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한 편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떠오른 한 문장을 붙잡기 위해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기도 한다. 문장 하나를 적어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고쳐 쓰고, 비슷한 단어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지를 오래 고민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글을 쓸 때면 이상할 만큼 정성을 들인다.
어쩌면 글 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조금씩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기억 하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생각 하나, 그날 문득 서러웠던 마음이나 별것 아닌 일에 기뻐했던 순간까지. 평소에는 마음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것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조금 지친다.
마음을 한 움큼 덜어낸 것 같기도 하고, 오래 닫아두었던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햇볕에 말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완성한 글을 온라인에 올린다.
그리고 ‘게시’라는 작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가끔 이상한 기분에 빠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전히 내 앞에 놓여 있던 글이 갑자기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다.
문장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화면 밖으로 흩어진다.
한 문장은 누군가의 휴대전화 화면으로 흘러가고, 또 다른 문장은 수많은 게시물 사이에 섞인다. 내가 몇 시간 동안 붙들고 고민했던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손가락 한 번 움직이는 사이 스쳐 지나간다.
몇 초.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
읽히기도 전에 화면 아래로 밀려나는 글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조금 허무하다.
나는 그 글을 쓰기 위해 오래 생각했는데 세상은 참 빠르다.
사람들은 다음 글로 넘어가고,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고, 또 다른 이야기가 쏟아진다. 조금 전까지 내게 그렇게 중요했던 문장은 금세 수많은 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내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적어놓았는데 그것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름 없는 작은 조각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마치 유리병 하나를 정성껏 만들어 그 안에 마음을 가득 담아두었다가 바다 한가운데 던져버린 기분이다.
병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 발견할 수도 있고,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먼 곳으로 떠내려갈 수도 있다. 파도에 깨져 조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가끔은 그래서 글을 올리지 말까 생각한다.
나 혼자 간직하면 적어도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노트 한쪽에 적어두거나 컴퓨터 속 어느 폴더에 고이 넣어두면 언제든 다시 열어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내 문장이 다른 글에 밀려나지도 않고, 누군가의 무심한 손가락에 스쳐 지나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다 쓰고 나면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아마 글이라는 것이 애초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있을 때는 생각이지만, 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그것은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기다리는 말이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은 이런 마음이었어요.”
“당신도 혹시 이런 적이 있었나요.”
직접 묻지는 않아도 글 속에는 늘 그런 질문이 숨어 있다.
그래서 글을 올린 뒤 나도 모르게 다시 들여다본다.
누군가 읽었을까.
내가 오래 고민한 그 문장을 누군가는 잠시 멈추어 읽었을까.
그리고 아주 가끔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짧은 말을 남겨준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 문장이 마음에 남네요.”
그 한마디를 보는 순간 신기하게도 산산이 흩어졌다고 생각했던 문장 하나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아니, 어쩌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작은 자리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제야 생각한다.
흩어진다는 것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꽃의 씨앗들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제 몸을 가볍게 놓아주고 어디론가 날아간다. 어떤 씨앗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물에 빠지고, 어떤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 땅에 내려앉는다.
그러다 그 가운데 하나쯤은 흙을 만난다.
그 만남속에서 어느 봄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글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쓴 문장을 누가 읽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글은 읽히고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내려앉을 수도 있다.
힘든 하루를 보내던 사람이 잠깐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오래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글이 흩어지는 일도 꼭 슬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각자의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내게서 태어난 문장이 나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것이다.
어떤 문장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할 것이다.
어떤 문장은 금세 잊힐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문장이 오래 기억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글을 쓴 그 시간만큼은 분명 나에게 남아 있다.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생각했던 저녁,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 썼던 밤, 글을 다 쓰고 나서 혼자 조용히 다시 읽어보던 순간들.
그 시간은 게시 버튼을 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 문장의 작은 조각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쓰고, 지우고, 다시 고쳐 쓴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마음 한쪽은 여전히 아쉽다.
정성스럽게 품었던 것을 놓아주는 기분은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하지만 글은 붙잡아두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떠나보내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내 손을 떠난 문장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란다.
그 수많은 조각 가운데 하나라도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잠시라도 그 사람을 멈추게 하고, 오래 잊고 있던 마음 하나를 떠올리게 하기를.
그렇게 생각하면 산산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의 뒷모습도 조금은 덜 쓸쓸하다.
오늘도 나는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작은 마음 하나를 세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흩어지는 문장들을 바라본다.
붙잡지는 않는다.
어디든 가보라고.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조용히 놓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