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말고 과정. 응, 진짜로 과정!

숙제를 안 해도, 결과가 나빠도, 어쨌든 과정.

by스제



협업이 쉽지 않은 건 어디서나 비슷하지.

대학에서나 온라인 게임인으로서 팀플이나 협업을 해본 적 있다면 알 것이다.

누구와 팀이 되는가가 정말, 정말로 중요하다는 걸!


R&R, 진행 과정, 성과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정말, 정말로 중요한 게 바로 다른 팀원이다.



나는 핀란드에서 난생처음 외국인들과 팀플을 했다.

Aalto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열린 실험적이고 Entrepreneurial(기업가 정신 가득)한 수업의 팀플이었고, 4명이 한 팀이 되어 10개 남짓한 과제를 1박 2일 동안에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팀원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독단적이고 기업가 정신이라곤 없던 아시아계 공대생 남자아이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지만) 팀장 역할을 맡아 주도했고, 나머지 두 팀원(독일인과 핀란드인)은 그저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팀플 과정 내내 벌어진 일은 정말 아쉬운 일 투성이었다.


만약 성을 지어야 하는 과제라면, 튼튼하고 독창적이고 좀 더 기능적인 성을 지으려 노력해야 할 텐데, ‘모래성도 성이잖아?’라는 식으로 그저 과제를 개수만 채워 해결하기만 급급한 팀플이었다.



나는 이 방향이 뭔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어의 한계로 다른 팀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했고, 그저 혼자 답답해하며 팀플을 마쳤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에서 넌 뭘 했니?"

결과적으로 전혀 배움이 되지도 않았고, 누구의 주목도 이끌어내지 못했던 팀 과제 발표를 마치게 됐다.


그리고 그저 하나씩 과제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과제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도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데 집중한 팀이 가장 잘한 팀으로 뽑혔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웠던 건, 핀란드에서는 결과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팀플이 모두 끝난 뒤, 모든 학생들은 각자 프로젝트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보고서의 초점은 "주어진 상황에서 너는 뭘 했는지?"였다. 그리고 성적은 이 보고서에 따라 매겨졌다. 팀플 결과가 아니라.


그래서 누구와 팀이 되었든, 혹은 운이 좋았든 나빴든 아무 상관이 없었고, 억울할 일도 분통해할 일도, 운이 좋았다며 으스댈 일도 없었다.


나는 프로젝트 보고서에 우리 팀의 과제수행 과정을 솔직하게 적었고, 그 와중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노력했는지도 적었다.


그 보고서에 "다른 팀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상황 때문에 망했다"라고 쓸 수는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지"만을 적어야 했고, 그래서 누구와 팀원이 되든, 그 팀원이 형편없든 뛰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됐다.



핀란드에서 만큼은 누구와 함께 팀이 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수업의 목표는 무언가를 완벽히 만들어 제출하는 게 아니었고, 배우고 깨닫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던 것 같다. 결과물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각자의 노력, 고민, 행동 같은 것들이나 그 과정 속에서 무얼 배우고 느꼈는지 같은 것들.


결과가 아니라, 진짜로 과정을 중시하면서 배움이라는 수업의 본질을 보고 있었다.





내 노력에 관심 좀 가져줘...

우리가 쏟아부은 노력이나 과정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번아웃에도 빠진다.


그런데 성과라는 건 원래 그리 빠르게 나오지 않기 마련.

보이지 않는 성과만 바라보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온다.


나도 몇 년간 손에 잡히는 결과 없이 노력만 계속하며 힘들었던 적이 있다.

더 빨리 결과를 만들고 싶어서 나를 채찍질했는데, 그럴수록 더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힘들고 지치는 악순환이 됐다.


그러던 중,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면 더 잘 될 거다."라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지금까지 더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잘 안 됐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냥 힘을 빼고 살아보기로 했었다.


그래서 나한테 여유를 주고, 적당히 쉬면서, 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어봤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이 즐겁고 신나서 너무너무 기대되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만큼 지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더라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나갈 힘이 조금씩 생겼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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