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던져버린 콩 한 알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마술콩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⑦

제목 : 엄마가 던져버린 콩 한 알

부제 :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마술콩


우리 둘째가 어린시절.. 아이가 잠들기 전이면 으레 펼치던 바카라 중 하나가 『잭과 콩나무』였다.


잭의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아끼던 소를 팔아오라고 보냈더니, 잭은 고작 정체불명의 콩 몇 알로 바꾸어 온다. 마술 콩이란 말에 속아 콩 몇알을 받아 온 잭을 보며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낸다. 어쩌면 당연하다. 당장 오늘 저녁 식탁에 올릴 쌀 한 줌이 아쉬운 가난한 현실 앞에서, 아이의 허무맹랑한 호기심은 그저 철부지의 짓거리로 보였을 테니까.

내가 잭의 엄마였다 해도 소리를 지르고 콩을 창밖으로 내던지지 않았을까?

나 역시 아이의 호기심을 여러 번 외면하며 살았으니까.

이제는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난 둘째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동화 속 엄마의 분노 앞에 내 모습을 보는 듯 그저 부끄러워 할 말이 없어진다.


회사를 다니느라 둘째의 어린 시절도 제대로 함께 해주지 못했다. 아빠는 취재하느라 늘 밤늦게야 퇴근했고, 엄마인 나 역시 회사 일에 치여 늦은시간이 되어야 귀가했다. 일곱 살 차이가 나는 큰딸은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느라 바빴고, 홀로 아이를 돌보시던 할머니마저 연속극을 보시다가 어느새 잠이 들던 밤.

그 적막한 집에서 일곱 살 작은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심심했을까. 혼자 그림바카라을 뒤적이다가, 쥬니어네이버 화면을 깜빡이다가, 혼자서 소꿉놀이 장난감을 달그락거리며 기어이 엄마가 오는 소리를 기다렸을 아이.

매번 전화해서 "엄마~ 언제 와?"

그럼 난 "그래그래 빨리 뛰어갈게" 답은 하지만 으레 늦어지는 밤 퇴근. 제대로 약속을 지킨 적이 거의 없었다.

도어락 누르는 소리와 함께 내가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낮 동안의 피로가 어깨를 짓눌러 그저 빨리 불을 끄고 잠들고 싶은 마음밖에 없던 나와 달리, 하루 종일 엄마만을 기다린 아이의 눈망울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누운 채로 억지로 입을 떼어 이야기를 서둘러 얼버무리다 내가 먼저 잠이 들면, 아이는 내 감긴 눈꺼풀을 작은 손으로 흔들어 깨우며 다시 얘기해달라고 보챘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보려는 얄팍한 꼼수로 “... 그래서 호랑이도 졸려서 잠이 들었대” 하고 결론을 지어버려도, 아이는 “엄마~ 엄마~” 하고 내 몸을 흔들며 밤을 붙잡았다. 그땐 그 졸음이 왜 그리도 버겁고 피곤했던지.


이제 번듯하게 자라 독립한 둘째를 생각하며 문득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주던 『잭과 콩나무』를 떠올려본다. 미안함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밤, 동화는 내게 전혀 다른 위로를 건넨다.


잭의 엄마가 홧김에 밖으로 내던져버린 그 쓸모없는 콩알은, 방바닥이 아닌 차가운 땅에 떨어졌기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구름을 뚫고 하늘 끝까지 뻗어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실패라 생각했던 일들, 내 가난한 감정이 부딪혀 내던져버린 조각들이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뜻밖의 가장 귀한 축복이자 만남이었음을 깨닫게 되니까.


결국 잭은 그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거인의 성에 도달하여 몰래 숨어든 그곳에서 금화 자루와 황금 알을 낳는 암탉, 그리고 스스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황금 하프를 가지고 내려온다.


이 동화가 지금의 내 가슴에 이토록 짠하게 감겨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툭툭 내던지듯 흘려 보냈던 그 미안한 시간의 조각들이야말로 잭의 엄마가 던진 마술 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째는 그 척박하고 외로웠던 밤의 땅바닥에서도 엄마의 얕은 꼼수 이야기를 거름 삼아 꿋꿋하고 단단하게 제 뿌리를 내리며 자라주었다.


내가 주지 못한 시간 속에서도 혼자 바카라을 보고 소꿉놀이를 하며 생각 보따리 속에 저만의 눈부신 황금 알과 음악을 연주하는 하프를 채워 넣었을 내 아이. 이제는 오래도록 남아있던 미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으려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이 열매를 맺는 저 콩처럼, 우리 둘째는 이미 제 안에 스스로 세상을 살아낼 가장 완벽한 보물창고를 품고 자라났음을 알기에. 오늘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참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는 문자를 먼저 보내야겠다.

해리한테 동화바카라 읽어주는 졸린엄마.pngImage Created by Gemini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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