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산 자존감
나는 자기 비하에 꽤 일가견이 있는 인간이었다.
모든 것은 내 탓이었고, 내가 못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이럴 텐데, 저럴 텐데.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해서 정말 못났다.
얄궂게도 그런 생각들이 나의 축을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동기부여를 얻기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전교 1등도 해보고, 대학도 수시에 합격해 수능도 안 봤다. 그럭저럭 서울 상위권의 대학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해서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단순 외우기 내신만 요령 피웠을 뿐이다. 진짜 잘해야 하는 건 모의고사인데 그건 엉망이다. 제대로 해낸 게 아니고 그저 운이 좋은 거다.
일도 열심히 했다. 슬롯생활의 절반 이상을 팀장 이상급의 리더로 지냈다. 아무나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내가 잘해서라는 생각은 안 했다. 나는 말 잘 듣는 졸병이니까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고, 위로 아래로 내 밑천이 곧 드러날까 노심초사했다.
표면적으로는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볼품없었다.
용기가 없어 살아가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살았다.
마치 영혼에 새겨진 듯 단단하고 까맣게 말라붙은 자기 비하라는 나의 각인은, 나를 꽤나 고통스럽게 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깊고 축축하고 좁은 우물 속에 구부정하게 무릎을 껴안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내려다보면, 그 여자아이가 빠꼼 위를 올려다봤다. 불쌍했다.
대단한 수모나 사건을 겪었던 것도 아니다,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족이었지만 오히려 평범하고 어쩌면 괜찮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내가 그런 인간인가 보다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살아서, 자존감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가지고 싶었는데, 어떻게 가져야 할지 몰랐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자존감에 대해서는 딱 그만큼 배워 알고 있었으나 그것의 무게감이 얼마만큼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 무게감과 실체를 처음 맞닥뜨린 건 20대 후반의 어느 날이었는데, 당시 나를 괴롭게 하던 사건이 있었고 나는 죽고 싶어 건물 옥상만 쳐다보며 길을 걷곤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심리상담가를 찾아갔다. 자존감 검사라는 걸 했는데, -21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상담가는 말했다.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분도 이런 점수는 안 나와요.”
공부도 해봤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계론>도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되뇌기도 했다. 하릴없이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상담도 20대와 30대, 두 차례에 걸쳐 길게 받았다. 합하면 이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 상담을 받는 당시에는 효과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그건 이천만 원짜리 감정 쓰레기통, 돈으로 내 사연을 하소연할 시간을 산 것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 돈을 럭셔리 사는 데 쓰는 게 가성비 측면에서는 훨씬 나았을지 모른다.
다들 이야기했다. 상담가도, 유튜브도, 친구도. 자존감이 높아야 해. 너 자신을 사랑하고 괜찮다고 말해 줘야 해.
그래 그래 알겠어. 그런데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데.
나는 너무 못났고, 그래서 나는 내가 싫고, 전혀 예쁜 구석이 없는데. 나는 유전자를 남기지 말아야 해, 나 같은 인간이 또 세상에 생기면 안 돼, 이런 고통을 느끼는 작은 인간을 또 만들 순 없어.
그래서 선우정아의 <삐뚤어졌어>를 많이 듣고 좋아했다. 노래방에서 열창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사는 것 같았고, 그래서 부럽고, 나만 거꾸로 서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렇지 않음을 아는데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 잘난 줄 아는, 본인이 이걸 잘한다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화가 났고 속으로 네가 뭐가 잘났냐며 그들을 경멸했다. 어째서 저렇게 자신 있을 수 있는 거지? 실제로는 허점 투성이인데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부끄럽지도 않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깊이 그들을 너무나도 부러워했다. 염원했다. 어떻게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모르겠어, 도저히 모르겠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이런 인간이구나,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다.
항상 강인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건 어떤 일이 닥쳐도 초연하고 꼿꼿이 버텨내며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그런 철인이었다.
