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학고와 민사고, 그리고 세 번째 문

by부지러너

중학교 3년 동안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에는 과학고였다. 그다음은 민족사관고등학교였고, 결국 진학한 곳은 외국어고등학교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가고 싶은 학교는 계속 바뀌었는데, 정작 왜 그 학교에 가고 싶은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의 한 신도시로 이사하면서 대형 종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럽게 특목고 준비반에 들어갔다.

당시 학원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문과는 외고, 이과는 과학고였다.

아버지는 이과를 선택하길 바라셨다. 좋은 대학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 아버지가 생각하신 성공에 가까운 길이었다.

그렇게 과학고 준비반에 들어갔다.

당시 경기과학고에 진학하려면 과학경시대회 실적이 중요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과학경시를 준비했고, 2학년 때는 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도 대회까지 진출했다.

2학년이 도 대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에 주변의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도 대회에서는 입상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수학과 과학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씩 흔들렸다. 같은 반에는 정말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 자체를 즐기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특별한 재능이나 흥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크게 좌절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과학고라는 목표에 그만큼 간절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짧은 쉬는 시간에도 장난을 치며 놀았다.

목표를 선택했다기보다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그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민족사관고등학교였다.

당시 민사고는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특별한 학교로 주목받고 있었다. 과학고 준비반에서 민사고 문과 준비반으로 옮겼다.

수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다가 문과 계열 입시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왜 민사고에 가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없었다.

그저 더 좋은 학교에 갈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공부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준비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과학고도, 민사고도 가지 못하게 됐다.

일반고에 진학해야 하나 고민하던 무렵, 학원에서 외고 진학을 권유했다.

외고 입시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달 정도 급하게 준비해 시험을 치렀고, 운 좋게도 서울의 한 외고에 합격했다.

몇 년 동안 준비했던 과학고도, 1년 가까이 준비했던 민사고도 아니었다.

한 달 남짓 준비한 외고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바라셨던 특목고 진학이라는 목표는 결과적으로 이루었다.

하지만 세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뒤에도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학교에서는 0교시 자습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했고, 이후 학원에 가거나 주말에도 학원을 다녔다.

더구나 외고에 진학하고도 이과를 선택했다.

제2외국어는 일주일에 13시간 이상 배워야 했지만, 그 언어조차 특별히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성적과 학과별 커트라인에 맞춘 선택이었다.

정규수업에서는 외국어를 배우고, 방과 후에는 이과 과목을 공부했다.

왜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한 답은 없었다.

그저 해야 하니까 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은 꽤 치열했다. 자정이 넘도록 공부했고, 주말도 반납했다.

하지만 그 많은 시간 중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부모님의 기대가 있었고, 주변 친구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을 벗어나야 할 이유도, 벗어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많다.

과학고와 민사고를 준비하며 만난 친구들, 외고에 진학해 새롭게 만난 친구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지금까지도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 시절 얻은 가장 큰 것은 좋은 학교의 졸업장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1등을 하던 아이는 어느새 공부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성적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좋은 성적이 더 이상 특별한 즐거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밝음을 잃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운동하고, 장난치며 짧은 쉬는 시간에도 즐거운 일을 찾았다.

어디로 갈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조금씩 선택하고 있었다.

과학고와 민사고를 거쳐 외고에 진학한 경험은 계획대로 되지 않은 첫 번째 진로의 기록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는 배웠다.

원했던 곳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곳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다만 좋은 곳에 도착했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원하는 곳인 것도 아니었다.

세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여전히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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