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건 아니고, 그냥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곳.
여름의 핀란드는 정말 천국 같다.
해는 늦은 밤 9시까지도 밝게 떠있고, 습하지도 무덥지도 않으며, 날은 적당히 따뜻하고 쾌적하다.
아이들은 밤늦게까지도 밝은 바깥에서 자전거를 타고 뛰어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 초의 봄이나, 9월 말의 초가을쯤이면 날이 선선하고 적당히 따뜻하고 시원하며 쾌적한 날씨가 되어 기분이 좋다.
그러면 사람들은 공원으로 산으로 피크닉과 등산을 가면서 날씨를 만끽한다.
야장에는 사람들도 가득하고 될 수 있으면 야외 테이블에 앉고 싶어진다.
근데 그런 기분 좋은 날씨가 여름 내내 이어지는 게 핀란드다.
핀란드에서 여름을 한 철을 보낸 뒤, "여기에서 평생 살고 싶다! 너무 좋다!"고 하던 어느 한국 분이 있었다.
주변에 핀란드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 분들이 모두 말렸다.
"일단 겨울까지 살아보고 얘기해!"
사실 핀란드의 겨울은 많이 혹독하다.
겨울에는 핀란드 남부의 헬싱키조차도 오전 10시쯤 해가 떠서 오후 4시면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날은 춥고 햇빛은 없는 데다가 걸핏하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도 하늘은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내가 핀란드에서 겨울을 보낼 때도, 꼭 10시 전에 일어나서 어떻게든 하루 한 번이라도 바깥에서 햇빛을 보려 노력했다.
비타민D를 챙겨 먹는 건 거의 필수!
안 그러면 금방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이렇게 축축하고 추운 날씨가 늦가을부터 봄, 아니 사실을 봄이 어느 정도 지나갈 때까지 쭉 이어진다.
유럽 사람들은 그래서 북유럽이나 핀란드를 기피한다고 한다.
춥고 혹독하고, 살기 척박하고, 윽 힘들다! 싶은 곳.
근데 이런 핀란드가 어째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 걸까?
이렇게 살기 안 좋은 조건들을 두루 갖춘 핀란드인데도, 어째서 여기 사람들은 행복해하는 걸까 오랫동안 고민해 봤다.
그러다가 내가 찾아낸 이유 하나.
핀란드에는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 즉 개인영역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각자만의 영역을 지켜주는 존중문화.
핀란드 하면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짤이 하나 있는데, 버스정류장에 넓게 거리를 벌리고 서있는 사람들 사진이다.
이게 바로 핀란드 사람들이 서로의 개인영역을 존중하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핀란드 사람들은 남한테 신경 안 쓰고,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그냥 그럴 필요조차 전~혀 없다.
이런 핀란드에 익숙해질 즈음, 꽃다운 20대 대학생인 나.
핀란드에 몇 개월정도 살았더니, 나도 외출할 때 화장을 안 하게 됐다.
화장을 안 하는 건 물론이고, 콘택트렌즈대신 안경을 끼고, 머리도 대충 묶고 다녔다.
우선 화장하는 게 너무 귀찮았고, "누가 본다고? 누가 뭐라 한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귀찮아도 화장하고 나가서 예쁜 모습의 사진을 많이 남겼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하고 다니는 나한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내가 뭘 어떻게 입었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 안 해도 되고, 누구를 무시하거나 비교할 필요도 없어졌다.
남과의 비교
그러다 보니 한국 슬롯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과 나를 자꾸 비교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사실 남과의 비교가 없다면, 남이 잘 되든 망하든 관심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누군가에게 생긴 좋은 일이 내 몫의 좋은 일을 뺏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마치 파이 한 판 같아서, 이걸 모두가 뺏고 뺏기며 나눠먹어야 하는 세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몫이 될 수도 있었던 파이 조각을 뺏기기라도 한 것처럼 분통해했다.
세상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여기서 더 발전하거나 달라지지 않는 완성된 세계니까, 서로가 모두 경쟁자이고 뺏고 뺏기는 게임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꼴랑 120년 전.
재봉틀과 전화기가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쯤에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 발명될 수 있는 건 다 발명됐다"라고 생각했다는 걸 아는가?
120년 후,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지 쉽게 알 것이다.
자동차, 인터넷, 비행기의 발명으로 이렇게나 세상이 변했고, 새롭게 발명될 수 있는 건 여전히 셀 수 없이 많다.
정리하자면 이 세상은 파이 나눠먹기 게임이 아니라, 내 몫의 파이 한 판을 굽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먹을 파이를 직접 굽는다.
그러면 그 파이 한 판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누구라도 완벽할 순 없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인생을 파이 뺏기 게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하게 모든 걸 다 갖춘 영앤리치 핸섬앤톨이라고 해도, 아무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래봤자 넌 어려서 뭘 몰라!”라고 무시할 수 있기에, 남과의 비교는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무엇이든 다 가진 사람이라도 꼬투리를 잡아 깎아내릴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그 경쟁과 비교가 굉장히 무의미한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 무의미한 순위경쟁 자체를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파이 수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내 몫의 파이는 내가 직접 구우면 되는 것이니까.
내가 선택하는 행복
진짜로 행복만 추구하며 살려고 해도, 내 삶에 좋은 일만 계속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안 좋은 일을 겪기도 하는게 인생이니까.
이런건 세상 어디에서나 비슷할 거고, 핀란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재 내 삶에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삶꾸미기를 해야 한다.
딱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건, 특별히 뭔가를 하면서 도파민을 추구하는 것만 삶꾸미기인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작은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꾸미기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그냥 아무 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컵에 마시는 것.
해질녘,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잠깐 바라보며 노을을 즐기는 것.
좋아하는 향의 핸드크림을 바르고,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연필로 끄적이는 것 같은.
그렇게나 사소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가 직접 파이를 구워야 한다면,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맛 파이를 구워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거기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찾아보아라!
내가 굽는 파이를 사과파이, 레몬파이, 블루베리파이 같이 어떤 파이로 만들지도 내 선택에 달려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