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나는 미움을 받기로 했다. 매번 달라지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 자신을 태워가며 살 만큼 인내심도 크지 않았고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모두의 사랑을 받기보단 일부의 미움을 받는 게 훨씬 낫다. 더욱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돌아오지 않는 기대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밀고 당기는 건 지겨웠다. 그래서 예비남편이 요구하는 내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나기로 했다. 그도 본인 대로 살길 바랐다.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기분이 나빠지면 서로 버럭 하곤 했다.
“왜 이러는 거야?”
이 말을 오빠 입을 통해 들어보니 한 대 맞은 것 같이 머리가 띵해졌다. 나는 진심을 다했을 뿐인데.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서로 가까운 사인데 대화가 왜 힘들지? 남들이랑은 아무리 기분 나빠도 이야기가 잘 되는데 참 희한하다.’
악마에게 골탕 먹은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주 친한 친구들이랑 갈등이 생겨도 잘 푸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오빠도 당연 그럴 거라 생각한 게 큰 실수였다. 한 번 엮인 끈은 풀기 어려웠다.
서로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빠가 바라는 내 모습은 그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자연스레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갈등이 고조될 즈음 오빠가 속마음을 대놓고 꺼내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뼈를 때리기로 결심했나 보다.
생각해 보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라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그는 순하고 성격이 부드러운 여자를 원하는 것 같았다. 자기 말을 잘 따르고 칭찬을 하는 여자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형이라고 버릇처럼 말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지혜롭고 똑 부러진 여자를 원했다. 사치를 하면 안 되고 돈을 잘 관리하며 적어도 남자에 대한 고마움을 알길 원했다.
오빠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는데 자기 엄마 때문이란다. 오빠 엄마는 그가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이랑 거리가 아주 멀었다. 나를 만나고 보니 점점 알수록 자기 엄마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어서 속은 기분이라고 투덜댔다. 자기가 상상하는 여자는 일본여자처럼 상냥한 사람이라는 얘기에 난 쉬이 동의하지 못했다.
‘왜 갑자기 자기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갑자기 다른 사람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멈칫했었다. 그리고 일본을 언급한 게 불편해졌다.
내가 만나본 일본 친구들은 그가 상상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국적으로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국가와 출신에 대한 선입견은 어디든지 있기 마련이다. 한국도 미국도 예외사항은 아니었다. 내 뚜껑이 열린 것 같았다.
“난 오빠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잘 모르겠어. 일본 여자들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바로 문제 됐을 거야.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나에 대한 걸 말해.”
“팩트를 말한 건데 뭐가 그리 예민해?”
“불만이 많은데 나랑 왜 결혼하는 거야?”
“너라면 결혼해도 될 사람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구나. 내가 오빠 말을 항상 따르지 않는 건 인정해. 납득하기 어렵거나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건 따르기 어려울 뿐이지. 다른 건 나도 충분히 하고 있어. 혹시 이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야?”
“네가 검소한 건 맞아. 그래도 내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 들어줄게.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내가 말하는 걸 그대로 들어주면 돼.”
“오빠. 난 오빠가 하자는 대로 따를 때가 있어. 오빠 말을 들어줬어. 칭찬도 많이 했고 재정도 아낄 건 아꼈어. 나도 불필요하게 돈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내 대답을 들은 오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건 알아. 내가 불편하다는 거야.”
“오빠. 오빠는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지금 나에게 바라는 것 같아. 혹시 나에게 기대를 품은 게 있어?”
다채로운 표정을 내뿜던 오빠 얼굴이 갑자기 어벙해졌다. 삐걱대는 모습이 녹슨 양철 로봇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미안하다.”
나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오빠의 숨은 수수께끼 찾기에 완전히 질렸다.
“난 숨은 뜻을 찾기에 약하다는 거 알잖아. 내가 하루아침에 한국 여자가 되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럴 거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만나. 내가 놔줄게. 이러는 거 지긋지긋해.”
놓아준다는 말은 그때 당시에 아주 큰 폭탄선언이었다. 쌓인 게 터졌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오빠가 아주 새파랗게 질린 채로 입술을 떨며 나를 극구 말렸다. 나는 한국에서 사람들의 숨은 의미 찾기와 눈치 챙기기에 질린 상태였다. 여기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답을 이어갔다.
“난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 우리가 문화가 다른 거 알잖아. 오빠도 그걸 알고 결혼하는 거잖아?”
예비남편은 나에게서 한국을 찾았다.
나는 오빠가 내 장점을 보고 나랑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모습이 될 수가 없었다. 문화적인 것과 맞물려 있어 나를 질식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런 부분 때문에 내 가족들과도 친밀하진 않다. 엄마 아빠도 동생과 달리 나랑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살갑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친밀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때론 저주와도 같다. 이중 정체성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는 것과 같다. 가족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을 예비남편에게 들으니 꽤 상처였다.
