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손님은 있었지만, 좋은 식탁은 없었다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새로운 식문화의 탄생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⑤

제목 : 좋은 손님은 있었지만, 좋은 식탁은 없었다

부제 :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새로운 식문화의 탄생


회사에 다니며 해외 출장을 다닐 일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음식이 꽤 곤혹스러웠다.

현지 직원들과 함께 먹었던 고수가 잔뜩 들어간 쌀국수가 그랬다. 초대받은 처지에 눈살을 찌푸릴 수는 없었다. 웃으며 한 젓가락 먹었지만, 처음 만난 고수의 강한 향은 쌀국수를 음미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난 낫토도 그랬다. 생달걀을 풀고 김과 함께 먹어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름 진지하게 시도했다. 하지만 물컹하고 미끄덩한 질감 앞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은 고수 없는 쌀국수가 오히려 허전하다. 낫토에 날계란을 터뜨려 김과 함께 먹는 것은 아침을 부드럽게 시작하게 해주는 나의 최애 조합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 음식을 싫어했던 것일까? 어쩌면 음식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음식과 친해질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음식문화도 사람을 닮았다. 기후와 지리, 식재료, 역사와 종교,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오랜 시간 겹겹이 쌓여 하나의 식문화가 된다.

그래서 낯선 음식을 만났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그 음식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그 음식이 만들어진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래전 읽었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떠올랐다.

왜 여우는 접시를, 두루미는 호리병을 선택했을까?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이솝우화다. 둘 다 손님을 초대했다. 둘 다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둘 다 손님을 굶겼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실패한 만찬도 드물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배려하지 않은 두 동물’의 이야기로 읽어왔다. 하지만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른 장면이 보인다. 정말 배려가 없었던 걸까?


여우는 넓은 접시에 수프를 담았고, 두루미는 긴 호리병에 수프를 담았다. 음식은 같았다. 다른 것은 그릇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이었다.

우리는 흔히 ‘입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우와 두루미는 입맛이 달랐던 것이 아니라 입이 달랐다.

여우에게 편한 그릇과 두루미에게 편한 그릇이 달랐던 것이다. 몸이 다르니 식기가 달랐고, 식기가 달라지니 식사 방식도 달라졌다.

어쩌면 둘은 상대를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식탁을 상대에게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배려가 부족했다기보다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여우는 병으로 먹어본 적이 없었고, 두루미는 접시로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모르는 것은 때로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크가 익숙한 사람에게 젓가락은 쉽지 않다. 인도에서는 손이 자연스러운 식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국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고 먹지만, 일본에서는 국그릇을 들어 먹는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 종종 묻는다.

‘왜 저렇게 먹지?’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저렇게 먹게 되었을까?’

그 순간 음식은 문화가 되고, 그릇은 역사가 된다. 낯선 식문화는 틀린 문화가 아니라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문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루미와 여우가 차린 세 번째 식탁은 어땠을까?

나는 이 동화가 그 장면에서 끝난 것이 좀 아쉽다. 어쩌면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 조금 서먹했을 것이다. 한 번씩 상대를 굶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손님을 굶겨 본 사람은 다음 초대가 달라진다. 그래서 여우를 초대한 두루미의 식탁에는 접시가 하나 놓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루미를 초대한 여우의 식탁에는 호리병과 함께 빨대가 준비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각자 편한 식기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음식 자체를 서로 먹기 편한 형태로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느 날 둘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네가 편한 걸로 먹어.”

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식문화가 탄생하기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식문화도 그렇게 발전해 왔다. 낯선 환경에 가면 불편하고, 다른 문화를 만나면 먹는 방식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때로는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식탁이 조금씩 달라진다.

일본식 카레는 인도에서 일본으로 곧바로 온 음식이 아니다. 영국을 거쳐 들어온 카레가 일본의 식재료와 식습관에 맞게 변하면서 지금의 일본식 카레가 되었다. 부대찌개 역시 서로 다른 식재료와 식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음식이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포크 역시 처음부터 모든 식탁에서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식문화는 처음부터 누군가 완벽한 계획을 세워 만든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때로는 불편해하고, 실수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식문화는 음식을 만드는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익숙한 것을 상대에게 내어놓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식탁은 달라진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아침에는 토스트를 먹고, 점심에는 김치찌개를 먹고, 저녁에는 파스타를 먹는다. 초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타코에 김치를 곁들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음식이 어느 순간 우리의 음식이 된다.

나에게도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고수와 낫토가 이제는 내 식탁의 일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다른 식탁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변해온 셈이다.


그래서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를 이제는 다르게 읽고 싶다.

둘은 처음에 실패한 만찬을 했다. 상대의 그릇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둘 다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식탁은 점점 서로를 위한 배려속에서 달라져가면서 그들만의 식문화를 완성해 갔을거다.


어쩌면 새로운 식문화는 상대의 그릇을 처음 상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우와 두루미 2.pngImage Created by ChatGPT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