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알아보다

by구슬

“이 사람 누구인데 이렇게 연봉이 높습니까?”

의회에서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생중계로 방송을 보다가 얼굴이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아… 서울에서 여러 경력을 쌓고 온 인재로서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대표님께서 채용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설명하는 담당 과장님의 목소리에도 자신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계약서도 썼잖아. 내가 오버한 걸까?’

내가 맡은 일은 몇 년 뒤 열릴 대형 국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업계획을 짜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야. 어찌해야 좋을까?’


결국 증명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인정받아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나는 늘 떠나기 위해 머물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 대표님이 회사 단체 채팅방에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키울 사람. 잭 러셀 테리어.”

얼핏 봐도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였다. 난 얼른 꺼버렸다. 그러다 금세 다시 켜서 찬찬히 사진을 살펴보았다. 왼쪽 눈에 진하게 번진 갈색 얼룩. 그 속에서 쏘아 올린 눈빛이 ‘누구든 덤벼봐. 우헤헤.’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표님은 이 녀석이 마당에 두더지도 잡았다며 자랑했다.


직원들과 구경이나 하자며 함께 대표님 댁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원래 있던 강아지들이 함께 짖고 있었고, 사진 속 강아지는 현관 옆 펜스 안에 혼자 묶여있었다. 때는 11월이었다. 밖에 잠깐 서 있는데도 몸이 떨려왔다. 이미 사진 속 자신만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대표님의 지인이 결혼하면서 이곳에 두고 갔다고 했다. 신발장 위에 놓여 있는 가슴줄이 보였다.

"어휴. 걔 종일 그 줄만 보고 있어요."

사모님이 말했다. 가까이 있었지만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너도 버림받았구나.’


머릿속에서 그 아이가 떠나질 않았다.

‘그냥 데려와 버릴까?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야 지금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어. 잘못하면 혼자 집 안에 갇혀서 더 외로워질지도 몰라. 그래도 추운데, 마당에 묶여있는 것보다는 나랑 따뜻하게 한방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때로부터 10여 년 전, 동생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그해, 아빠의 퇴직금으로 처음 장만한 빌라집을 엄마와 아빠가 주식투자로 날렸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가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집까지 잃게 되자, 때가 되었다는 듯 아빠에게 자기 카드 빚을 갚게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자기 명의의 빚을 다 갚자,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나갔다. 그래도 얼마간은 연락이 닿았다.


“엄마, 우리 다시 반지하로 이사해. 그런데 이사 날 미니가 걱정이야. 너무 무서워할 거 같아. 엄마가 그날 하루만 미니 좀 맡아줄래? 엄마도 미니 많이 보고 싶을 거 아니야?”

“안 돼.”

쌀쌀맞은 목소리였다.

“왜, 엄마. 잠깐인데 못 맡아 줘?”

목 안이 뜨거워졌다. 아빠를 속상하게 하면서까지 엄마 카드 빚 갚아주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데…

“나 지금 누구랑 같이 살아.”

“… ….”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는 다시 반지하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엄마는 빼고. 나는 마치 우리가 잠깐 숨 쉬러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바다거북 가족 같다고 생각했었다. 바다거북의 원래 자리는 바다다. 우리도 결국 반지하로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그때부터 엄마를 잊으려 했다. 동생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가끔 종알거렸지만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삿날에는 우선 장롱 속에 이불부터 깔고 미니를 그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짐을 옮기는 내내 미니가 무사한지 연신 살폈다. 분주한 인부들 사이에서 나와 미니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아빠도, 이삿짐 인부들도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보다 못한 아빠는 “너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 해에 미니도 세상을 떠났다. 14살. 살 만큼 살았다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들까 봐 무서워서였다. 나는 완전히 납작해져 있었다. 그리고 사랑을 지키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나는 어른이 되었다. 집이 무너지고, 엄마가 떠나고, 미니가 죽는 걸 다 지켜보면서. 미니 생각에 한참 젖어 있던 나는 '강아지를 또 키운다고?’ 고개를 저었다.


며칠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표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추운데, 밖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단 하루라도 그곳에 둘 수가 없었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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