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지불하는 감성과 만족의 거마비
예전의 이동은 언제나 어딘가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회사와 집으로 이동하기 위한 출퇴근을 했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약속장소로 이동하기도 했고, 장을 보러 가거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여름에는 더울 것을, 겨울에는 추울 것을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지하철 안의 온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종종 차도 이용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어딘가와 어딘가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공간.
나는 운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전남편이 했다. 나는 운전을 잘 하지도 못하거니와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차를 사는 것에 대한 전권은 당시의 남편에게 있었다. 원하는 차종을 사는 것에 동의해 주었더니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은 한밤중에 혼자 드라이브를 하러 다녀오곤 했다.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그 차는 내 명의도 아니었고, 해서 이혼을 하며 전남편이 가져갔다. 당분간 뚜벅이 생활을 하며 회사생활을 이어나갔으나, 은퇴를 하고 이사를 고려하니 차 한대 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없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겠지만, 사실은 사고 싶은 차가 있었다. 멋들어진 붉은색의, 지면에 낮게 붙은 2인승 로드스터 차량이었다.
나는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배기량도 출력도 마력도 상관 없었다. 그저 예뻐서 갖고 싶었다. 옹골찬 눈매며 다부지고 탄탄한 엉덩이, 매끈하게 반짝이는 붉은색 차체.
누구나 타는 차가 아닌 조금은 독특한 차를 탄다는 그런 하차감과 시선도 느껴보고 싶었다. 뚜껑을 열고 노을지는 석양을 향해 달리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랬다, 당시에는 장도 좋았고 은퇴라는 단어에 도취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런 차를 타보랴, 나는 그렇게 내 생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샀다.
내가 직접 고르고 나만을 위해 사는 차는 처음이었다. 차가 나온 날엔 흥분해서 충주까지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차를 잘 알지도 못하고,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출퇴근도 하지 않는 은퇴자가 2인승 로드스터 차량을 산 것이다.
운전 실력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어서 속도를 맘껏 내는 것도 쉽지 않고, 당연히 드리프트 같은 것은 못한다. 시속 150km 정도로 밟으면 심장이 쿵쾅대며 식은땀이 흐른다. 고속도로에서도 대부분은 2차선으로 얌전히 정속주행을 한다.
로드스터 차량이니 승차감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노면의 굴곡이 그대로 엉덩이와 척추로 전달된다. 실제로 4시간 운전한 날에는 몸살이 나 앓아 누웠다.
짐 둘 곳도 마땅찮다. 둘이서 탔는데 누군가의 가방 크기가 조금이라도 크면 트렁크에 넣어야 할 정도다. 좌석 뒤쪽의 폭 십 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은 뭘 두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당연히 가족들을 모두 태울 수도 없다. 차 사고 자랑하려 시승시켜 주는데 번갈아서 태워주어야 했다.
좁은 동네 상가 주차장에 댈 때는 항상 신경이 쓰인다. 문의 길이가 일반적인 차량보다 길기 때문이다. 가운데에 끼어 주차할 때면 몸을 구겨가며 조심조심 내리고 타야 한다.
이 차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갈 때면 나 스스로 헛웃음이 나온다. 하루 두 시간 일하고 24,000원인데 이동으로 한 시간 더 쓰고, 도로에 버리는 고급유 비용 5천원을 빼면 시급은 거의 절반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주차의 불편함과 운전의 긴장감을 내려놓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다. 노예 시절, 환승 열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뻘뻘 땀 흘리며 걷던 플랫폼을 이제는 여유롭게 걷는다.
내 멋진 차는 주차장에서 고이 쉬고 있고, 나는 어두운 지하 속을 묵묵히 움직이는 쇳덩어리에 1,500원을 지불하고 내 이동을 맡긴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오히려 더 사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전남편이 드라이브 하러 나가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날씨가 적당하거나, 노을과 바람이 나를 부르면 그저 운전하기 위해 시동을 걸기도 한다.
빗방울이 탑을 후두둑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스포츠 모드로 세팅하고 그리 크지는 않은 차의 배기음을 귀 기울여 들으며 한적한 1차로에서 풀 엑셀을 밟아보기도 한다.
여전히 갑자기 누가 들이받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차가 뒤집어지지나 않을까 허무맹랑한 걱정을 하며 무섭기도 하지만, 운전 두 시간이 넘어가면 40세의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며 스트레칭을 요구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운전하는 게 꽤나 즐겁다.
물론 2인승의 붉은색 로드스터 차량을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도 아니고, 로드스터 치고 최상급도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적당한 내 차. 돈 들여 세차한 후 앞유리에 날벌레가 압사한 흔적이라도 남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세차비가 아깝지 않은 내 차.
최근 내 자산에 차가운 겨울이 왔고, 그 겨울이 꽤나 오래가고 있어서 차량 판매를 고민해 보기도 했다.
이 한가롭고 사치스러운 은퇴 생활을 유지하는 비용 중에서 주거비용과 맞먹는 비용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붉은색 로드스터인 것이다.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
처분해야 할 이유는 찾아온 겨울처럼 명확하다. 가족들을 태울 수도 없고, 장거리 운전에도 적합하지 않으며, 연비가 좋다고도 볼 수 없다.
주차선에 얌전히 서 있는 그 일분일초, 몇십 원씩 감가상각되는 비싼 쇳덩어리.
겨울인 지금, 더 추워지기 전에 이 차는 팔아 치우고 하얀색 아반떼로 바꾸는 것을 고민한다. 감가 방어의 최강자, 저렴한 보험료, 가족들을 태울 수 있는 4인승, 주차에 부담 없는 그 모두의 차 말이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당연히 맞다. 제미나이와 이모저모 계산해서 따져봐도, 백이면 백 어서 바꾸라 권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고민하는 이 순간조차 하락 중인 내 차의 가치를 애써 외면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것이다. 주차장에서 반짝거리는 그 붉은색 차체를 향해 걸어갈 때의 만족감,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며 돌아볼 때의 흐뭇함.
하얀색 아반떼를 가진다면 당장의 비용도 아끼고, 조금은 더 비싸고 맛있는 걸 먹고, 어쩌면 몇 달 모아 럭셔리도 더 살 수 있겠으나.
적당한 날, 비가 오는 날, 노을 지는 날이 와도 딱히 드라이브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 것 같다. 탑을 열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기분을 느낄 수도 없을 것이고, 차를 타고 내리며 하차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순간도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나를 부르지 않고, 나 또한 더 이상 어딘가로 불려가야 하는 노예가 아니다.
이제 아무도 나에게 거마비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로드스터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지불하는 감성과 만족의 거마비다.
사치스러운 거마비는 오늘도 속절없이 빠져나가지만, 나의 붉은색 로드스터는 여전히 주차장에서 조용히 숨 쉬며 나를 기다린다.
이성이 제아무리 이건 옳지 않다고 단호히 소리쳐도, 나는 나의 붉은색 로드스터가 서 있는 풍경 앞에서 가만히 계산기를 덮어둔다. 날카롭게 효율을 따지며 자산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의 은퇴자이지만, 나는 아직은 이 풍경 앞에서 속수무바카라이다.
답은 나와 있다. 하지만 때로는 당연한 정답 대신 뻔뻔하게 오답을 고르고, 무채색 가득한 도로 위 홀로 붉은 점이 되어 가르랑대는 배기음을 즐기는 그 사치야말로 내가 은퇴로 산 진짜 자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