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면에 대하여

뭐 어때, 하고 어깨 한 번 으쓱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시간 속에서, 요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멍해질 때가 많다.


일정과 일정 사이, 자유로운 시간. 정해진 일정, 수면, 식사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이다. 일정은 많지 않다. 일부러 그렇게 두었다. 자유로운 시간을 넉넉히 두고 싶어서.


그럴 때는 으레 TV를 켠다. 유튜브나 OTT를 보며 시간을 흘려버린다. 언제나 볼 것은 있다. 다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많다. 바카라도 있다. 게임도 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또 가까이 있다.




그런데 그런 풍요 속에서, 나는 빈곤에 빠졌다.


하릴없이 썸네일만 넘겨가며 정작 플레이 버튼 누르기를 주저한다. 썸네일을 보는 그 찰나, 머릿속에서 그 콘텐츠를 시뮬레이션해 버리고, 그러면 나는 이내 그걸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이건 그냥 웃고 떠들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겠지. 이건 뭔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마을에서 누군가가 그 비밀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일이겠지. 이건 또 이번 가을 패션 트렌드는 정핏으로 가고 있다며 각종 럭셔리 쇼를 소개하는 영상이겠지.


분명 어떤 때는 재미있게 보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그냥 보고 싶지가 않다. 어차피 다 그게 그거 같아서.




검증된 아카이브에서 무언가를 다시 꺼내 들어도, 그조차도 시들하다. 다음엔 이걸 봐야지, 했던 하루키의 소설이나 별점 5점 줬던 영화도 막상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볼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역시나, 머릿속에서 그 내용들이 푸드덕 비둘기가 갑작스레 날아오르는 것처럼 떠오른다. 그러면 또 이내 자그맣게 피어오른 불길이 피식 꺼져 버린다.


그래서 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시간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려보며 짐짓 인상을 찌푸린 채 썸네일만 넘기고 있는 것이다.


시계를 본다. 아직 저녁 시간까지는 좀 더 남았다. 그럼 뭘 해야 하지?




바카라이라도 볼까, 생각한다. 쓸데없는 쇼츠나 넘겨볼 바에야 바카라 읽는 게 나으니까.


내 아카이브 가상의 바카라장에서 가상의 바카라을 꺼내 들고 그 제목을 곱씹다 보면, 또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활자를 좇아 내려가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 흥미보다 귀찮음이 압도한다.


알고 있는 지식에, 혹은 새로운 앎에 몇 시간을 며칠 동안 투자하려니 쉬이 시작하기가 어렵다.


게임이라도 해볼까, 싶기도 하다. 시간 보내는 데 제격인 모바일 퍼즐이나 합성 게임 같은 것을 해보기도 한다. 시간은 잘 가지만, 결국 스테이지가 올라가면 과금이 요구되고 난이도가 고도화되어 이내 흥미가 식어버린다. 노예 시절 그렇게 고민했던 것들이라 더 진절머리가 난다.


제대로 된 게임을 하는 것은 이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하는 건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한참 고민하고 고심한 끝에 무언가를 골라 시작을 해봐도,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다. 이내 뒤로 가기를 누르거나 바카라을 덮어버린다.


썸네일을 보며 떠올렸던 그 내용들이 첫 장면을 보면 더욱 확실한 비둘기가 되어 내 앞에 날아오른다. 앞으로의 전개가 펼쳐지며 엔딩이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이걸 과연 다시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둬버리고, 또다시 검은 화면으로 돌아가 거기에 비친 벽면의 액자와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고 인상 찌푸린 심각한 표정의 내 얼굴과 마주한다.




결국은 아무거나 재생 버튼을 누른다. 틀어두는데 집중은 하지 않는다. 그 움직이는 화면과 소리는 집안의 정적을 채우기 위한 소음으로서 기능하고, 내 흥미를 사로잡지는 못한다.


나는 멍하니 그 화면을 보며 딴짓, 역시 쓸데없는 짓을 한다. 쇼핑몰을 열어 그 소음에 또 다른 썸네일의 소음을 더한다. 머릿속은 어지럽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죄바카라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비로소 얻어낸 이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니, 이래도 되나 싶다.


게으름이 심해진 걸까 생각해 봐도,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몇 달 전에도 똑같이 시간을 보냈고, 그때도 게을렀다. 하지만 평화로웠고 죄바카라감도 없었다. 그때는 보고 싶은 콘텐츠가 많았다.


