심장의 상태를 확인한다. 나는 그 심장을 가진 채 사람을 만나고 긴장하고 안도한다. 같은 몸을 보고 있지만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
철학에서 몸을 생각해온 사람들도 이 차이를 오래 붙잡았다. 몸을 눈앞에 놓인 물건처럼 바라보는 것과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손을 예로 들면 쉽다. 손은 내 앞에 놓인 물건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손을 사용할 때 손은 물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컵을 잡고 문을 열고 흙을 만지는 동안 손은 내가 세계와 만나는 움직임 속에 있다.
그래서 몸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과 몸을 여러 부분의 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손과 발은 하는 일이 다르다. 눈과 귀도 하는 일이 다르다. 심장과 폐도 서로 다른 일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따로 살아가지 않는다. 손이 아프면 발걸음이 달라지고, 발이 아프면 앉는 자세가 달라진다. 눈이 피곤하면 하루의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움직이고 함께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몸이라고 부른다. 이런 생각은 다른 사람의 몸을 바라볼 때도 달라붙는다. 어떤 사람에게 계단은 쉽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 빠르게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 손잡이를 돌리는 일은 간단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 차이를 곧바로 몸의 부족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몸은 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기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래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몸의 모습이 기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계단의 높이도, 문의 무게도, 의자의 높이도, 말을 주고받는 속도도 특정한 몸을 편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정해져 왔을 수 있다.
그러면 몸 하나를 이해하는 일은 그 몸만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몸이 살아가는 공간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몸의 차이가 모두 슬롯가 만든 것은 아니다. 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들면 힘이 달라지고 병이 생기면 움직임이 달라진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몸도 있고 살아가면서 달라지는 몸도 있다. 같은 환경에서도 사람마다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몸도 계속 변한다. 어린 몸에서 어른의 몸이 되고, 나이가 들면 또 달라진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달라지고 병이 지나가면 몸의 힘이 달라진다. 눈이 예전보다 쉽게 피곤해지고 오래 걸으면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런데 몸이 달라질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픈 몸도 내 몸이고 늙어가는 몸도 내 몸이다. 치료를 받은 몸도 내 몸이다. 몸의 일부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내 몸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몸의 하나됨이 조금 이상해진다.
나는 몸을 내 것이라고 말하지만 몸의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하지는 못한다. 몸을 돌볼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몸의 일부를 고칠 수도 있지만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두 알 수 없다. 몸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몸 밖으로 빠져나와 내 몸 전체를 바라볼 수는 없다. 몸을 보고 있는 나도 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다시 몇 걸음을 걷는다. 발이 바닥에 닿는다. 다리가 몸을 받친다. 허리가 따라 움직인다. 눈은 앞을 보고 귀는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어느 부분에도 따로 명령하지 않는다. 여러 부분이 움직이는데 나는 그것을 하나의 걸음이라고 부른다.
몸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여러 부분이 서로 다른 채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몸의 하나됨인지도 모른다. 하나라는 것은 모든 부분이 같다는 뜻일까.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고 부르는 것일까.
내 몸은 정말 하나의 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