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가장 똑똑한 사람

잘하는 사람보다 변할 줄 아는 사람이 무서운 이유

byyour philosophy

회사에서 피드백은 흔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보고서 위에서도, 일대일 면담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 오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알겠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다음날 비슷한 결과물을 가져온다.

때로는 설명하고, 때로는 방어하고, 마음속으로는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13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며 딱 한 번,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달라지는 장면을 봤을 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밤, 괜히 입을 열었다


저녁 9시가 넘은 회의실이었다.

입사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신입사원 A님이 다음 날 발표할 자료를 열었다.


발표를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불안해졌다.

내용은 뒤죽박죽이었고 논리의 연결은 자꾸 끊겼다.


다음 날은 신사업을 위해 처음으로 유관부서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이대로 가면 힘들겠는데.’


솔직히 조금 삐딱한 마음도 있었다.

얼마나 똑똑한지 한번 보자.


나는 시니어였지만 그녀의 사수는 아니었다.

굳이 늦은 시간에 에너지를 들여 피드백할 이유도 없었다.


피드백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해야 하고,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고르고, 때로는 그 뒤까지 바카라임져야 한다.

그냥 “고생했어요” 하고 집에 가는 게 훨씬 쉽다.


그런데 내일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곤란해질 모습이 눈에 보였다.


결국 입을 열었다.

“A님, 준비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이대로 발표하면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장표를 하나씩 넘기며 논리의 빈틈을 이야기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앞뒤의 주장이 연결되지 않고,

이 전략으로는 상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말은 하나였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회의실을 나오고 나서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도 내가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심했나.’

‘내가 바카라임질 일도 아닌데 그냥 넘어갈걸.’



다음 날,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다음 날 오전.

A님이 사람들 앞에 섰다.

그리고 발표를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내가 당황했다.


어제의 발표가 아니었다.


논리의 비약은 사라졌고, 이야기의 순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했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돼 있었다.

전날까지 신입 같았던 사람이 회의를 끌고 가고 있었다.

유관부서 담당자들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


회의가 끝난 뒤 A님이 나에게 말했다.

“OO님 덕분에 잘 끝났어요. 어제 집에 가서 발표 내용을 전부 대본으로 만들었거든요.”


순간 전율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했던 말을 누군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있었던가.


듣기 싫은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는데,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꺼내 밤새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똑똑함은 빨리 알아듣는 능력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빠르고,

센스가 있고,

남들보다 쉽게 답을 찾는 사람.


그런데 회사에서 오래 일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한 번의 경험으로 다음번에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을 빨리 배우고,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제의 방식을 오늘 버릴 수 있는 사람.


A님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피드백을 무조건 따랐기 때문은 아니다.

모든 피드백이 옳을 리 없다.

때로는 상사가 틀리고, 시니어가 시대에 뒤처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남의 말을 전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쓸 만한 신호까지 버리지 않는 능력이었다.


생각보다 이게 어렵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더 좋은 회사에 가고 싶고,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고,

지금보다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성장은 종종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것은 배움의 욕구보다 자존심일 때가 많다.



사람은 언제 가장 빨리 성장할까


그날 이후 나도 피드백을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좋은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아무리 정확한 말을 해줘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한마디를 듣고도 자신의 방식을 다시 만드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멀리 간다.

성장의 속도를 가르는 건 피드백의 양보다, 불편한 말을 처리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A님이 종종 생각난다.

완벽한 발표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날 밤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고도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 앞에서 나를 지키는 것과

내 생각을 지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일을 오래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매번 맞는 사람이 되는 능력이 아니라,

틀렸을 때 빨리 달라질 수 있는 능력 아닐까.


그리고 나는 지금,

누군가가 내게 불편한 말을 건넸을 때

얼마나 빨리 나를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일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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