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등이 정답인 줄 알았던 아이

by부지러너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눈높이 수학을 풀었는데, 유독 셈이 빨랐다. 그렇다고 공부를 특별히 좋아하거나 열심히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문제를 풀 수 있었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교육장상을 받으며 최우수 졸업생이 됐다.

하지만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리 특별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학원이었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어느새 최고 등급반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주변의 기대가 높아졌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전교 1등을 세 번, 전교 2등을 한 번 했다.

학원에서는 장학금을 받아 거의 1년을 무료로 다녔다.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다. 특히 아버지의 기쁨이 컸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어려운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셨고, 자녀에게만큼은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하셨다.

특히 아버지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학교와 학원 입시설명회에 직접 참석하고 상담을 다니셨다. 어떤 학교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열심히 알아보셨다.

아버지에게 공부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가난을 벗어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 믿음에는 부모님이 살아오신 인생이 담겨 있었다.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셨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특별한 보상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란 앞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였고, 좋은 학교와 좋은 온라인 게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길을 성실하게 따라갔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상한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성적이 나빠서 생긴 고민은 아니었다.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느라 내신 성적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2학년 때도 대회에 출전하면서 주목받았다. 여전히 전교권 성적이었고, 공부를 못해서 걱정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전만큼 공부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반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좋은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다음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공부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공부를 잘해서 얻는 성취가 생각만큼 즐겁거나 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진짜 즐거운 순간들은 따로 있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였다.

달리기에서는 전교에서 가장 빨랐고,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특별히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친구들과 함께 뛰고, 이기고, 환호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한때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만류하셨다.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마라톤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이 겪었던 불확실한 삶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방송반 활동이 재미있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연극반 활동에도 흥미가 있었고, 배우나 개그맨을 꿈꾸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웃음을 만들고, 함께 즐거워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공부와는 조금 달랐다.

공부는 언젠가 얻게 될 무언가를 위해 지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반면 운동과 방송, 연극은 그 일을 하는 순간 자체가 즐거웠다.

당시에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공부보다 다른 활동에 마음이 더 끌린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줄어들었다.

특목고 입시가 눈앞에 다가왔다.

과학고와 민사고, 그리고 명문대.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강했다.

장래희망이 무엇인지보다 어느 고등학교에 갈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다시 공부해야 했다.

그때까지 배운 성공의 공식은 단순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고, 더 좋은 학교에 가면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틀린 공식은 아니었다.

다만 빠져 있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 미래가 정말 원하는 미래인지.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인정하는 성취와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일을 통해 얻을 결과보다, 그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전교 1등을 하던 아이는 조금씩 공부의 이유를 잃어갔다.

하지만 정해진 길에서 벗어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당장 눈앞에는 또 하나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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