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종류에 따라 생존의 무기는 달라진다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㉑
제목: 숫사슴의 뿔과 다리
부제: 위기의 종류에 따라 생존의 무기는 달라진다
이솝 우화 중 「숫사슴과 뿔」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반전을 담고 있다.
목이 마른 숫사슴 한 마리가 맑은 연못가로 내려와 물을 마시다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머리 위에 왕관처럼 웅장하게 솟은 뿔을 보며 "세상에서 내 뿔이 가장 멋지다"고 감탄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려 가늘고 볼품없는 다리를 보자 금세 실망하며 불평을 쏟아낸다.
그 순간 맹수가 나타나 사슴을 덮친다. 깜짝 놀란 사슴은 질주하기 시작하고, 부끄러워하던 가느다란 다리 덕분에 사자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벌린다. 그러나 빽빽한 숲속 덤불로 뛰어드는 순간, 자랑거리였던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결국 사슴은 뒤따라온 사자에게 잡히며 뒤늦게 탄식한다.
“원망하던 다리는 나를 살리려 했는데, 자랑하던 뿔이 결국 나를 죽이는구나.”
우리는 이 결말을 보며 흔히 ‘겉치레(뿔)보다 실속(다리)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슴의 몸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은 뿔의 잘못도 다리의 우월함도 아니다. 서로 다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몸이 만들어낸, 바로 그 순간에만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사슴의 다리가 가느다란 것은 흉이 아니다. 빠르게 달리고, 방향을 바꾸며 위험을 피하는데 필요한 몸의 일부다. 반면 머리 위의 뿔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끼리 경쟁하고 영역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자에게서 도망치는 한 번의 순간만 놓고 보면 뿔은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사슴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 사자에게서 살아남는 것만 생존일까? 아니면 살아남아 짝을 만나고 자손을 남기는 것까지가 생존일까? 도망치는 것도 생존이고, 때로는 맞서 싸우는 것도 생존이다. 위험을 피하는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자신의 힘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사슴에게 다리와 뿔이 모두 필요했던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 사슴은 왜 빽빽한 숲에서 걸렸을까?
사슴은 먹이를 찾거나 은신하기 위해 평소에도 빽빽한 숲을 자주 드나든다.
그러나 맹수에게 쫓기는 절박한 순간에는 평소처럼 주변을 살피고 움직일 여유가 없다. 결국 그날 사슴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뿔 자체라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와 그 순간의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에 회사에서 직원들의 MBTI를 분석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자의 MBTI를 보면서 ‘그래서 너는 나랑 다르구나’ 가 아니라 ‘그래서 나에게는 네가 필요한 거구나’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출근길 거울 앞에서 내 얇은 다리를 보며 한숨 쉴 이유도, 회의실에서 뿔만 앞세우는 옆자리 김 팀장을 원망할 이유도 없다.
사람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처음에는 그 다름 때문에 불편을 느끼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이 한 조직 안에 모이면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뿔처럼 앞을 향한다. 주저하지 않고 결정하고, 부딪히고, 새로운 길을 뚫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다리처럼 움직인다. 상황을 살피고, 위험을 감지하고, 필요하면 재빨리 방향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판을 만드는 데 강하고, 어떤 사람은 그 판에서 생길 문제를 찾아내는 데 강하다.
사슴은 그날 뿔 때문에 죽었다. 하지만 그 뿔이 쓸모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리가 사슴의 오늘을 지켰다면, 뿔은 어쩌면 사슴의 내일을 이어주었을 것이다.
‘뿔이 좋아? 다리가 좋아?’
그 질문은 어쩌면 애초에 틀렸을지도 모른다. 사슴은 그냥 둘 다 꼭 필요하다..
그저 필요한 순간이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