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걷다

by구슬

산바카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잎이는 그날따라 유난히 축 처져 있었다. 이마에 주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너무 긴장해서 힘이 다 빠진 것일까?’

꽃잎이는 어쩌면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산바카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안쓰러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시는 게 보였다. 나는 왼쪽으로 비켜섰다. 그때였다. 꽃잎이가 뒷다리를 쭉 뻗은 채 내 옆을 스쳐 날아오르더니 할머니의 왼팔을 콱 물었다. 아찔했다.


꽃잎이는 눈이 충혈된 채 이빨을 드러내며 짖고 있었다. 맹견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서, 구부정한 다리에 허리를 숙인 왜소한 할머니가 아파하고 있었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할머니께 뭐라고 말해야겠는데, 꽃잎이의 짖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아니, 말이 제대로 안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꽃잎이를 먼저 집에 올려다 놓고 다시 내려오겠다고 말한 뒤, 꽃잎이를 끌어안고 올라갔다. 올라가면서도 속이 상해서 눈물이 계속 뚝뚝 흘렀다.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거의 꽃잎이를 던지다시피 거실에 내려놓고는 서둘러 다시 내려왔다. 할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멍하니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언니, 나 터미널이야. 도착했어.”

“빨리 와. 나 죽을 거 같아.”


나는 급한 마음에 아파트 입구까지 나갔다. 동생이 저 멀리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이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함께 경비실에 들렀다.

“계속 방송했는데 왜 이제야 나타나요? 난 도망간 줄 알았네.”

“그럴 리가요. 그분이 사는 호수를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동생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할아버지가 먼저 나오셨다. 거듭 사과를 드리고 할머니 상태는 어떠신지 여쭤봤다.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말했다.

"처녀, 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에요. 이제 됐으니. 가봐요. 정말 괜찮아요."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꽃잎이가 나에게 다가와 코를 킁킁댔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난 꽃잎이를 무시하고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꽃잎이, 다시 보내도 될까요?"

"제가 못 키울 것 같아요."

대표님은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 뒤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나는 결국 꽃잎이를 훈련소에 보내기로 했다. 그때 나는 그게 꽃잎이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우리 둘이 여기 함께 살 수 있다고.


며칠 뒤 훈련사가 우리를 차로 데리러 왔다. 나는 시선을 둘 데가 마땅치 않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훈련사가 운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싶었다. 전날까지도 이게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훈련사는 계속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짧게 대꾸하며 건성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항복하고 결국 꽃잎이가 차 와이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말해버렸다. 훈련사는 구름 한 점 없던 그날, 가는 내내 와이퍼를 켜고 갔다. 와이퍼가 어떤 위협도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꽃잎이는 침을 흘리며 지칠 줄 모르고 짖었다. 괜히 말했다 싶었다.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저는 이게 일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이 녀석 고집 대단하네요.”라고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만 좀 해주세요. 제발.’

창밖은 맑았고, 와이퍼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왔다 갔다 했다.


훈련소는 일반 가정집 같았다. 십여 마리의 개가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거실에는 켄넬들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꽃잎이는 냄새를 맡으며 그사이를 오갔다. 선생님은 앞으로 꽃잎이가 정해진 시간에 자고 놀고 훈련받으며, 주로 켄넬 안에서 지낼 거라고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펜스 안에 묶여 있던 꽃잎이가 떠올랐다.


훈련소에는 선생님이 키우는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다. 강아지들이 고양이에게 짖는 경우가 많아 함께 키운다고 했다. 꽃잎이가 산바카라할 때 짖음이 있어서, 선생님이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때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일단 한 달 정도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다. 눈치를 챘는지 꽃잎이는 자기를 안으라고 점프를 계속해 댔다. 꽃잎이가 마음먹고 뛰면 내 코끝까지 닿았다. 입술이 따가울 정도로 핥아댔다. 나는 눈물을 들킬까 봐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가 그곳을 나왔다.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데 이건 버린 게 아닌 걸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느새 집이 꽃잎이의 물건으로 꽉 차 있었다. 내 것이 꽃잎이의 것이 되어 있었다. 주황색 짐볼은 꽃잎이가 구멍을 내서 바짝 말라붙어 있었고, 그릇처럼 오목해진 바닥 위로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꽃잎이는 그 짐볼을, 땅을 파듯이 매일매일 앞발로 긁어댔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립식 행거 맨 밑 칸에는 푹 꺼진 꽃잎이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자기 집이 있는데도 굳이 거기서 잤다. 내 옷 냄새 때문이었을까? 베란다에는 꽃잎이가 물어뜯어 터뜨린 온수매트가 아직 치우지 못한 채 둘둘 말려 있었다. 한겨울 물이 찰랑찰랑한 방바닥 위에서 헤~하고 웃고 있는 꽃잎이가 겹쳐 보였다. 방은 다시 고요했고, 나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인형에 코를 파묻었다. 고작 몇 개월 함께 살았을 뿐인데 혼자 메아리 만들던 그 시간을 까맣게 잊고 있던 나였다.


