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이 디폴트인 나라

그래서 오히려 좋아!

by스제



노잼도시 헬싱키

핀란드에 가기 전, 비자를 받으러 광화문역 근처에 위치한 핀란드 대사관에 갔다.

대사관에는 핀란드에서 가볼만한 곳이나 핀란드에서 해볼만한 것들이 정리된 바카라자도 있었는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즐길거리 바카라자를 보니 숲에 피크닉가기, 자전거 타기, 바다에서 수영하기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는 온갖 즐길거리와 먹거리, 놀거리가 넘쳐나는게 당연스러웠기에, 좀 비교가 됐다.


실제로 헬싱키에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크닉이나, 자전거 타기, 바다 수영 등을 하는 걸 봤다.


헬싱키에도 큰 즐길거리, 놀이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웬만한 놀이공원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다.

친구들과 함께 가본 적 있는데, 꼭 가봐야하는 재밌는 곳이라며 굳이 추천해야겠단 생각까진 안 들었다.


그야말로 심심한 나라, 심심한 헬싱키였다.



행복하다 = 평온하다

이렇게 노잼인데도, 핀란드 사람들은 각종 행복도 조사에서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세히 물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평온함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잔잔하고 고요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내면서 일상의 소중히하며 평온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목표가 있을 때도,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만 행복이 아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실수와 진전, 어려움, 고통, 인내, 성장 과정까지도 모두 행복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목표만을 생각하며, 그저 버티고 인내하기를 반복하면 불안이 쉽게 찾아온다. 왜냐하면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불안해질 때마다 더 노력하고 버티는 식으로 해결한다면, 더욱더 불안해는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다.





번화가에선 야생 토끼, 집 앞마당에는 야생 고슴도치.

핀란드의 심심하고 평온한 행복을 나도 즐긴 적 있다.


내가 살았던 헬싱키의 아파트 창밖으로는 엄청나게 큰 나무가 보였다.

12월쯤 되니, 그 나무에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이 장식됐다. 멀리서만 보다가, 트리 조명까지 장식되니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서 큰 나무 가까이까지 갔다.

평소엔 근처로도 다니지 않던 길이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나무가 있던 공원은 다름 아닌 공동묘지였다.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해졌고, 주변에 다니는 사람도 없었는데 날씨는 쌀쌀하고 눈까지 쌓여 있어서 괜시리 더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트리를 기대를 했는데, 사실은 으스스한 공동묘지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긴 일이지만, 나에겐 그때 일이 꽤 재밌었던 기억이다.



또,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야생 동물과 마주친 적도 있다.

내가 살던 지역은 헬싱키 중앙역 근처라 꽤나 번화가였는데, 그 날은 늦은 밤에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길가의 덤불 속에서 토끼 한마리가 폴짝 튀어 나왔다.


정말 깜짝 놀랐다. 야생 토끼라니!


순간 놀라서 친구들과 함께 “바니(Bunny)!!!”하고 외치며 좋아했다.

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본 야생의 토끼였다.

무척 신기했고, 대자연의 감동(?) 같은게 느껴졌다.


그 토끼는 잠시 우리를 빤히 보더니 다시 폴짝 뛰어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때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아쉽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야생 고슴도치를 봤다고 했다.

그 고슴도치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는데,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나도 야생 고슴도치 보고싶다!“


이렇게 핀란드에서 겪은 별것도 아니고 사소한 일들은 나에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됐다.


오히려 신나고 왁자지껄한 일이 없었기에, 이 조용한 일상들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꼭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하루하루.

이게 핀란드 사람들이 말하는 평온한 행복인 것 같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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