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안과 밖은 어디에서 나뉘는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15

by호시우행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입 안에 머물던 물이 목을 지나 몸 안으로 내려간다. 조금 전까지 컵 안에 있던 것이 이제 몸 안에 있다. 같은 물인데 자리가 달라졌다. 컵과 몸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었지만, 물은 그 경계를 지나왔다. 밥을 먹을 때도 그렇다. 밥상 위에 놓여 있던 음식이 입을 지나 위로 들어가고, 몸은 그것을 소화하여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 바깥에 있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몸의 경계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숨을 쉴 때는 그 경계가 더 낯설어진다. 방 안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공기는 코와 기관지를 지나 폐로 들어가고, 몸 안에서 여러 작용을 거친 뒤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내가 숨을 쉬는 동안 방 안의 공기와 내 몸 사이에는 끊임없는 교환이 일어난다. 조금 전까지 방 안에 있던 공기가 내 몸을 지나 다시 방 안으로 돌아간다. 몸은 바깥과 분리되어 있지만 바깥과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피부를 보면 몸의 경계는 가장 분명해 보인다. 손끝으로 피부를 만지면 여기까지가 내 몸이고 그 너머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등에 물이 닿으면 물은 바깥에 있고 손은 안에 있다. 손을 닦으면 물은 떨어져 나간다. 그런데 피부는 벽과 다르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피부의 감각이 달라지고, 뜨거운 물에 손을 대면 그 뜨거움이 몸 전체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팔을 가볍게 건드렸을 때에도 접촉은 피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깥에서 온 자극이 몸 안에서 감각과 움직임을 일으킨다.


농사를 지을 때면 이 경계가 손에서 쉽게 드러난다. 흙이 손바닥에 묻고 손톱 밑으로 들어간다. 땀이 나면 흙과 물이 뒤섞여 손에 달라붙는다. 밭에서 캔 고구마를 씻어 밥상에 올리고 그것을 먹으면, 조금 전까지 밭에서 자라던 것이 입을 지나 몸 안으로 들어온다. 흙에서 자란 것이 몸을 이루는 데 쓰인다. 우리는 이런 일을 너무 자주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먹는다는 것은 바깥의 물질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몸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숨을 내쉬고 땀을 흘리며 소변을 보고, 상처가 생기면 피가 난다. 피부에서는 오래된 세포가 떨어져 나간다. 몸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다시 바깥으로 나간다. 몸의 경계는 안쪽에 무엇인가를 가두어 놓은 선이라고만 할 수 없다. 몸은 경계를 통해 바깥과 물질을 주고받는다.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막아내며, 자기 안에서 생겨난 것은 다시 바깥으로 내보낸다.


경계는 막는 선이면서 통과시키는 자리다. 상처가 생기면 그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피부가 찢어지는 순간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몸의 경계가 드러나고 피가 나온다. 통증이 생기고 몸은 상처를 막으려 한다. 바깥에서 들어올 수 있는 먼지나 세균을 막으면서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려는 일도 함께 일어난다. 몸은 아무것이나 받아들이는 열린 공간도 아니고 바깥의 모든 것을 차단하는 닫힌 공간도 아니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바깥과 만나야 하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몸의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음식이 위와 장을 지나가는 과정도 볼 수 없다. 혈액이 몸속을 어떻게 흐르는지, 간과 신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평소에는 알지 못한다. 나는 몸 안에 살고 있지만 몸 안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다.


병원에서는 혈압을 재고 피를 검사하며 영상을 찍는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통해 몸의 상태를 살핀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고, 계단을 오를 때 숨이 평소보다 가쁘다는 것을 안다. 의사는 수치로 몸을 보고 나는 느낌으로 몸을 살아간다. 어느 한쪽만이 진짜 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전부 드러나지 않는다. 아플 때 그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배가 아픈데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속이 불편한데 피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머리가 아파도 머리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일이 분명한 감각으로 나에게 온다.


피곤하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날도 있다.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무겁다. 걷는 동안 평소보다 다리가 빨리 지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내가 뒤늦게 알아차릴 때도 있다. 내 몸인데도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항상 먼저 아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몸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비슷하다. 악수를 하면 다른 사람의 손이 내 피부에 닿는다. 가까이 앉은 사람의 체온과 움직임이 내 몸의 감각에 들어온다.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면 귀로 들은 소리가 몸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편안한 목소리를 들으면 굳어 있던 몸이 풀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몸은 분명 나와 구별되어 있지만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별개의 세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경계를 없애버릴 수도 없다. 내가 아픈 곳을 다른 사람이 대신 아파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내 몸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내 몸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가질 수 없는 자리가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경계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몸이 있고, 각자의 통증도 있다.


경계가 있다는 것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몸의 안과 밖을 생각할 때 단순히 어디까지가 내 몸이고 어디부터가 바깥인지를 찾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피부라는 분명한 경계가 있고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있지만,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계속 달라진다. 공기는 들어오고 나가고, 음식은 몸을 이루는 재료가 되며, 땀은 몸 안에서 만들어져 바깥으로 나온다. 바깥의 온도와 소리는 몸의 상태를 바꾸고, 몸의 상태는 다시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바꾼다.


몸은 그렇게 세계와 접촉하며 살아간다. 흙을 밟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음식을 먹는다. 다른 사람의 손길과 목소리를 받아들인다. 몸은 바깥과 구별되면서도 바깥과 관계를 맺는다. 경계가 있기 때문에 나와 세상을 구별할 수 있고, 그 경계를 통해 세상과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나는 내 몸의 경계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두 알지 못한다. 나는 몸 안에 있으면서 몸 안을 전부 볼 수 없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각해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심장은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뛰고, 숨은 내가 세지 않아도 이어진다. 아픔이 생긴 뒤에야 어디가 이상한지 알아차릴 때도 있고, 몸이 먼저 지친 뒤에야 내가 피곤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내 몸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몸을 안다는 것은 몸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검사 결과를 읽는 것도 몸을 아는 일이지만,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는 것을 느끼는 것도 몸을 아는 일이다. 아픈 곳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몸의 이상을 느낄 수 있고, 몸이 보내는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몸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아는 것일까?

내 몸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다 알 수 없는 몸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일까?


물을 한 모금 더 마신다. 물이 몸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물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몸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모르는 일이 몸 안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몸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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