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충격! 진짜 이래도 돼?
이건 핀란드에서 가장 신기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그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평범한 일상이었던 건데…
내가 공부했던 핀란드 Aalto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업 중에 칠판을 보며 각자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강의실 바닥에 편히 누워서 칠판을 보던 핀란드인 여학생이 있었다.
순간 속으로 “이거 이래도 돼?”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한국에서라면 벌써 불호령이 떨어졌거나, 태도를 문제 삼았을 텐데, 그 수업을 진행하던 2명의 교수님도 같은 강의실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모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강의실 바닥에 누워있는 대학생이라니.
근데 이 장면이 이 나라에선 너무 자연스러운 거고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건 나한테도 핀란드 문화충격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걸로 손에 꼽을 정도!
사실, 그 학생은 누워있는 자세였지만 실제로는 딴청을 부리거나 멍 때리지도 않고 칠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핀란드는 이게 끝이 아니었음.
게다가 그 수업에서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영어가 좀 어려웠어서 ‘뭔가를 내일 수업까지 해오라’고 듣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숙제를 해가지 않았다.
다음 수업 시간.
한 명씩 자기가 해 온 숙제에 대해 간단히 발표했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굿잡(Good Job)!”이라면서 크게 박수를 쳤다. 물론 같은 강의실의 다른 학생들도 함께 박수를 쳤다.
그리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무안해하며 ”나는 숙제를 못했다”고 말했다.
근데 교수님은 “숙제를 안 했으니까 박수!”라고 했고, 나 또한 모두에게 박수를 받았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날에도 꾸중이 아니라 박수를 받다니!
나는 기쁘면서도 반성이 되고, 신기하면서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었다.
뭐가 어찌됐든 나는 여기서 환영받고 있으며 사소한 실수는 별 문제도 아니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박수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숙제 안 해도 안 혼나네? 앞으로도 안 해야겠다!”가 아니라.
아, 그, 겉으로 보이는 게 더 중요하셨구나(?)
대학생 시절, 핀란드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다녔던 강남의 어느 영어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 자리는 맨 앞, 벽 바로 옆 자리였고, 맨 앞자리였던 탓에 칠판을 보려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했다.
그렇게 계속 고개를 들고 있으니 뒷목이 정말 너무 아팠다.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칠판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벽에 고개를 기댄 채로 수업을 들었다.
그런 나를 본 영어강사는 “똑바로 앉아서 수업 들으라! 수업 듣기 싫은 거냐?”라며 핀잔을 줬다.
난 무척 기분이 상했다.
내가 직접 돈을 내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열심히 배우고 싶어서 다니는 영어학원이었고, 빈둥거리던 게 아니라, 열심히 수업을 듣기위해서 벽에 기댄 것인데, 내가 들어야 했던 건 비난과 핀잔이라니.
나는 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수강반을 바꿨고 그 강사의 수업은 더 이상 들을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그 강사는 자신이 무얼 잘못한 건지 전혀 모를 테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내가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본질이 제일 중요하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어떤 태도인가 보다, 수업을 잘 듣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지 않나?
바른 자세로 앉아서 딴생각만 하는 학생과, 누워있지만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딴청 피우는 학생이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 ‘같아 보일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진짜 목적은 겉치레를 위한게 아니기에, 겉치레를 중시하면 결국 본질은 놓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본질을 놓치면 “수업 듣기 싫은 거냐?”같이, 사실과 거리가 먼 엉뚱한 결론이 툭 튀어나온다.
누워서 수업을 듣는 학생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 것.
그리고 숙제를 해오지 않았는데도 박수를 쳐주는 것.
이런 걸 보면 결국, 핀란드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건 좀 더 본질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형식을 강조하지 않는 만큼, 오직 배움이나 성장 같은 본질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힘을 빼야 본질이 보인다.
우리가 살면서 번아웃이 오고 때때로 혹은 자주 피곤한 이유는 진짜 본질적인 알맹이에는 관심 없고, 겉치레에 너무 많은 힘을 주고 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영어 학원 강사가 내뱉은 “수업 듣기 싫은 거냐?”는 핀잔도 그저 쓸데없는 겉치레일 뿐.
강사는 학생을 혼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학생은 억울해하고 불쾌해하며 감정과 시간을 낭비했다.
겉치레를 하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배움, 성과, 행복, 진실같은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슬롯가 주는 교훈은 내 기억 속에도 오래오래 남아있다.
남들에게 보이는 태도, 형식, 체면처럼 ‘같아 보이는 것’ 등의 겉치레를 내려놓을수록, 우리는 눈치 보지 않고 좀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쏟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몸이 편안하면 마음이 해이해진다는 그런 헛소리를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