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안에서의 안전한 스릴
나는 MBTI로 따지면 INFJ다. 그중 J는 77%로 상당한 계획형 인간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과연 그렇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인간이다.
슬롯생활을 할 시절, 평일의 나는 주말을 계획하고는 했다. 딱히 거창한 계획들은 아니었다. 금요일에 좀 일찍 퇴근하면, 8시까지 집에 가서, 삼겹김치볶음밥 배달시켜 먹고 유튜브나 좀 보다 취침. 토요일에는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여덟 시 반까지 운동, 집에 돌아와서 아홉 시까지 씻고, 열 시까지 유튜브, 고양이들 간식 좀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두 시간 낮잠, 열두 시에 일어나 점심은 에라 모르겠다 KFC. 다 먹으면 집 청소 한바탕 해주고, 끝나면 오랜만에 파이 이야기 다시 보고, 그다음엔 새로 나온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 하다 보면 여섯 시쯤 되겠지? 저녁은 꼬막비빔밥이다. 그다음은 졸릴 때까지 드라마나 보자.
그런 걸 평일에 시뮬레이션하면서 보냈다. 누군가 만나는 것도, 하물며 시간이 정해진 어떤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그저 집에서 혼자 어떻게 쉴지에 대한 일정표일 뿐이지만, 심지어 그저 뭘 먹고 볼지에 대한 것뿐이지만, 나는 주말이 되면 그 계획을 실행했다.
업무도 그랬다. 업무야말로 계획이 필연적이다. 기획자였고, 직바카라자였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을 일정 내에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여줘야 했다. 나는 정리하는 걸 잘했다. 계획을 세우고, 잘 정리해서 보고했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면 앞으로의 길이 보여서 마음이 편했다. 정리해 둔 계획을 보노라면 뿌듯했고, 그것이 잘 따라지는 것을 지켜볼 때는 더없이 흐뭇했다. 개인적으로도 노션 같은 각종 계획 앱이나 일정 관리 툴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계획이라는 건 틀어지기 마련이다. 틀어지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렇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계획이 틀어지면, 고통스러웠다. 그건 곧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건 또 곧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계획 1안을 세우고, 변수에 따라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한 여러 안을 추가로 고민해 둔다. 이 과정에서 1차적으로 고통받는다.
가장 좋은 계획, 그렇게 안 됐을 때를 대비한 차선, 그걸 또 대비하는 다음 차차선, … 계획은 점차 더 불안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게 한다. 틀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받는다. 그리고 그 상상과 당시의 내 낮은 자존감은 잘 버무려져서 그 상상 실패가 내 잘못이 되고는 했다.
실제 계획을 실행하다 보면, 계획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진다. 이것 역시 필연적이다. 막을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무엇이든 항상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업무든 삶이든 하다못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무슨 일은 벌어지고는 했다. 계획을 망치는 무슨 일이.
이때 2차 고통을 받는다. 우선은 계획이 틀어졌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다음으로 나는 이런 걸 예상하지도 못하는 바보 똥멍청이라는 자괴감에 빠져서.
3차 고통도 따라온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일어난 탓에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패닉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말을 더듬고 행동은 산만해진다.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는 멍해진다.
이쯤 되면, 계획은 그냥 고통받기 위한 통제 강박이 아닌가.
슬롯생활 후반부에 새롭게 도전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시작은 아주 희망찼다. 몇 명이 모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했고 당시의 업계 상황을 반영해 여러 고민을 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나는 버릇처럼 말했다. 봐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길 거야. 그러면서도 그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지를 시뮬레이션해보고는 했다.
하지만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큰 조직에서 작은 톱니바퀴로 살았던 사람들이 작은 조직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손잡이가 되자 서로의 개성이 각자 다른 말을 하게끔 했다.
벌써 5년 뒤를 걱정하는 사람, 당장 다음 주를 걱정하는 사람,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 비용을 걱정하는 사람. 결국 시작하면서 세웠던 계획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엉망이 되었다.
업계의 상황도 그 사이 완전히 바뀌었고 우리의 사이도 그랬다. 우왕좌왕하며 어떻게든 대응해 보려 애썼으나 인력은 이탈하고 모두가 상처를 받았으며 나아진 것 없이 나빠지기만 했다.
우리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틀어질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 시장 분위기가 그 몇 달 새 완전히 뒤바뀔 줄도 알 수 없었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들이 으레 겪는 일이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그에 대해 대응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그렇게 되고 난 후에는, 꾸역꾸역 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역시 그랬다. 학창 시절을 거쳐 대학을 다니고 취업하고 돈 벌고 결혼하고, 그렇게 숙제를 하나하나 해 나가면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는 줄 알았건만.