혼자여도 고독하지 않고, 온갖 풍파에 생채기가 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또다시 나아가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철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작은 일에도 휘청거렸고 타인을 미워했지만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가상의 그 철인을 염원하며 그렇게 되지 못하는 나를 또다시 미워했다. 타인도, 자신도 다 싫었다.
30대 후반, 또 한 번 세계가 나를 할퀴어 왔다.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불안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한 악의를 적나라하게 보내왔고 나는 그 악의를 보고 시름 대다 몇 주 만에 몸무게의 십 분의 일이 줄었다.
또 비싸기만 한 쓰레기통을 사고 싶진 않았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심각하다며 진단서를 써 주고 회사를 일주일이라도 쉬라고 권고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쉬는 동안은 멍하니 드라마를 보기도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간혹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결국 일주일이 아니라 이주일을 쉬고서야 다시 출근할 수 있었다.
약을 먹으며 지내던 어느 날은 잠이 오질 않아 새벽에 일어나 기획서를 써 내려갔다. 아침 다섯 시에 출근을 하기도 하고 일주일 만에 월급의 두 배가 넘는 과도한 소비를 했다. 의사는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그러는 경우도 있다며 조울증 진단을 내렸다.
와, 조울증이래. 나 꾀병 아닌가 봐. 정말 정신이 좀 많이 아픈가 봐.
조울증이라는 병명은 기묘한 위안을 주었다. 그건 내가 단순히 우울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고, 진짜 아픈 인간이라는 증명이었다.
타인들은 행복하지만 평범하고, 나는 고통스럽지만 그들과 달랐다. 세계는 하드보일드하고, 나는 그걸 깨달은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조울증은 내 메달이고, 방패였으며, 부끄러운 자랑거리였다. 나는 주변에 내가 조울증임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그들이 내가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나를 가여워해줬으면 했다.
가히 고통 포르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혐오했다. 타인의 고통으로 위안을 얻는 것보다 더 나빴다. 내 고통을 방치하고 오히려 심취해 거기에서 위안을 얻고 있었다.
다행히도 약물은 내 뇌를 무뎌지게 만들어 주었다. 주인공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화학작용에 굴복하는 평범한 인간일 따름이다.
차츰 고통은 줄어들고, 자기 비하도 잦아들었다. 식욕도 되찾았다. 너무 되찾아서 문제가 될 정도로. 잃어버린 체중에 대한 보상심리로 죄바카라감 없이 달콤한 간식에 열중했다.
퇴근 후 과자 한 봉지를 뜯어 와그작 씹으며 그날 국장의 성과를 흐뭇하게 곱씹고, 미장에 빨간 불이 켜지는 걸 보고 미소 지으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고통의 와중에도, 아니 고통의 와중이어서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투자가 성과를 보여주었다. 어느덧 내 자산은 10억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상사와 마찰이 있었다. 그 사람은 직바카라자들을 총괄하는 보스였는데, 내 위치의 직바카라에게 더 많은 노력과 헌신을 바라지만 나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 이전에 나는 그가 나를 못 미더워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픈 걸 포함해서, 결국 내가 그의 마음에 들지 못했을 뿐이다. 아프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같은 피드백이 왔을 것이었다.
그의 요구가 나가달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권한을 다른 이와 나누고 업무를 분할할 것을 제안했다. 당연하게도 중요한 권한과 결정은 다른 이에게 중점을 두겠다는 거였다.
그렇구나, 내가 쓸모없으니 뒤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거군. 나가라는 거네!
원래의 나라면 한없이 나 자신을 질바카라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 탓을 할 수가 없었다.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덤덤했다. 약 때문인지, 차오른 내 계좌의 두둑함 때문인지. 아마도 둘 다 이리라.
처방약에 절여진 내 뇌와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수위가 올라온 내 계좌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어떻게든 돼.”
정말로 어느 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렇게도 스스로에게 되뇔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사실을.
누군가 날 미워해도 내 계좌는 그대로 있고, 그들이 나를 욕할 수는 있겠으나 내 돈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제 나에 대한 악의,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의심하는 고통을 피하려면 그런 것들을 보지 않고 듣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치면 되었다.