그때 훈련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제가 일부러 어떻게 하나 보려고요, 다른 개들은 켄넬에 넣어놓고, 꽃잎이만 풀어놨어요. 그리고 밖에 나와서 차 안에서 CCTV로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방 안에서 난리를 치다가 벽에 쌓여있던 켄넬까지 다 떨어트리길래 얼른 들어왔어요. 대단하네요. 견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자주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잘 좀 부탁드릴게요.” 나는 허공에다가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그날 이후 훈련사는 매일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본 걸 또 보고 또 보았다. 훈련소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풍선을 경계하면서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 프레임 밖에 있던 꽃잎이가 짠하고, 등장하더니 풍선으로 돌진해 빵 터뜨려버렸다. 고양이를 비롯해 지켜보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너무 꽃잎이스럽지 않은가? 또 다른 영상에서는 수영을 멋지게 마친 꽃잎이가 물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개들이 하이 파이브를 해주고 있었다. 특히 프렌치불독이 꽃잎이를 코로 툭 치는 장면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마치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으니, 꽃잎이가 물을 싫어해 한참을 도망 다닌 뒤에야 수영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주말에는 서울집으로 올라가 자고 왔다. 친구들도 만나고 쇼핑도 하고.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가볍게 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 훈련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견주님, 얘 그냥 집에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여기서는 너무 잘하거든요. 여기서 더 있어봤자 소용없고요, 대신 남은 기간을 방문 훈련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떠시겠어요?”

꽃잎이를 보낸 지 2주 만의 일이었다.


꽃잎이와의 이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꽃잎이를 볼 생각에 설레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져서 아쉽기도 했다. 돈을 내면 전문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었던 2주였다. 그런데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과 다시 마주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꽃잎이가 평소 좋아하던 건조 간식을 사 들고 훈련소에 갔다. 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방 안에서 꽃잎이가 나왔다. 꽃잎이는 나를 보자마자 낑낑거리며 내 얼굴을 핥았다. 그리웠던 꽃잎이 냄새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다른 개들은 모두 켄넬 안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개들의 보호자가 왔을 때도 꽃잎이가 이렇게 지켜봤겠구나.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가슴이 아팠다.


훈련소 선생님 개 백순이는 방에 나와 있었다. 백순이가 다가오자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나 영상에서 너 봤어. 꽃잎이와 잘 지내줘서 고마워.’

그런데 맙소사. 나도, 훈련사도, 백순이조차 예상치 못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꽃잎이가 자기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백순이를 물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훈련사는 황급히 백순이와 꽃잎이를 떨어뜨려 놓았다. 훈련사는 자기 개를 문 개는 처음이라며 황당해했다.


꽃잎이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물건들이 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킁킁거렸다. 나는 꽃잎이가 집에 왔던 첫날처럼 목욕시키고 어디 상한 곳은 없는지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미리 준비해 둔 간식도 먹이고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분리수면 같은 건 까맣게 잊고 꽃잎이를 꼬옥 끌어안고 잤다. 긴장이 풀어졌는지 꽃잎이는 다음날까지 잠만 잤다. 친구가 그랬었다.

“걔 군대 간 거네. 하하. 돌아오면 똑같을걸. 사람도 그래.”


며칠 뒤부터 방문 훈련이 이어졌다. 훈련사는 주차차단기 옆에 자리를 잡고 꽃잎이와 함께 섰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꽃잎이는 주차차단기로 달려들어 우렁찬 소리로 짖어댔다. 나는 창피해서,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짖는 꽃잎이가 창피했던 걸까? 아니면 이런 훈련까지 시키고 있는 내가 창피했던 걸까?


한참을 서 있던 훈련사는 안 되겠는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견주님, 사실 이거 별문제 아닐 수 있거든요. 견주님이 예민하게 받아들이시는 걸 수도 있어요.”

‘이렇게 온 아파트가 떠내려가라 짖는데 이게 별문제가 아니라고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꽃잎이를 안고 빠르게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발버둥을 치면 꽃잎이를 끌어안고 그냥 휙 지나가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달랐다. 할머니를 문 꽃잎이를, 여기저기 짖고 다니는 나의 개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만약 이 문제를 정 해결하고 싶으시다면 전기충격기를 약하게 써보는 방법도 있겠어요. 차단기가 올라갈 때 짖으면 아프다는 인식을 심어줘서 더 이상 안 짖게 될 수도 있거든요.”