웬걸 나는 이혼을 했고 40세가 되기 전 조기 은퇴한, 평범에서 조금쯤은 벗어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혼을 계획할 리 없었으며 은퇴 직전까지도 10년만 더 일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온갖 확률에 노출되고 그중 하나가 그저 폭력적으로 주어질 뿐인, 변수의 연속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란 거시적으로 보면 그 무엇도 없는 듯하다. 하다못해 내 몸 하나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해 넘어지거나 병에 걸리기도 한다.
물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겠으나, 그것을 계획된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어진 상황 앞에 결정할 뿐이다. 닥쳐온 것에 대응할 뿐이다.
그랬다, 꾸역꾸역 대응해 나가는 것. 그걸 반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 후의 내 삶은 꾸역꾸역이 아니다. 그저 흘러오는 것을 마주하고 그에 맞춰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 그냥 되는대로 하고 있다.
인생의 큰 흐름은 되는대로, 하루는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어떤 유명인이 그랬는데, 정말로 정말로 맞는 말이다. 큰 흐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하루 무엇을 할지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오늘 하루도 되는대로 산다. 은퇴도 했고, 루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마치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덩어리 져 하나의 테마를 이루고, 이 큰 덩어리가 느슨하게 굴러가며 또 하나와 섞여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떤 시기는 아침에는 주로 헬스장에 가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카페에 가거나 몰 같은 곳에 놀러 가 쇼핑도 한다.
어떤 시기는 일어났다가 또 자고 하면서 아홉 시나 열 시께 까지 뒹굴거리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출근해 글을 끄적인다.
두 끼 챙겨 먹는 날도 있는 반면 한 끼만 먹는 시기도 있고, 바카라에 집중하는 시기도 있고, 쇼핑에 집중하는 시기도 있다. 큰 주제가 조금씩 바뀌며 덩어리가 굴러간다.
갑자기 어딘가 놀러 갈 때도 있다.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출발하는 여행이다. 아니면 다음 주에 해외에 가는 수도 있다.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지 않으면 비싼 숙소만 남아있기도 교통편이 비싸기도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일 가고 싶으면 정가를 주고 간다. 싸게 가면 좋겠지만, 할인받기 위해 세 달 뒤에 가지는 않는다.
그냥 돈 좀 더 주고 해, 그래버리는 것이다. 혹은 취소가 안 되어도 가고 싶지 않으면 그냥 안 가버리기도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이 있는 것은 아니고,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으나, 내키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즉흥이 더 가능해지고 되는대로가 더 빛이 난다.
요컨대 그냥, 되는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게 좋은 것 같으면 당분간 그렇게 하고, 다른 게 또 좋아 보이면 또 그렇게 하면서 커다란 덩어리를 굴려간다.
아주 풍요롭고 행복해 보이는 삶이고, 실제로 그렇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자산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낭비 또는 사치도 하는 것이다. 당장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도, 돈에서 나온다.
은퇴 후에도 부풀어 오르던 내 자산이 지금은 어느새 은퇴 시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는데, 그럼에도 케바케 계획을 세우며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계획은 불필요하니 비효율적이다. 코스피가 일 년 새 몇 배가 오르는 세상인데 뭔들 예상할 수 있으랴.
그저 내가 할 것은 어느 정도 현금을 떼어 놓고 동반자의 주도 하에 조용히 관망하며 저가 매수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럴 여유돈,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더불어 소비를 줄이는 대응 정도는 같이 해야 하는데, 이건 일 안 하는 대가라 치고 달게 받는 게 좋겠다.
또 자본주의 찬양인가 싶을 텐데, 그렇다. 여유 있는 자산은 또 다른 여유를 만들어낸다.
이제는 너무 먼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되는대로 해보는 것은 계획을 세우고 따르며 느꼈던 기쁨과는 사뭇 다른 희열을 준다. 비단 계획 없음으로 인한 설렘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즉흥이 주는 안전한 스릴과 기대감이다.
이 울타리 안에서의 되는대로는 안전하다. 그 울타리는 꽤 넓다. 그 안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P 성향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J 인간이고, 계획과 루틴에 익숙하다.
이 <대하여> 시리즈도 요일별 계획을 나눠 매주 한 편을 써내고 있고, 천천히 맞물리는 그 톱니바퀴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더 이상 통제를 위한 계획에는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계획을 세우기 위한 상상 고통에서 벗어나 울타리 안 되는대로의, 그 감칠맛 나는 설렘을 맛본다.
어차피 이제 계획을 보고할 상사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대표다. 더 이상 남의 배 불려줄 계획을 세우며 고통스러워하던 노예가 아니다.
계획은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무계획 상태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되는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좌우지간 울타리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해봐야 끝은 죽는 것뿐, 어차피 수틀리면 가기로 했다. 중요한 건 오늘 편안하기 위해 뭘 할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