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팥쥐인가?

콩쥐에게 밀렸던 팥의 눈부신 반전 드라마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㉓

제목: 왜 팥쥐인가?

부제: 콩쥐에게 밀렸던 팥의 눈부신 반전 드라마


우리 집에는 팥에 꽤 진심인 사람이 한 명 있다. 남편이다.

남편은 단팥빵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뜰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그냥 팥이 들어 있는 빵이라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팥에도 나름의 취향이 있다. 남편은 통팥보다는 혀끝에 걸리는 것 없이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앙금 팥빵을 고른다. 팥알이 너무 물러서 형태가 사라진 것도 싫고, 지나치게 달아서 팥의 맛이 설탕에 묻혀버린 것도 싫어한다. 그게 제대로 된 팥빵이라고 한다. 붕어빵도 좋아하고, 팥빙수도 좋아한다. 양갱도 좋아하고, 일본의 도라야키도 좋아한다. 팥이 들어간 것이라면 일단 한 번은 눈길이 간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참 이상하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이야기 속에서 팥은 이렇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모두 《콩쥐팥쥐》를 기억한다.

콩쥐는 착한 아이였다. 부지런하고 마음씨가 곱다. 어려운 일을 맡아도 묵묵히 해낸다.

반면 팥쥐는 못된 아이였다. 심술궂고 욕심이 많다. 콩쥐를 괴롭히고, 콩쥐가 잘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하필 콩쥐였을까. 그리고 왜 하필 팥쥐였을까.


전래동화의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은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가 이름 속에 숨어 있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콩과 팥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었을까.


우선 콩부터 생각해보자.

우리 식생활에서 콩은 오랫동안 중요한 식재료였다. 밥에 넣어 먹고, 두부를 만들고, 메주를 만들어 된장과 간장의 재료로도 사용했다. 고기를 쉽게 먹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반면 팥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우리 밥상에 자리 잡았다.

팥죽이 되고, 팥 시루떡도 되었다.

특히 붉은색 때문에 음식 이상의 의미도 가졌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풍습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팥의 붉은색은 예로부터 나쁜 기운이나 귀신을 물리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팥죽을 쑤었다. 그러니까 팥은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것을 물리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콩쥐팥쥐》에서는 왜 팥쥐가 악역이 되었을까.

물론 콩쥐라는 이름이 콩의 영양학적 가치 때문에 만들어졌고, 팥쥐라는 이름이 팥의 슬롯적 지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래동화가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과정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감각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속담을 보면 이 차이가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콩에는 ‘콩 심은 데 콩 난다’라는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이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정직하다.


반면 팥에는 조금 다른 말이 따라붙는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다.’

애초에 팥으로 메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그것을 믿는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나 거짓말을 믿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같은 밭에서 자라고, 모두 오랫동안 우리 밥상에 올라온 곡물인데 속담 속에서 맡은 역할은 묘하게 다르다.

콩은 정직함의 편에 서 있고, 팥은 거짓말의 편에 서 있다.

게다가 팥에는 또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색깔이다.

콩은 대체로 노랗고 희다. 부드럽고 온순한 느낌이다.

반면 팥은 붉다. 강렬하다. 눈에 띈다. 그래서 그 붉은색은 옛사람들에게 단순히 예쁜 색이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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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팥이 조금 억울할 법하다.

왜 나만?


그런데 시간이 흘렀다.

팥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오늘날 팥은 누군가에게 겨울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붕어빵의 속이고, 여름이면 시원한 팥빙수의 중심이다. 빵과 만나 단팥빵이 되었고, 서양식 베이커리와 만나 앙버터가 되었다. 도넛에도 들어가고, 양갱이 되고, 도라야키의 속이 된다. 경주의 황남빵과 천안의 호두과자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에도 팥이 들어간다.

옛날의 팥과 오늘날의 팥은 같은 팥인데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은 꽤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름과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릴 때 붙은 별명이 오래 따라다니기도 하고, 한 번의 실수가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때의 모습이 그 사람의 이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팥은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팥은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변한 것은 팥이 아니라 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제의 팥은 동화 속 악역의 이름이었지만, 오늘의 팥은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빵의 속이 되었다.


팥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는데. 그저 오래전 사람들이 너에게 그런 이미지를 붙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 이름을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그 이름 뒤에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때로는 잊고 산다.


시대에 따라 주어지는 이미지는 달라질뿐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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