고민했다. 목줄을 채우는 것도 미안하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새 전기충격기 이야기까지 듣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전기충격 훈련을 진행해 달라고 했다.


준비를 마친 훈련사는 다시 꽃잎이를 주차차단기 옆에 세워두었다. 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차가 지나가자, 차단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꽃잎이가 달려들며 짖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기충격이 가해졌다. 꽃잎이는 움찔했다. 잠시 그러더니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더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이걸 시켰구나.’

그때 경비아저씨가 나왔다.

“아니, 아까부터 시끄럽게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나는 결국 훈련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훈련사와도 연락을 끊었다. 그를 떠올리면 나의 잔인함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꽃잎이의 가느다란 목에 전기충격을 주었던 그날 이후 꽃잎이는 여전히 주차차단기를 보면 짖는다. 유모차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멀리서 차단기가 보이면 덮개를 조용히 닫아준다. 그때도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꿈을 꿨다.


하얀 새 두 마리가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있었고, 나는 감탄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방을 나가려고 뒤돌아선 순간,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그사이 새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죽여놓았다. 창틀에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죽은 새와 살아 있는 새를 함께 변기에 집어넣고 황급히 뚜껑을 닫은 뒤 물을 내려버렸다. 새들은 내려가지 않고, 변기 속에서 울고 있었다. 다시 내려도 그 소리는 계속되었다. 괴로워서 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무심코 다시 창을 바라보니, 작은 방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쉬고는 그 방울새를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방울새.jpg방울새

어릴 적 키우던 달팽이가 죽어가자, 산 채로 변기에 버린 적이 있다. 눈앞에 죽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있느니, 달팽이를 없애 버리는 선택을 했다. 꽃잎이의 목에 전기충격을 가해서라도, 얌전한 꽃잎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잔인한 선택을 한 나를 마주하는 것은 더 끔찍했다. 그래서 모두 변기 물에 내려버렸다. 꽃잎이도, 나도 없는 그런 꿈같은 세상. 모두가 파괴된 세계. 하지만 다행히도 갑자기 나타난 흰색 방울새를 보고 나는 안도했다. 사실은 살고 싶었으니까. 함께. 나는 어느새 잊고 있었다. 꽃잎이가 있어서 비로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대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마을을 산바카라했다. 어떤 날은 영하 18도였고, 또 어떤 날은 영하 20도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위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꽃잎이의 입김도 하얗게 피어올랐다. 지금이라면 아예 나갈 시도조차 못 할 그런 날씨였지만 나에게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하루 한 번은 산바카라할 것.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


꽃잎이가 짖을 사람도, 개도 없는 그 고요한 시간. 둘만 있는 그때만이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개천 돌다리도 껑충껑충 건너고 아무도 없는 야외 농구코트에서 버려진 농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사실 꽃잎이만 놀았다. 나는 그저 꽃잎이의 현란한 드리블을 계속 찍어댔다. 아예 쥐고 있던 목줄을 내려놓고 꽃잎이를 담았다. 하지만 두꺼운 패딩과 뚱뚱한 장갑 때문에 몸이 굼떴다. 놓친 장면들이 참 많았다. 어디에 내놓지 못했던 그 시절 사진과 영상들은 모두 까만색 아니면 남색 빛이다.


낡은 위험 표지판이 안내하는 좁디좁은 길도 통과했다. 간신히 그 길을 통과하면 근사한 건물이 하나 나왔는데 잔디밭이 잘 되어 있었다. 목줄을 풀어놓고 거기서 숨바꼭질도 했다. 물론 숨는 건 나만 했다. 꽃잎이는 나를 찾으면 입을 헤 벌리고 앞발을 팡팡했다. 그러다 지치면 우리는 그냥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사실 하늘은 나만 봤다. 꽃잎이는 새소리가 들릴 때 외에는 하늘을 보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봤다.


그렇게 새벽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 되면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는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는 포기하고 계단으로 다녔다. 6층쯤 되면 꽃잎이가 멈춰 서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엄마 나 안아.'

꽃잎이가 계단 위에 서서 딱 버티고 있으면, 출근을 앞둔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꽃잎이를 어깨에 걸쳐놓고 떨어지지 않게 엉덩이를 받친 뒤, 최대한 속력을 내어 올라갔다. 12층에 도착하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오는 것 같았다.


정 피곤한 날에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사람이 있으면 2층으로 올라가 빈 엘리베이터 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물론 그래도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다. 누군가 중간에 타기라도 하면, 나는 짖어대는 꽃잎이를 바스러지게 꽉 끌어안고 그 층이 어디든 간에 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몰래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4화겁쟁이들의 산바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