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돈이 부족해서
그래서, 이제 내 삶은 아등바등 통제 강박의 계획에서 벗어나 되는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삶은 대부분 매 순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과거의 관성과 조금은 노력해서 일구어낸 의식의 연속이다.
허세 가득히 이야기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버릇과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요새는 점심 즈음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여러 개인 또는 다인 사무실이 모여있는 작은 공유 오피스이다. 언젠가 화장실을 가러 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명치 께 손을 올려 뭔가를 잡으려 하는 행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멈칫 당황해 버렸다. 회사 다니던 시절 패용한 카드키를 태그 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퇴사한 지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사무실 좀 다닌다고 노예 시절 버릇이 다시 나오다니.
그렇게 새삼 생각해 보니, 내 하루하루에 거대한 계획은 없으나 하찮고 자잘한 버릇과 습관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나,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하고, 그 위에 스프레드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펼쳐둔다.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면, 아마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 루틴은 몸에 잘 배어있으며 시간도 매번 거의 정확히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앉을 때는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편하지만 허리에는 치명적인 자세로 앉는다.
안경을 벗은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가끔은 오른손 검지로 두 눈 사이 허공을 추켜올리곤 한다.
노예 때도, 나 홀로지만 법인의 대표가 된 지금도 사무실에 출근하면 여전히 커피부터 내린다.
누구나 버릇이 있고 습관이 있다. 하루하루의 작은 부분들은 이런 것들로 채워진다. 딱히 이렇다 할 계획이 없는 백수인 나는 더 그렇다.
버릇과 습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 시간을 철저히 지배하고 있다.
계획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이다. 계획은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들을 미리 마련하고 줄 세워 두는 것. 버릇이나 습관은 어떻게든 트리거가 당겨지면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해버리고 마는, 무의식과 근육이 이미 학습한 찰나의 계획.
어떤 행동이나 대응이 예약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 싶은데, 의식의 관여 여부 그리고 그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이다.
버릇은 정말로 거의 의식적이지 않은 행동이고, 습관은 그나마 조금은 의식이 개입되는 그런 개념이 아닐까?
버릇, 이라고 하면 무릇 버려야 하는 것이고 습관, 이라고 하면 응당 취해야 하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실제로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버릇은 부정의 의미를, 습관은 긍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톱을 뜯고, 출입구 근처에서 카드키를 찾고, 가상의 안경을 추켜올리기 위해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고.
이야기할 때 자꾸만 튀어나오는 어- 음- 아마- 같은 말버릇, 갑자기 말문이 막혀 말 더듬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이러다 다 망하는 거 아냐 싶은 부정적인 생각.
나를 당황시키는 것일수록 내가 불안할 때 튀어나온다. 불안의 찰나를 방어하기 위한 학습된 버릇들. 과거 노예로서 불안에 떨던 나날의 환각 통증.
반면 나는 매일 아침 이불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난 뒤에는 항상 욕실 유리문과 바닥을 스퀴지로 닦아내 물기를 제거한다. 잠들기 전 세안하고 난 뒤 사용한 수건으로 세면대의 물기를 남김없이 닦아낸다.
외출 전 고양이들의 영양제와 간식을 챙기고, 돌아오면 화장실을 청소해 준다. 입었던 옷은 색깔별로 정리한 옷장에 걸어두고, 구겨진 옷은 바로 다림질한다.
빨래한 수건은 흐트러지지 않게 끄트머리를 안쪽으로 포개어 접고, 색깔이 번갈아 교차되도록 정리한다. 택배 박스는 테이프와 운송장을 집요하게 뜯어내 배출하고, 배달 용기는 양념을 씻어내 말린 뒤 모아 둔다.
일주일에 나흘 이상은 일기를 쓰려고 하고, 사흘에 한 번은 땀 흘리는 운동을 30분 이상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귀찮은 것들이다. 매번 챙겨하기에 번거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즉 습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몰아서 하는 방법도 있다. 화장실 청소는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해도 세면대나 욕실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가끔 하게 되면 오히려 더 귀찮아진다. 어제도 안 했는데, 오늘은 왜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하고자 한다. 매번 하고자 한다. 해 두면 또 뿌듯하다. 엔트로피처럼 자꾸만 흩어지려는 내 주변의 것들을 정성스럽게 그러모아서 가지런히 옆에 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매일 하던 것을 격일로 하기도 하고 때로 격주가 되기도 한다.
나는 상당히 건조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편이어서 매일 바디로션을 발라줘야 하는데, 여름이 되면 습하니까 오늘은 말아버려 하면서 바르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그런 날들이 겨울까지 이어져 기어코 건선이 생길 때까지 방치하고야 말았다.
정말로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다. 샤워하고 30초만 쓰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안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게 과연 마흔 먹은 성인인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철부지 게으름뱅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사람이자 77%의 J 형 인간이라는 것과 같이, 그저 그런 것이다. 나는 내가 게으른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습관들을 만들어내 두 손 꽉 쥐고 있는 것이다. 딱히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게으른 인간이라서, 내 주변이 자꾸만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는데, 그래서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너무 실망스럽다. 내가 최소한의 내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자꾸만 그래도 해야지, 하는 것이다.
버릇 역시도 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이거야말로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집중해서 볼 때 미간을 찌푸리고, 밤이면 밤마다 턱이 부서질 것처럼 이를 갈아댄다. 전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의 버릇들이다. 이 버릇 앞에서 나의 의식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하찮게 버려진다.
이제 일도 안 하는 한량인데 손 뜯는 버릇도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있다. 분명히 고쳤는데, 왜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 않으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고, 내 마음이 딱히 불안한 것도 아닌데, 하지 않기가 그리도 어렵다. 문득 여전한 내 버릇을 보면 하아 한숨이 나오고 만다. 어떻게 안 되는 걸까?
습관을 들이고 버릇을 버리는 것도 돈으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통제 강박의 거창한 계획을 깨부수는 것은 돈으로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이 사소한 습관과 버릇을 길들이는 것은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
아니면 그저, 아직은 돈이 부족한 것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