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까
서른 살,
첫 이직을 한 지 6개월 만에 팀장 제안을 받았다.
기쁘기보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목적은 하나였다.
사업을 배워 서른다섯 살 전에는 독립하기.
그런 나에게 팀장이라는 자리는 목표라기보다 갑자기 던져진 숙제에 가까웠다.
더 이상했던 건 내가 두려워한 것이 성과가 아니었다.
팀을 잘 이끌 수 있을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팀원들이 나를 좋아할까.
사람들이 나를 팀장으로 인정할까.
연차는 내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그 산업과 직무에서는 고작 6개월 차였다.
스타트업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들을 ‘이끈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가 불쑥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OO님을 많이 좋아해요.”
“다들 OO님이 팀장이 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돌리려고 조금 과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나에 대한 호의를 크게 드러내지 않던 동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믿고 따른다니.
5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팀장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이 사람들 앞에 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첫 직바카라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가 생각한 좋은 팀장은 꽤 단순했다.
팀원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믿고,
함께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물론 지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좋은 상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그 후로 8년이 흘렀다.
몇 차례 이직했고, 자진해서 팀원으로 내려간 적도 있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 지쳤기 때문이다.
남의 감정과 성장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 일만 잘하고 싶었던 시기였다.
팀장이 되면 내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
성과가 좋지 않은 사람과 불편한 대화를 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평가를 줄 수 없고,
회사와 팀원의 입장이 충돌할 때 그 사이에 서야 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빨리 불가능해진다.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상사는 같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다시 팀장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상사의 제안으로 팀장이 됐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실장 자리까지 왔다.
실장 제안을 받았을 때는 첫 팀장 때와 두려움의 종류가 달랐다.
이제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지가 가장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사업은 하향세였다.
조직 전체에 무거운 피로감이 감돌았다.
전임 실장도 오랜 실적 부담과 사업의 정체 끝에 회사를 떠난 뒤였다.
내가 그 자리를 맡는다고 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이제부터 이 사업과 조직이 잘되지 않는 이유가 내 바카라임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제안을 거절했다.
“제가 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사가 말했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역할이나 직바카라을 맡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꼭 능력이 뛰어나서만 오는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운과 타이밍도 따라야 하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 하겠다고 하는 게 결과적으로 좋은 경우가 많아요. 회사는 제안을 수락한 사람에게 결코 냉정하지 않거든요.”
내가 여전히 망설이자 상사는 다시 말했다.
“회사는 그 사람이 그 순간의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제안한 거예요.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만 가지고 질바카라하거나 모든 바카라임을 묻지는 않아요. 그게 회사의 생리더라고요.”
그 말은 내가 직바카라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꿨다.
나는 그동안 직바카라을 이미 자격을 증명한 사람이 받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맡는 순간부터 결과에 대한 바카라임도 온전히 내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순서가 반대일 수도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뒤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주고,
그 자리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커지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선택하는 것만큼,
회사 역시 나를 선택한 것이다.
나 혼자 조직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도 그 선택의 바카라임을 함께 지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조금 숨이 트였다.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실장이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두려워했던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조직을 다시 연결하고, 막혀 있던 협업의 물꼬를 텄다.
무엇보다 한동안 무겁기만 했던 회의실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안도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나에게 ‘나는 좋은 상사다’라는 자신감을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바카라이 올라갈수록 좋은 상사가 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른 살의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를 걱정했다.
지금은 다른 것이 무섭다.
내 판단 하나가 사업의 흥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퇴사를 생각할만큼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내린 결정으로 어떤 사람은 기회를 얻고, 어떤 사람은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것.
직바카라이 높아질수록 내 일의 결과보다
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남기는 결과가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예전보다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선뜻 그 자리를 원할까.
다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두렵다는 것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요즘도 가끔 회의실 복도를 지나다 유리창 너머로 상사와 마주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본다.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긴장한 채 앉아 있는 뒷모습.
새로운 역할을 제안받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오래전의 내가 떠오른다.
팀원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까 봐,
좋은 상사가 되지 못할까 봐,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서른 살의 나.
그때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있다.”
지금 내가 비슷한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면 조금 다른 말을 해주고 싶다.
완벽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도 굳이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 역시 여전히 좋은 상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람을 이끄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말과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간다.
좋은 상사는 자신감과 능력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내 결정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