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렇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
십 년도 더 전에 어디선가 봤다. 노년의 행복을 결정짓는 척도는 경제적 자유도 슬롯적 성공도 아닌, 가족과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라고.
그 연구 결과도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아니 비단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학창 시절 친구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고 대학 친구들이며 이전 온라인 게임의 지인들과 카톡방을 파고 매일 거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듯했다. 아주 친밀한 소위 베스트 프렌드라는 것도 한둘쯤은 있어 보였다.
나는 그런 게 딱히 없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연락이 끊겼고, 한 명 정도만 경조사가 있을 때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학 친구들도 연례행사로 보는 정도인데 하물며 이전 온라인 게임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리가.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늘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를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직을 한다던가 졸업을 한다던가 등 상대방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연락은 뜸해지고 뜸해지다 결국은 안부 인사 보내는 것조차 위선인 것 같아 찜찜해지고는 했다.
굉장히 마음 불편한 일이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베스트 프렌드, 친밀한 학창 시절 친구들, 슬롯생활의 지인들이 없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불리할 거라 불안하게 했다. 나에게 그런 인간관계가 없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문제가 되었다.
일부러 관리를 하려고 노력도 해봤다. 특히 슬롯생활을 함에 있어 여러 곳에 퍼져 있는 동종업계 지인의 존재는 당연히 유용하며, 직바카라자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력 추천 등의 문제로 더러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인맥 관리란 반짝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명절에 안부 인사, 생일에 자그마한 선물을 보낸다고 인맥이 쌓이길 기대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 피상적인 관계, 겉치레뿐인 인사. 그런 얄팍한 관계는 토악질이 나는데, 왜 그걸 일부러 해야 하는 거지?
그렇잖아도 불안하기만 한 내 감정을, 어떤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 모를 피상적인 인맥에 나누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답이 안 오면? 나는 상처받을 것이다. 답변 구걸도 아닌데.
그랬다, ‘일부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은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니,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웃으며 대하면서도 이 사람이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할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에 떠는 내가 답답하고 화가 났다.
결국 나는 그들이 나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그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다. 그게 인맥 관리의 목적이었다. 좋은 인상을 줘서 나중에 나에게 득이 되는 관계를 맺는 것. 그렇기 때문에 무서웠다.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까 봐.
나에게 인맥 관리란 무섭고 싫은 대상에게 부러 친한 척 웃으며 다가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대하는 관계에서 진심이 전해질 리 없었다. 애초에 진심이란 게 없으니까.
그때의 나는 그랬다.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희생해서 타인의 편의를 봐주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이 이기적이고 생각이 없다고 미워하는 뒤틀린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효과는 있었다. 슬롯에서의 내 평가는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넓은 인맥을 가지지는 못하였으나, 적어도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만큼은 나는 괜찮은 인력이었다.
보기 좋게 보고하려 애썼고 업무는 마감 기한을 넘기지 않으려 했다. 타인이 나를 좋게 평가하게끔의 노력을 업무 자체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더 신경 썼는지도 모른다.
아프다며 갑작스럽게 3일을 쉬는 팀원의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었고, 인력을 뽑아달랬다가 내보내달랬다가 하는 변덕스러운 아래 팀장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들을 위했기 때문이 아니다. 배려심 넘치고 실무도 잘하며 리더 능력도 있는, 전천후 인력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의 호의가 좋은 평가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여가고 직바카라이 높아지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많지는 않았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한 손에 꼽을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고통스러웠다.
나로서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들은 나를 미워하고 그걸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내 면전에서 하기도 하고, 뒷담을 해서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조직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잘못한 게 없었지만 그들은 나의 흠을 잡았다.
