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㉒
제목: 밥 차려주는 우렁각시
부제: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어느 기업에 주문을 하면 물건을 담아 가져다주는 종이백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굶고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도 이 문구에 마음이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은 한마디에 묘한 다정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밥으로 안부를 묻는 말이 참 많다.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니?”
“밥은 먹고 다녀?”
이 말들은 단순히 식사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이 아니다. 잘 지내느냐는 말이고, 몸은 괜찮으냐는 말이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느냐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 사람이 오늘 밥을 먹었는지의 여부가 아닐 것이다.
밥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을 만큼 그 사람의 상황이 괜찮은지를 묻는 것에 더 가깝다. 바쁘지는 않았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지는 않았는지.
한국인에게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생존 전략 그 이상이다. 그것은 안부이자, 사랑이며, 서로를 돌보는 가장 깊은 정서적 표현이다.
나도 따로 떨어져 사는 딸들에게 가끔 묻는다.
“밥 잘 먹고 다녀?”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비슷하다.
“그럼~”
“당연하지.”
그럴 줄 알지만 묻는다. 밥을 거르고 다닐 만큼 바쁜 것은 아닌지, 밥을 먹을 기운조차 없을 만큼 지친 것은 아닌지, 혹은 마음이 좋지 않아 끼니를 대충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내가 묻는 것은 밥이 아니라 딸의 안부였던 것이다.
어릴 적 읽었던 우렁각시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루 종일 논에서 일하고 돌아온 총각의 집에 어느 날부터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누가 차렸는지도 모른 채 따뜻한 밥을 먹는다. 알고 보니 우렁이가 처녀로 변해 총각을 위해 밥을 지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이 이야기에서 오래 기억하는 것은 우렁각시의 정체가 아니다.
밥상이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사람 앞에 누군가 밥상을 차려놓았다는 것.
나도 가끔 너무 피곤해서 밥하기조차 귀찮은 날이면 농담처럼 말한다.
“어디 우렁각시 없나? 누가 밥 좀 차려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원하는 것도 어쩌면 밥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하루의 고단함을 알아주고, 내가 돌아올 것을 알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우렁각시의 밥상은 단순히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밥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렁각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차려진 밥상이 대신 말을 건넨다.
그 밥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이런 마음이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오늘도 고생했어요.”
“이제 편히 앉아서 밥 먹어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오래된 이야기가 여전히 마음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옛이야기에서는 누군가 몰래 차려놓은 밥상이 마음을 건넸다면, 오늘날에는 종이백 위에 적힌 짧은 문장 하나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그러고 보면 밥은 참 이상하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을 비롯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음식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그것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된다. 바쁜 일상에 치여 서서 대충 삼키는 빵 한 조각이나 모니터 앞에서 때우는 식사는 배는 채워줄지언정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누군가에게 차려주는 밥 한 끼가 위로가 되고,
“밥은 꼭 챙겨 먹어”라는 말 한마디가 걱정이 되고,
“밥 먹었어?”라는 짧은 질문이 사랑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밥상을 챙긴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돌봄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종이백에 적힌 그 문구를 보면서 잠시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먹어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안부를 물어야겠다.
“식사 하셨어요?”
“밥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