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무게를 헤아리는 밤

by최미혜

가끔은 돈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딸아이의 치아 교정을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큰돈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통장에서 목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받는 월급도, 남편이 받는 월급도 매달 정해져 있다. 들어오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큰 지출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아이의 교육비가 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병원비나 자동차 수리비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절로 든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출근하고 일한다. 그렇게 한 달을 열심히 보내고 월급날이 오면 잠시 마음이 든든해진다. 하지만 그 기분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자녀의 교육비와 생활비, 관리비, 각종 보험료와 공과금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 속 숫자는 금세 줄어든다. 매달 저금을 해야지 생각하지만 생활하다 보면 저축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럴 때면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주식이 한창 오를 때 대출이라도 잔뜩 받아서 엄청 사놓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투자 역시 여유 자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십만 원, 이십만 원을 투자하며 단숨에 생활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큰 수익을 얻으려면 그만큼 큰돈을 투자해야 하고, 그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감당해야 한다.

결국 요행처럼 큰돈이 생겨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일은 나와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흔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장을 한 번 보고 와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고, 외식을 한 번 하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일도 망설여진다. 여행을 계획할 때도 가장 먼저 숙박비와 교통비, 식비부터 계산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디로 갈까’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들까’를 먼저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제야 비로소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된 걸까?

특히 이렇게 갑자기 큰돈이 한꺼번에 나가는 날이면 마음은 더 작아진다. 당분간 외식을 하지 말아야겠다, 배달 음식도 줄여야겠다, 여행도 조금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살 수도 있었던 작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한 번 더 가격표를 바라보게 된다.

돈이 마음의 크기까지 줄여놓는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언제쯤 통장 잔액을 먼저 확인하지 않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면서도 비용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지 않는 날이 올까. 흔히 말하는 ‘경제적 자유’라는 것은 과연 얼마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아침마다 일어나 일터로 갈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고, 함께 걱정하고 웃을 가족이 있다. 큰 부자는 아니어도 매달 일한 만큼의 월급을 받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끔 여행도 떠날 수 있다. 무엇보다 힘든 일이 생겨도 결국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갈 마음이 아직 내게 있다.


어쩌면 내가 믿어야 할 것은 통장 속 숫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나 자신과 곁에 있는 가족, 그리고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마음. 그것들이야말로 지금 내가 가진 가장 든든한 자산인지도 모르겠다.

큰돈이 빠져나간 통장을 바라보면 마음이 철렁하고, 조금 더 아껴야겠다고 다짐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마음도 여전하다.

다만 요행을 기다리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조금씩 아끼고, 조금씩 모으고, 가족과 건강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돈을 조금 덜 무서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그런 날을 기대하며 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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