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치는 방

by구슬

어린이날,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들여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숨이 깊어졌다. 앞으로 살게 될 곳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아빠와 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연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너 여기서 어떻게 살겠다는 거냐?”


맑게 갠 하늘 아래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지를 걷어붙이고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위로는 세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건너편에 내가 살 아파트가 있었다. 아빠는 속도 모르고 경쾌하게 흐르는 개천물을 보다가 얼굴을 찌푸렸고, 서른 살이나 된 동생은 언니 없이 어떻게 사냐며 징징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투룸 아파트였다. 아빠와 동생과 살던 반지하 집으로부터 독립이었다. 집을 구할 때 맛있게 먹었던 오삼불고기를 함께 먹은 뒤 둘을 돌려보냈다.


집은 전 온라인 게임 퇴직금으로 구했다. 보증금을 내고 나니 가구를 들일 돈이 없었다. 꼭 필요한 것만 조립식 가구로 장만했다. 3단 회색 바카라꽂이, 흰색 철제 바카라상과 빨간 의자가 전부였다. 분홍색 꽃무늬 벽지 위로 위태로운 가구들이 흔들거렸다. 꼭 이 집의 것이 아닌 것처럼 어정쩡하게 놓여 있는 꼴이 웃겨서 혼자 피식거렸다. 첫날밤을 기념하기 위해 방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 꼴은 더 아니어서 올리는 건 그만두었다.


위태로운책꼿이.jpg위태로운 바카라꽂이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첫 번째 방, 첫 번째 집. 청소를 반질반질하게 하고 불을 끄고 누웠다. 등이 쫙 펴지는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베란다 창 너머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예 왼쪽으로 몸을 눕혀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눈을 감고 있었다. 벌레 소리, 개천물 흐르는 소리, 심지어 구름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좋으면서도 어색해서 음악을 틀어볼까 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 보기로 했다. 너무 좋아서였을까? 눈물이 났다. “야”하고 소리를 내니, “야”하고 되돌아왔다. 온전히 혼자가 된 그 방에서 흐르던 그 눈물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반지하방을 전전하며 살았는데, 어렸을 때는 넷이 한방에서 잤다. 제일 고역인 건 엄마 아빠가 섹스하는 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동생도 들었을까?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면 왼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세상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면 헤드셋을 끼고 소니롤린스를 들었다. 그날그날 하나의 악기를 정해 그 소리만 따라갔다. 어떤 날은 색소폰 소리, 어떤 날은 드럼 소리…. 30분쯤 들었나 싶어 눈을 떠보면 두세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음악으로 지어진 동굴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전 온라인 게임보다 연봉 천만 원이 오른 자리였다.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기관의 기획팀장이었다. 서른 초반의 나에게는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 더 빨리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하면 하나같이 말했다.

“공기 좋아서 좋겠네.”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해줄 말이 없나?’

당시에는 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들떠 있었지만, 그 천만 원이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의 대가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월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우던 때가 있었다. 밤을 새우고 생활비는 과외로 벌었다. 커피를 일곱 잔 째 마시면 속이 울렁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옮기고 또 옮겼다. 그리고 결국 그 메아리치는 방에 누워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열심히만 하면 그 온라인 게임에서도 금방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머물게 될 줄도, 내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개 한 마리를 만나게 되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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