결국 나의 행동이나 입장이 그들의 이익과 충돌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나를 깎아내려 스스로를 올리고자 했고 나는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그들은 지금도 때로 나를 괴롭힌다. 불쑥 과거의 망령이 되어 나타나 나를 다시 그 장면으로 끌어들인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바보같이. 가만히 있지 말고 되갚아 줬어야 하는데, 따끔하게 쏘아붙이기라도 해야 했는데 왜 호구처럼 웃고만 있었을까.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왜 사람들과 관계하며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스트레스받아야 하는가. 나는 왜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가.
소속 팀원의 평가나 심지어는 상사의 평가도 아랑곳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며 원하는 것을 모두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보다 잘난 사람은 없는 듯이 타인을 대놓고 깔아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는가. 차라리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왜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꼿꼿한 철인이 될 수 없는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했으나 슬롯생활을 하는 이상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또 나는 원했다. 그들과 좋은 관계가 되기를. 그들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칭찬해 주기를. 나를 알아봐 주기를. 그랬기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것에 그다지도 힘들어했으리라.
혼자는 외롭고 고독했다. 꼿꼿한 철인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될 수 없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고 타인으로부터 치유받았다.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자를 가진 한낱 개체일 뿐인, 나는 슬롯적 동물이었다.
그것도 그냥 슬롯적 동물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깨닫기로, 나는 철저히 관계 의존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들을 따라 하고 그들과 닮아갔다.
상담사는 관계 중독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 존재하기보다는 타인에게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그건 알겠다. 그래서 나 스스로 존재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겠다니까?
내가 왜 그런 사람인지 의문인 때도 있었다. 결국 같은 질문의 반복이었다. 나는 왜 꼿꼿한 철인이 될 수 없는가. 답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명확했다. 그냥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질문하며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런 걸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래서 내 옆에 누가 있느냐였다. 주변에 스며들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게 정말로 중요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건 타인이 정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이 허락만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나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적 첫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거실에 앉아 울고 있다. 당시 엄마는 회사에 다녀 낮에는 집에 없었고,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자꾸 울면 할미 가버린다, 라며 겁을 주었고 정말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시기까지 했다. 나는 빛바랜 녹색 이끼가 낀 어항 너머로 할머니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이 쾅 닫히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영유아 시절의 경험일 텐데 아직까지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이 이벤트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나의 첫 기억은 그러하고, 나는 그렇게도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버림받지 않을 것 같은 관계에 목메었다. 첫 결혼이 그러했다.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무조건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삶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데, 그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상당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와 헤어졌다. 버림받지 않는다는 애매한 확신만으로는 건강한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 때문에 내가 그를 더 함부로 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 첫 연애 상대였다. 어릴 적 나 같은 건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거기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좋아했다. 처음이라 서툴렀고 당황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원래 그런 거려니, 이게 잘하고 있는 거겠거니 합리화했다.
서로의 부모님이 은퇴하실 나이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걸 하고 나면 인생에 큰 숙제는 거의 끝나는 거고, 가장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맞지 않았다. 그는 늘 응, 아니, 몰라 중 하나로 대답했다.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어서 나는 툭하면 짜증을 냈다. 내가 짜증 낼수록 그는 더 내 눈치를 보고는 했지만, 얘기 좀 하자는 나의 제안에는 늘 할 말 없다,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론 항상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지지고 볶고 살았다.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이 아니면 나를 좋아해 줄 사람 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나쁠 때가 더 많았고 나는 서투르게 그를 바꾸려 했지만 그도 내 눈치를 보며 더 파고들어 가기만 했다. 나는 혼자는 싫고 무서워 참고 살기로 했다. 폭력적인 것도 아니고 도박이나 술 중독인 것도 아닌데, 그럼 어떡해, 참아야지.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우직하고 한결같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참고 산다는 생각이 강해지며 미운 감정과 짜증은 더 쌓여만 갔다.
그 켜켜이 쌓인 감정들은 서서히 서로 간에 놓인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집 안의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룸메이트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고 결국 고통스러운 과정 끝에 헤어지기로 협의했다.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정말로 오랜 고민을 했다. 언제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무서웠다. 옆에 있는 사람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기댈 곳 없는 내가 살아갈 수나 있을까.
