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크루즈가 침몰하던 날 저녁의 퇴근길이었다.
십자인대 수술 이후 신입사원 연수기간으로 인해 무릎 재활 시기를 놓쳤던 터라
다 펴지지 않고 다 구부러지지도 않는 무릎 때문에 고생을 하던 신입사원 시절,
1년간 절름발이로 현장을 다니던 정유공장 엔지니어가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재수술을 받고 3개월간의 휴직기간을 거쳐
정상가동범위 내의 움직임을 구현한 무릎을 가지고 회사로 복귀한 지 한 달 남짓 되던 때였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스포츠센터로 이동하여 무릎 재활 및 보강운동을 위해
헬스장과 수영장을 넘나들며 폭풍재활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지방 도시에서의 열악한 대중교통 환경을 극복하고자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자차가 아닌 50cc 스쿠터를 선택하여 재활을 다니고 있었다.
공장을 벗어나 스포츠센터까지는 불과 2Km 정도의 거리였으나
퇴근길의 도로는 꽉꽉 막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1차선만큼은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는 몇 안 되는 차들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차선을 비워두었고 스쿠터를 몰고 즐거운 퇴근길을 달리던 스쿠터족은
빈 차선을 시속 50km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꽉꽉 막혀있던 2차선의 택시가 불법유턴을 시도했다.
차선변경도 아니었고 유턴이 가능한 곳도 아니었는데, 너무 막히는 도로를 벗어나고자
막힌 도로의 한가운데에서 1차선을 가로질러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시도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날쌔고 운동신경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여
스쿠터를 타다가도 사고가 날 것 같은 순간에 스쿠터를 탈출하여 공중제비를 돌면서
다치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상상 아닌 망상과는 달리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찰나의 순간에 튀어나온 택시를 피할 겨를도 없이
스쿠터는 그대로 택시의 뒷문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그렇게 의식을 잃고 정지한 시간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삐~~~~ 하는 귓속 이명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린 스쿠터 옆으로
피로 물든 후드집업과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으로
택시기사가 괜찮냐는 듯 말소리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아저씨!!!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요!!!'라는
고성을 지르면서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 후 다시 돌아온 의식은 어느 병원의 침대 위,
밝게 켜진 조명에 눈이 부셔서인지 아니면 어디를 크게 다쳐서인지
잘 떠지지 않는 눈과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서도
지금 현재 상황을 기록해야 한다는 무의식으로 바지 주머니 핸드폰을 더듬어 꺼낸 뒤
셀카 한 장을 남기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깨운다.
'보호자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답을 할 수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뭔가 엄마의 전화번호를 이야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연결된 엄마와의 통화에 그저 '나 사고 났어'라는 이야기만 되뇌었던 것 같고
지방의 큰 병원으로 이송할지, 아니면 본가가 있는 서울로 이송할지를 논의한 끝에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 대형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버스 전용차로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덕에 평소 같으면 5시간이 걸릴 거리를
3시간 반 만에 주파하여 자정이 넘을 무렵 가족들 앞에 참담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택시 차체와의 정면충돌로 광대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안와골절로 긴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안구가 함몰될 수 있어 티타늄 판을 안구 밑에 집어넣고
수많은 조각으로 바수어진 뼈들을 눈 밑과 입 안을 째 안면 피부조직 안에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했다.
헬멧을 쓴 덕에 머리가 깨지거나 생명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고
겉으로 찢어지지도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사고를 통해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일전에 이미 다 사용해 버린 병가 때문에 더 이상 병가를 쓸 수도 없던 상황에서
유급휴가와 무급휴가를 총 동원하여 3주간의 수술과 회복을 거쳤고
그렇게 5월 중순이 되어서야 다시 회사로 돌아온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