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며 익숙한 밴드의 알람이 울린다.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핫하다는 희귀한 떡, 신기하게도 알알이 솜사탕 맛이 난다는 청포도, 한겨울에도 줄을 서서 먹는다는 지방 맛집의 짬뽕 밀키트까지.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단어들은 온갖 자극적인 수식어를 두르고 수시로 나를 유혹한다.
딱히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도, 냉장고에 빈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스쳐 가는 생각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스몰 라이프를 지향하노라 다짐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아득해진다. 그래도 동네에서 알아주는 자칭 ‘주부 9단’이자 유행에 뒤처지기 싫은 ‘맛잘알’로서, 이 유행의 열차에 탑승하지 않을 수 없다.
“저요! 저요!”
댓글 창에 빛의 속도로 번호를 적어 내리며 줄을 선다. 가끔은 나보다 몇 초 앞선 손가락들에 밀려 1분도 채 되지 않아 ‘마감’이라는 두 글자가 똬리를 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묘하게 배가 아프고, 다음엔 반드시 화면을 켜둔 채 대기하리라 오기 어린 결심을 하게 된다. 오늘은 다행히 벼르고 있던 핫한 품목 네 가지 모두 선착순에 안착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치 거대한 성취라도 이룬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문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치르는 나만의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포털 사이트에 품목의 이름을 검색해 보는 일.
‘에이, 인터넷 최저가가 조금 더 싸잖아?’
하지만 이내 배송비를 더해보고는 금세 미소를 되찾는다. 배송비 몇천 원을 더하면 결국 내가 산 가격이 몇 백 원이라도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해냈다는 안도감, 남들보다 더 빠르고 똑똑하게 기회를 쟁취했다는 자부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역시 싸게 잘 샀어.’ 나 자신을 칭찬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돌아보면 한동안 나는 이 정교하게 짜인 공동구매의 늪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지정된 수령처로 차를 돌리는 수고로움도, 카드 명세서에 남지 않는 현금 계좌이체의 찜찜함과 불편함도 나를 막지 못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인기 품목을 손에 쥐었다는 승리감, 단돈 천 원, 이천 원을 아꼈다는 그 달콤한 착각이 모든 수고를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재료가 넘치고 냉동실이 비좁아질수록 기묘한 회의감이 찾아왔다. 천 원을 아끼기 위해 사지 않아도 될 몇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고, 그것들을 꾸역꾸역 소비하려 애쓰는 나의 모습. 그것은 알뜰함이 아니라 그저 ‘한정판’이라는 말에 조종당하는 욕망일 뿐이었다. 소소한 아낌이 모여 거대한 불필요가 되어버린 역설 앞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정말 필요해서 산 걸까, 아니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위안을 산 걸까?’
이제는 ‘띠링’ 소리가 울려도 가만히 숨을 고른다. 여전히 그곳은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을 빠뜨리게 되는 개미지옥임을 잘 알고 있기에, 화면을 켜기 전 잠시 머뭇거리는 법을 배운다. 비록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가끔씩 그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이제는 핸드폰에 알람이 울려도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는다. 진짜 알뜰함은 천 원을 아껴 사두는 것이 아니라, 사지 않아도 되는 나를 지키는 것임을.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소소한 욕망을 조용히 다독여본다.
오랫만에 냉장고의 빈자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