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어느 쪽에서 깨야 할까

내가 옳다는 것과 당신에게 맞는 것은 다르다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⑧

제목 : 달걀을 어느 쪽에서 깨야 할까

부제 : 내가 옳다는 것과 당신에게 맞는 것은 다르다


어릴 때는 『걸리버 여행기』를 거인국과 소인국을 여행한 걸리버의 신기한 모험 이야기로만 읽었다. 그리고 동화로만 짧게 읽었던 것을 원본 번역본으로 읽어보니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었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18세기에 쓴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어린이용 모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영국 슬롯의 정치와 종교, 인간의 허영과 권력 다툼을 소인국과 대인국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사건들 속에 숨겨놓은 풍자 소설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는 소인국 릴리펏의 이야기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릴리펏과 이웃 나라 블레푸스쿠 사이에는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시작을 들여다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달걀을 어느 쪽에서 깨느냐’ 때문이었다.


릴리펏에서는 원래 달걀의 둥글고 넓은 쪽을 깨는 오랜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제의 할아버지가 달걀을 넓은 쪽으로 깨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일이 생겼다. 황제는 이것을 계기로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모든 백성이 달걀을 반드시 좁은 쪽으로 깨야 한다는 법령이었다.

그러자 이 새로운 법에 사람들이 반발하기 시작한다. 왜 전통을 맘대로 파괴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급기야는 달걀을 좁은 쪽으로 깨는 사람과 넓은 쪽으로 깨는 사람이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려던 ‘넓은 쪽으로 달걀을 깨던’ 사람들은 탄압받았고, 일부는 이웃 나라 블레푸스쿠로 도망갔다. 그리고 작은 논쟁은 결국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은 36개월간 이어졌고, 달걀을 어느 쪽에서 깨느냐는 문제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이야기다. 달걀은 어느 쪽에서 깨든 결국 달걀이다.

그런데 소인국에서는 달걀을 깨는 방식 하나를 놓고 자기 방식이 옳다고 주장했고, 결국 서로를 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정작 그들이 근거로 삼았던 소인국 경전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각자 편리한 쪽으로 달걀을 깰지어다.”


정작 경전에는 어느 쪽이든 편리한 쪽으로 깨면 된다고 적혀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해석과 전통을 붙잡고 서로 옳다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위프트가 달걀 하나를 가지고 비웃었던 것은 달걀을 깨는 방법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본에는 이것은 당시 카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싸우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라고 각주에 쓰여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별 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믿고, 그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종교와 정치의 갈등을 달걀 하나에 빗댄 풍자였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지금도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서로를 설득하고, 때로는 싸운다.


우리 집 참외전쟁

요즘 한창 제철인 참외를 깎을 때면 우리 집에도 아주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나는 참외를 씨와 함께 먹는다. 특히 씨앗이 모여 있는 하얀 태좌 부분을 좋아한다. 아삭한 과육과 함께 먹으면 달콤한 맛이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반면 남편은 씨를 싫어한다. 입안에서 씨가 걸리는 느낌도 싫고, 먹고 나면 속도 불편하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식품영양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씨와 태좌에도 여러 영양성분이 들어 있으니 굳이 버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영양성분표보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참외를 깎는 손길은 더 바빠진다. 내 몫은 칼질 몇 번이면 끝나지만, 남편 몫은 반을 뚝 잘라 달고 맛있는 태좌를 도려내고, 과육에 붙은 씨앗까지 일일이 떼어내야 한다.

그나마 그 수고로운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남들이 보면 '잔반'이라 부를 법한 달콤한 씨앗 뭉치들은 전부 내 차지다.

이 맛있는 걸 왜 버리나.


처음에는 남편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평소 더위도 많이 타는 데다가 식성이 좋고 소화력이 왕성한 내 기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와 달리, 찬 성질의 음식을 먹으면 몸에서 즉각 신호를 보내는 남편을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남도 괜찮은 것은 아니구나.'


그러고 보니 달걀 전쟁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달걀을 어느 쪽에서 깨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우리는 자꾸 자기 방식을 정답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이 진짜 질문이었던 것이다. 달걀도, 참외도

달걀을 넓은 쪽에서 깨든 좁은 쪽에서 깨든 달걀은 달걀이다.

참외 씨를 먹든 빼든 참외는 참외다.


참외 씨를 두고 벌어지는 우리 집의 작은 실랑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영양이 많으니 무조건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내 기준도, 남편의 몸 앞에서는 절대적인 정답이 될 수 없다.

서로의 방식이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각자가 몸이 원하면 통째로 먹으면 되고, 몸이 원치 않으면 안 먹으면 되는 간단한 이치.

이제 우리 집 참외 평화 조약은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몸이 원하는 대로, 각자 편리한 쪽으로 참외를 먹을지어다."

Image created by Gemini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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