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 vs.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나는 같이 일할수록 불편했는데, 이상하게 위에서는 늘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자기 팀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정확히 짚었다.
임원이 중요하게 보는 일은 놓치지 않았고, 필요한 순간에는 성과를 제대로 알렸다.
대부분 어려워하는 임원에게는 먼저 살갑게 다가갔다.
진행 상황을 적당한 타이밍에 공유했고, 윗사람이 불안하지 않게 만들었다.
솔직히 한동안은 그걸 모두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리더가 되고 사람을 평가하는 위치에 서자,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건 정말 정치뿐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능력을 그 사람은 가지고 있었던 걸까.
계속 생각해보니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꽤 명확했다.
자신이 한 일을 잘 보여줬고,
자기 팀의 성과를 조직 안에서 돋보이게 만들었고,
힘들게 한 일이 있다면 그 고생도 적당한 순간에 알렸다.
무엇보다 결과가 있었다.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굳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일을 맡기면 성과를 만들고,
그 과정을 알아서 설명해주고,
먼저 다가와 소통하며,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사람.
팀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밤새 만든 일을 팀장이 위에 잘 알리고, 우리 팀이 한 일을 인정받게 만들어준다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좋은 팀장일 수 있다.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것마저도 그의 능력이었다.
내가 그 능력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그에게 그 능력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고 내가 느낀 불편함까지 틀렸던 것은 아니다.
내가 싫었던 건 그가 성과를 잘 알리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한번은 여러 팀이 함께 준비하던 프로젝트에서 그의 팀 일정이 늦어졌다.
앞 단계가 밀리니 뒤에 연결된 팀들의 일정도 줄줄이 밀렸다.
런칭 날짜는 바꿀 수 없었기에, 결국 여러 팀이 야근하며 시간을 메워야 했다.
우리 팀도 몇 주동안 늦게까지 남아 일을 했다.
가장 화가 났던 건, 이런 상황에서 미안해하지 않는 그의 태도였다.
독촉해도 돌아오는 건 무응답 뿐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나?' 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런칭 소식을 알리기 위해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저희 팀이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겨우 일정에 맞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런칭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팀도 정말 밤을 새웠고, 결국 자기 몫을 끝냈다.
하지만 마치 본인들이 이 프로젝트의 주역인 것처럼 들리게 했다.
임원은 고생했다며 그의 팀을 칭찬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팀의 일정이 늦어지는 동안 같이 밤을 새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늦어져 다른 팀들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다들 힘을 합쳐 만든 결과입니다."
그 한마디가 있었다면 내 느낌은 꽤 달랐을 것 같다.
같은 행동이 위에서는 ‘성과를 잘 보여주는 능력’으로,
옆에서는 ‘함께한 사람을 지우는 태도’로 보일 수 있었다.
리더가 되고 나서 이 사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내 앞에서는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보고도 깔끔하고,
결과도 좋고,
요청한 일을 놓치지 않는다.
나를 불안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사가 가장 보기 어려운 모습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이 상사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가.
동료의 요청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보다 연차가 낮거나 힘이 약한 사람의 말을 어떻게 듣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해결하려 하는지, 바카라임부터 나누려 하는지.
자신의 성과를 설명할 때 함께 만든 사람의 이름도 같이 올리는지.
이런 모습은 평가권자 앞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과 옆에서 부딪히며 일한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 내가 직접 본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인지와
사람들과 잘 일하는 사람인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큰 성과를 내면, 결과만 보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을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하나를 더 묻는다.
그 성과를 만드는 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신뢰를 남겼는지.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을 남겼는지.
아니면 성과 뒤에 반복해서 지친 사람들이 남았는지.
성과를 알리는 능력도 중요하다.
상사를 안심시키는 능력도 중요하다.
자기 팀을 보호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것도 분명 능력이다.
하지만 옆 사람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성과를 만드는 것 역시 능력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회사생활이 길어질수록 후자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몇 년이 지나면 그때의 숫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프로젝트에서 몇 퍼센트를 성장시켰는지도 희미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과 다시 일하고 싶은지는 꽤 오래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일을 잘하나?”보다 한 번 더 묻게 된다.
“저 사람과 일했던 사람들도 다시 그와 일하고 싶어 할까?”
어쩌면 한 사람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상사가 혼자 내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