그러나 이 역시 자존감을 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도망쳐야 했고, 그러려면 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 내가 이혼을 결정한 그 시기도 결국 투자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정말 긴 고민과 고통 끝에 혼자가 되고 보니 웬걸, 너무 좋았다. 나 말고 인간이라고는 없는 집. 관계에 스트레스받을 일 없는 공간. 고양이 두 마리만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오롯한 내 공간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지내는 것, 강렬할 만큼의 편안함이었다. 진작에 할걸.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에게 필요했던 건 옆에 있을 사람을 선택하는 용기였다. 타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원하는 사람을 내 옆에 두고자 하는 것. 그리고 원하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 있을 용기도 낼 줄 아는 것.
결국 이 용기도 어느 정도는 돈으로 샀다고 생각한다. 내가 슬롯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투자가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면 과연 선뜻 혼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어쩌면 이 글의 맥락은 4화 ‘자존감에 대하여’와 완전히 같을지 모른다.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원천을 기반으로 깨닫고, 실행하는 것. 고통으로부터 도망친다는 생각을 해내고, 실제로 도망쳐내는 것.
가장 옆에 있을 사람, 즉 동반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럴 용기조차 없었기에 오랜 시간 힘들었다. 이별과 만남을 꾸준히 해내는 청춘들을 보면 부럽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역시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혼자돼 보는 것 역시도 해보고 나니 못할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애초에 혼자였던 것을.
여러 사람을 겪어 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아무렴 사람은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이 역시도 또 다른 이가 나의 동반자가 되어 옆에 있어 주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고작 두 명뿐이지만, 다른 이를 만나보니 내가 누구의 옆에 있느냐에 따라 정말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짜증이 날 수도,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나는 짜증스럽고 경직된 폐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에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게 나를 위해서는 다소간의 미움받음도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이건 내가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기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 더 크다. 그가 그런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나는 스며드는 사람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런 내가 되게 해 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존재만으로도, 그리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고, 아직은 더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에게는 누가 옆에 있는가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혼도 하고 은퇴도 하면서, 나는 옆에 있을 사람을 선택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정말로 거의 없다. 하지만 모두 계속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뿐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시간과 노력과 품이 들지만, 그 유지비용은 이제 부담스럽지 않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답이 있든 없든 소식을 전하고 싶으면 전한다. 때로는 답변이 없거나 시원찮을 때도 있다. 그러면 그렇구나, 한다. 여러 번 시원찮으면,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불쾌한 경험을 지속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의료계나 법조계 지인은 한두 명쯤 알아두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들 하는데, 상대방에 어느 업계에 종사하든 그 관계 유지비용이 불쾌하다면 그걸 유지할 필요는 없다. 그냥 돈 주고 병원 가고 변호사를 고용하는 게 낫다. 득을 보기 위한 억지 관계는 코르티솔을 뿜어내 더 큰 병원비로 돌아올 뿐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를 원치 않을 수 있다면, 나도 상대방을 원치 않을 권리가 있다. 반대로 내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그럴 수 있다. 결국 관계란 쌍방이며 주고받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가지는 생각은, 상대방이 나에게 가질 수도 있는 생각이다.
내가 그러면, 상대방도 그럴 수 있다. 예전의 나라면 무서워 떨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편안해지고, 한번 더 생각하며 상대방을 대하게 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섭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방도 나처럼 생각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나에 대한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건 영원하지 않다. 서로에 대한 생각은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것에 동등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한번 더 생각하며 대한다.
이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더 적어졌지만 더 이상은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딱히 쓸쓸하거나 고독하지도 않다.
딱 좋다. 나는 이런 깊이의 인간관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더 깊거나 얕은 물에 가서 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오랜 시간 다른 곳으로 헤엄치고자 했지만 결국 나의 깊이는 여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