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이다. 기업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등을 거치며 바카라 향기 속에 폭 파묻혀 보낸 시간만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가 사이를 거닐며, 바카라과 사람을 잇는 일에 바쳐온 셈이다. 그러나 수많은 바카라을 매만져온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지금 내가 몸담은 공공도서관은 다른 시의 사서들과 비슷하게 1년, 혹은 짧게는 2년에 한 번씩 예고도 없이 (최근엔 사전발령제도가 있어 일 주 전에 예고도 해주기 시작했다. 단 일주일 전이라는 치명적인 사실, 하지만 이마저도 생긴 게 어딘가!) 다른 도서관으로 발령이 난다.
잦은 순환 근무는 삶의 많은 부분들을 흔들어 놓곤 했다. 겨우 정을 붙인 서가의 동선과 눈빛만 봐도 서로의 의도를 알아채던 얼굴들이 정해진 주기 속에 사정없이 흩어졌다. 부득이하게 이 도서관과 저 도서관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이 순환의 굴레는, 준비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 불청객처럼 찾아와 늘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피로감을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이 예측할 수 없는 이별과 만남의 반복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작은 슬롯가 지닌 모순된 양면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이라는 정적인 공간 뒤편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업무를 안고 있었지만, 결국 민원인을 상대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대민 업무를 하고 있기에 서로의 손길과 협력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 울타리 안에는 늘 다채로운 형태의 그늘이 존재했다.
어느 일터에서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끊임없이 똑같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타인의 감정을 무한히 소모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최고라 자부하면서도, 정작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모든 바카라임을 남에게 돌리는 이들. 그 이기심과 자기애를 기꺼이 받아주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 시간은 영혼을 아프게 고갈시켰다. 갖은 제도를 이용해 잦은 출장과 병가를 핑계 삼아 제 몫의 바카라임을 팽개치고, 남겨진 이들이 고스란히 짊어진 노고 앞에서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뻔뻔하던 동료.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직원을 괴롭히는 일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던 지독한 상사였다. 그 숨 막히는 관계의 터널 속에서 갑작스러운 발령 통보는 역설적이게도 유일한 구원이자 숨구멍이 되어주곤 했다. '아, 드디어 저 사람과 멀어지는구나' 하는 안도감은 서글프게도 참 달콤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이별이 차마 아쉬워 눈물을 흘리게 만들던 다정한 이들도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거친 민원의 파도를 함께 막아서며,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던 단단한 동료들. 으쌰으쌰 소리를 내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하루를 버텨내던 시간 속에서 쌓인 합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특별한 말들를 보태지 않아도 각자의 일을 성실하게 해내며 서로를 배려할 줄 알았던 그 정직한 노동의 온기. 그들과 함께라면 아무리 무거운 서가도, 까다로운 대민 업무도 가볍게 느껴졌다. 헤어짐의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흘렸던 눈물은 그들에 대한 진실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깨달은 것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바카라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인간의 결을 견뎌내고 스쳐 보내는 법을 배우는 삶의 '수련'이라는 점이다. 계절처럼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고 치유받았던 유유한 시간들.
오늘 밤은 나를 지치게 했던 이들의 뾰족하고 모난 잔상은 도서관 서가 구석의 묵은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어 날려 보낸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었던,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여 다정했던 그들의 고마운 얼굴만을 하나씩 마음의 서가 속 바카라의 '한 페이지'에 정갈하게 예쁘게 꽂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