그이도 나에게 벽을 느낀 것 같았다. 오히려 잘 되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겪는 관문이기도 했다. 여기서 내 사람이 될지 남이 될지 대부분은 정해졌다. 이중 문화를 가지면 응당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한평생을 모국에서도 타국에서도 소속되지 못한 채로 살 각오를 매번 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내 공백을 채워주진 못했다. 서로 알아가려면 시간 만이 답이었다. 과정 속에서 받는 상처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리 모르니 일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내 마음이 바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쓰라렸다.
존중하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다.
존중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인간을 보는 눈이 있어서 마냥 바라기만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곤 하니까.
생각해 보니 난 꽤나 미움을 받아왔다. 양가 첫인사 때 식사를 대접하다가 세 번 거절 후 받아들이는 문화를 몰라 미움을 받았다. 그때 내가 특이하다는 말이 들렸다. 시간이 지나니 등 앞에 모인 나방 떼가 흩어지듯 조용해졌다.
안쓰러운 마음에 집을 한 채 마련해 주겠다는 내 아빠의 호의를 ‘아빠가 필요한 곳에 쓰는 게 더 낫다’며 거절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힘든 상황이니 굳이 그걸 주지 말고 노후에 사용하는 게 낫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나에게 혼수에 쓰라며 이천만 원을 주길래 뭐가 아빠 속을 상하게 했나 싶었다.
한 번은 오빠가 나에게 먼저 닭 다리를 하나 주는 것에 담긴 의미를 몰랐다. 나는 오빠에게 닭 날개를 하나 주었다. 남은 닭 다리 한 개를 내가 먹었더니 졸지에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귀한 닭 날개를 줬는지 뭐가 나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겐 닭 날개가 닭 한 마리에 얼마 안 나오는 귀한 부위였다. 텍사스에서는 버팔로 윙이 최고인데 영문 모를 노릇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들은 닭 다리에 진심이었다. 닭 다리를 먼저 준다는 건 상대방을 매우 아낀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늦게 알게 되었다. 그가 왜 나에게 뻔뻔하다 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억울했다. 혼자서 닭 날개를 다 먹어버린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었다. 난 닭 날개 좋아하는데!
그와 반대로 나는 굳이 말하진 않았다. 사랑하니까 덮어주려 했다. 한국이 닭 다리에 진심이었으니까. 내가 한국 문화를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미안해했다. 오빠는 오히려 바로바로 나에게 말하곤 했는데 대부분이 내가 차갑다, 이기적이다, 일방적이라는 그런 것들이었다. 딱 보니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나에게 전부 다 말하고 있었다.
한국 친구들도 귀에 박히게 말한 것들이다. 이것 때문에 여기에서 엄청 고생했었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오빠는 조목조목 매번 나의 단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이럴 정도면 쌓인 게 어지간한가 보다. 그는 이해받길 원했지만 나는 존중받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미안하다 사과를 하면 그걸 의심 삼았다. 보통 다른 사람 같으면 화를 펄펄 내는데 나는 이상하게 여유가 있다며 꼬아보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예비남편은 무척이나 날이 서 있었다.
한국이 미국이랑 다르니 당연히 불편할 수 있는데 어쩌라는 건지. 나도 오빠가 거슬리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반대로 그가 나에게 불편한 행동을 할 때도 많았다.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줬는데 그는 자기감정을 먼저 내세우곤 했다. 내 기분을 먼저 해결을 해야 자기가 사과를 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요점이었다. 오빠는 나에게 여기는 한국이니 네가 불편한 것은 둘째 치고 한국 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나는 오빠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지금 보니 오빠는 아직이다.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체념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요즘 외국인들이 부쩍 보이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을 인정할 순 없는 걸까 싶었다.
나에게 이해해달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돼 물었다. 그이는 항상 자신이 느낀 기분을 말했을 뿐, 원인은 항상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말할 줄 알아야 했다.
“이해받길 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가르쳐 줘. 생각하는 거랑 말하는 건 달라.”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긁적일 때가 엊그제 일 같다. 지금은 나도 참지 않지.
어쩌면 착하게 산다는 것은 존중받는 거랑 다른 일일지도 모른다.
예비남편이 기대하는 모습을 벗어나니 우리 관계에 진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미움을 사고 나서부터 나는 오빠가 점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국 사람으로 살기를 관뒀다. 그리고 그의 장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길래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없는데.
이건 나의 작은 복수다.
얼마나 많은 장점을 들고 있는지 오빠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
어디 칭찬 세례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당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