하지만 콘텐츠에 흥미가 떨어지자, 덩달아 그게 채워주어야 할 시간의 질도 나빠지고 죄바카라감까지 가져오고 말았다.


내 뇌도 이제 쇼츠의 도파민에 오염되어 웬만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그저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뭔가 해야 할 것 같다는 노예근성이 나를 노려보며 다시 고개를 든 걸까?


이렇게 지내도 되는가,라는 생각까지 엄습해 나를 순간 불안으로 밀어 넣는다. 한편으로는 그러면 뭐 어때, 한다. 나는 시간 부자인 것이다. 남는 시간을 알차게 쓰든 구겨서 버리든 나만 만족하면 그만인 것을.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




노예 시절의 주말이면 열 시간이 넘는 게임 플레이 영상을 몰아서 보곤 했다. 직업이 이래 봬도 게임기획자였기에 미처 플레이해보지 못하는 게임도 업무에 참고할 겸 겸사겸사로 봤다.


같은 기획자들조차도 그걸 지겨워서 어떻게 다 보고 있냐며 놀랐지만, 나는 종일 그걸 틀어놓고 앉아서, 누워서, 밥 먹으며 봤다. 일에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걸 보는 게 재미있었다.


이제 매일 그걸 볼 수 있게 된 지금이지만, 오히려 게임 플레이 영상은 보지 않는다. 더 이상 게임 기획자도 아니거니와, 흥미 자체가 어딘가에서 퓨즈가 나가버려 탁, 하고 꺼져 버린 것만 같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공포는 깜짝 놀라는 게, 스릴러는 팽팽한 긴장감이, 코미디는 가벼움이, 드라마는 억지 감동이 왜인지 부담스럽고 피로해 보기가 싫어진다. 벌써 다 본 것만 같다.




하염없이 썸네일을 넘기다 과거에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새로고침 버튼을 마주할 때, 혹은 스르륵 잠들어버려 밤잠을 설칠 때, 나는 노예 시절 그토록 바랐던 쉼의 시간의 가치가 이제 예전 같지 않음을 깨닫는다.


시간 부자가 되어 일 년이 넘게 그걸 펑펑 써버리고 나자, 이제는 그 시간을 쓰는 게 버겁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시간이란 상대적인 것이로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애초에 그 시간에 무얼 하고 싶은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여유로운 한편 밀도 있으며 뿌듯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데, 이제 고작 일 년 차 은퇴자의 멋모르는 과한 욕심인 걸까?


아르바이트나 운동, 식사처럼 하기로 한 것을 할 때에는 시간은 충실히 흐른다. 문제는 그 일정들이 끝나고, 다음 일정 사이에 과거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다.


내가 하고자 바랐던 것은 대부분 하고 있다. 내 고양이들과의 여유 있는 시간, 강아지들을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 시간, 일주일 두 타임의 테니스, 또 필라테스, 아침에 하는 러닝, 내키는 대로의 수면, 종종 외식, 가끔 외출, 때로 여행.


그럼에도 시간이 남는다. 예전에는 귀하게 찾아온 온전한 자유와 휴식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매일과 매 시간이 그렇다. 그래서 더 이상 귀하지 않고, 남는 시간은 정말로 남는 시간이 된다.


시간이 넉넉한 만큼 느긋하게 누리고 싶으면서도, 그 게으른 시간조차 밀도 있게 흐르길 바란다. 그렇다고 뭘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욕심을 넘어 염치가 없는 수준이다.


거기에 또 다른 일정을 구겨 넣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애초에 일부러 그렇게 둔 것이다. 시간을 풍족하고 여유 있게 쓰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간을 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냥 이런 때가 있는가 보다, 하고 인정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일단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평안이 가장 우선이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아서는 다시금 지옥문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나중의 부담이 되어 내가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무언가는 시도하지 않기로 한다.


딱히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없으면 어때, 하고 어깨 한 번 으쓱해준다. 난 그래도 되는데.


그럴 땐 그냥 검은 화면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어본다. 늘어지게 햇볕을 쬐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고요한 집의 소리를 듣는다. 윗집의 아이 소리, 어딘가의 공사 소리, 바깥의 오토바이 소리 같은 것.


그러다 무언가 퍼뜩 떠오르면, 귀찮고 피로하게 느껴져도 시도는 한번 해보자 정도만 다짐한다.


그러다 보면 떠났던 흥미가 가을 전어 냄새에 홀린 며느리처럼 다시 돌아올지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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