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진심일수록 놓치기 쉬운 것
D-3.
10개월 동안 준비한 신규 서비스의 출시를 사흘 앞두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유료화’였다.
무료로 이용하던 서비스에 가격표를 붙이는 일.
회사에는 필요했지만 고객이 좋아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 내내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왜 고객이 돈을 내야 하지?
회사에서 시킨 일이라고 해서 저절로 내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납득할 만한 ‘왜’를 찾고 나서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10개월을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서비스가 일이 아니라 나 자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출시를 앞두고 PR 담당자와 미팅을 했다.
나는 서비스를 꽤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돌아온 질문은 날카로웠다.
“결국 회사가 돈 벌려고 만드는 서비스 아닌가요?”
“고객 입장에서 혜택이 정말 와닿을까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모든 전제를 알고 있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회사의 수익과 고객의 편익이 어디에서 만나는지, 왜 이 서비스가 필요한지.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퇴근할 무렵 PR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고, 또다시 디테일한 질문이 이어졌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속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어제도 다 설명했는데.’
‘대체 몇 번을 더 이야기해야 하지?’
‘이 정도는 알아서 정리해주면 안 되나?’
평소라면 넘겼을 말에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상대의 말을 끊기 시작했고, 결국 통화는 차갑게 끝났다.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서비스에 대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서비스를 지키는 일과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이 내 판단과 능력에 대한 의심처럼 들렸고, 그래서 설명이 아니라 방어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일을, 어느새 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거래처와 통화하는 한 온라인 게임인을 봤다.
지친 얼굴로 앉아 있던 사람이 전화가 울리자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객님. 제가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다시 피곤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방금 전 다툰 PR 담당자가 떠올랐다.
'그 사람도 자기 일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서비스를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능성을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세상에 나가기 전에 문제를 찾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냉소적인 고객처럼 질문해야 했다.
우리는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사실 같은 것을 지키고 있었다.
'서비스가 실패하지 않는 것.'
그제야 내가 질문을 질문으로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10개월 동안 이 일을 너무 내 것으로 품은 나머지, 서비스에 대한 의심을 나에 대한 의심처럼 받아들였다.
회사에서 싸움이 커지는 순간은 의외로 이런 때가 많다.
상대가 나쁜 말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애쓴 일을 건드렸기 때문에.
내 말에도 이유는 있었다.
상대 역시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나.’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끝까지 따지는 것보다, 내일 이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A님, 아까는 제 입장만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말씀드린 것 같아요. 10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쌓인 불안을 A님에게 풀면 안 됐는데,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전송하고 나니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편해졌다.
얼마 뒤 답장이 왔다.
“저도 통화 끝나고 많이 후회했어요. OO님 마음 다 이해합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지하철에서 같은 대화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몇 달 뒤 그녀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이직을 준비하는데 레퍼런스 체크를 나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나보다 오래 함께 일한 사람도 많았는데 왜 나인지 궁금했다.
그녀가 말했다.
“OO님이라면 제 장점이랑 단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필요해요.”
우리는 한 번 크게 부딪친 사이였다.
그런데 그 갈등을 지나며 오히려 서로를 더 정확히 알게 됐다.
만약 그날 내가 끝까지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저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생각보다 누가 맞았는지가 오래 남지 않는다.
프로젝트는 끝나고,
회의에서 무엇을 주장했는지도 희미해지고,
그렇게 중요했던 숫자도 결국 다른 숫자로 대체된다.
그런데 사람은 남는다.
의견이 달랐을 때 어떻게 말했던 사람인지.
감정이 상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던 사람인지.
틀어진 관계를 다시 돌려놓을 줄 아는 사람인지.
예전에는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 같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상대가 맞았다고 인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사과는 누가 옳았는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이 관계를 여기서 끝내지 않겠다는 선택에 더 가깝다.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고,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 자신처럼 지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일 때가 많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이 사람과 다시 잘 일할 수 있는 것 중,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