직바카라자로서의 바카라임, 슬롯생활에서의 미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고통을 겪어가며 돈 벌 필요가, 그리고 의욕이 없었던 것이다.
정답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퇴사를 고했고 그렇게 나는 은퇴를 했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계론>에서, “걱정과 후회는 하등 쓸모없다”라고 했다. 정확히 이런 문장은 아니었겠지만 이런 뉘앙스였음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불안과 고통은 미래와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즉 걱정과 후회로부터 온다. 당연히,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걱정과 후회를 멈출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못 했다.
우울증을 이겨내려면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자신을 사랑하라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으로부터 배운 건, 먼저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야기하는 환경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고, 빠른 해결바카라이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곳으로,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고민은 떠오르지 않는 곳으로,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그게 선행되지 않고서, 생각과 수양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보듬어주라는 것은 아마도 초등학생에게 대수학을 해보라는 것과 다름없으리라.
그렇게 패배가 아닌 선택으로서의 도망, 은퇴를 선택하자 그제야 비로소 걱정과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딱히 노력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환경이 바뀌자 자연스럽게 걱정과 후회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누구와 부딪힐 일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 되었다.
어떻게 해도 내가 원하는 철인은 될 수 없었다. 애초에 나로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깨달았다.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그러나 환경을 바꿔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나를 갉아먹고 있을 지라도 현대 슬롯를 살아가는 다수의 인간들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해온 것에 대한 미련, 그리고 도망쳐야 할 곳이 온라인 게임이라면 무엇보다도 당장의 생계에 필요한 비용.
그렇다, 결국은 현실적으로, 나를 지킬 만큼의 돈이 있어야 도망도 치는 것이다.
돈이 결국 자존감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자존감을 단단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때 자존감은 크게 위협받는다. 그리고 생계를 위한 노동은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일 수만은 없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그렇다. 매일 일 하고 관계에 스트레스받으며 고통스러운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자존감이 저절로 피어오르지는 않는다.
억만장자가 될 필요는 없다. 나 또한 그리 많은 돈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할 때 이 정도면 됐다, 버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돈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마음 한편이 조금은 든든하고, 언제라도 환경이 고통스러워지면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와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나약한 소리다, 물질주의에 찌들었다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 슬롯에서, 적어도 나에게 자존감을 기르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기본적인 욕구를 돈으로 해결하는 지금의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또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결국 고통을 피할 수 있는 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거고 어쩌면 다른 시대에서는 그게 내면의 강함이기도, 혹은 육체의 강함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 기본 조건이 돈인 것이다.
그 돈을 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단언컨대 내면만을 갈고닦아 단단해지는 것보다는 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수 틀리면 죽자”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과거 그만 살고 싶다고 되뇌던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지금은 더 살아보고 싶지만, 수 틀리면 그만하는 것이 낫겠다는 맥락이다.
그 ‘수 틀림’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미래의 내가 결정하겠지. 버틸 만하면 어떻게든 더 버티고, 아니면 뭐, 그만해도 된다는 거다.
가벼운 느낌으로, 반은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 다소간의 가벼움이 내 마음도 가볍게 해 주는 것인지도. ‘죽으면 그만이야’ 하는 밈과 같은 결일지 모른다.
결국은,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화되지 않은 어두운 미래 따위는 외면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 왔다. 그러면 앞으로도 어떻게든 하겠지. 미래의 나를 좀 믿어 주자.
요즈음의 세계는, 이게 그동안 나를 괴롭혀온 그 어둡고 축축한 세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하등 쓸모없는 걱정과 후회를 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정말로,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이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나로서는 이것도 간신히 얻어낸 것이다.
아니 사실은, 샀다에 가깝다. 나는 이 상태를 돈으로 샀다. 사는 게 가장 쉬웠다.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도망친 후에도 나의 삶이 편안할 수 있게 해 준 건 내면의 수양도, 천만 원짜리 상담도 아닌 돈이었다.
부끄럽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본주의 슬롯에 사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