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다는 것은

27화

by명형인

내가 예비남편에게 칭찬을 더 많이 해주어야겠다 결심한 이유는 복수뿐이 아니었다. 8년 가까이 연애를 해 본 바로 오빠는 무던한 타입이 절대 아니었다. 이런 장소와 상황에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하다 보니 그런 면이 그의 예민함을 많이 가려주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상상보다 훨씬 섬세한 남자였다.


그래도 장점은 많았다.


“오빠는 나보다 길을 더 잘 알잖아.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할 수 있는 거 대단해. 결혼식 당일에는 늦으면 안 되니 가는 길을 오빠에게 맡길게.”


“오빠가 나보다 사람들과 조율을 더 잘하는 거 같아. 도와줘서 고마워.”


“내가 하려고 했는데 벌써 다 정리를 해놨네. 사랑해.”


“화날 수 있는 상황인데 침착하게 설명해 줘서 고마워.”


칭찬을 건넬 때마다 오빠는 손사래 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럼에도 결혼 준비를 하면서 오빠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게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가 없는 이벤트였기 때문에 사람의 바닥을 보기 쉬웠다. 일부러 이렇게 서로의 바닥까지 퍼 올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민한 걸 타고났지만 오빠는 결이 달랐다. 카피바라의 탈을 쓴 고슴도치였다.


칭찬을 받으면 어깨가 펴질 법도 한데 예비남편은 오히려 점점 작아졌다.


우리가 싸운 문제들은 대부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빠가 왜 힘들어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언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내가 제일 어려웠던 것은 어르신 앞에서 눈을 맞추면 안 되는 점이었다. 이게 되게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눈을 맞추지 않으면 혼났다. 그게 버르장머리 없는 거였다. 내 아빠는 어디 자기 앞에서 눈을 부라리냐며 얼른 깔으라고 호통쳤다. 그럴 때마다 예비남편은 말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음식은 또 가족들이 너무 빨리 먹어서 내 앞에 있는 접시가 텅텅 비는 게 일상이었다. 나 혼자서 우물우물 거리는 상황은 너무 이상했다. 내 가족들은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이미 체념한 표정이었다.


오빠 집에 갔었을 땐 모두 자기 앞에 놓인 텅 빈 그릇을 보며 내 눈치를 엄청 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음식물이 목에 메일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속상한 얼굴로 내 등을 두드려주고 친히 밥을 숟가락에 담아 먹여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발 혼자서 먹고 싶다고 오빠를 밀어냈다.


“아직 십 분도 안 지났어. 가족들과 좀 이야기 나누면서 기다려줘.”


나에게 눈치를 주던 오빠 가족들도 내가 사레가 들려 켁켁대면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기다리겠다고 나를 재차 안심시켰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불편해질 텐데 굳이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늦게 먹는 나나 성질이 급해 눈치를 주는 상대나 빨리 먹이려고 숟가락을 내미는 그나 잘잘못을 따지는 순간 셋 중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어야 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항상 생각했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는 나에게 꼭 그렇게 다그칠 필요가 없었다며, 화낼 필요도 없었다며, 한국이 너무 밉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한국이 문제겠냐며, 사람들은 다 다를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왜 자꾸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생각하는 건 알았다.


오빠는 내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앞에 펼쳐진 잡초들을 뽑으려 그 난리를 쳤었다. 그냥 내가 알아서 갈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가 화를 내는 방식도, 나에게 자신을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방식도 그가 살아온 세상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누가 나를 내버려 뒀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고 진짜 그냥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먼지가 되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결혼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눈물을 흘리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오빠가 더 이상 따지지 않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국을 들먹이지 않고 나를 그대로 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바람이 들었나 싶었다. 한 번은 오빠가 자기 엄마 아빠에게 화내는 모습을 봤다.


“내 아내 될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야.”


오빠는 장인어른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도 항상 나를 나무랐는데 이번엔 달랐다. 딱 이 대 이 구조가 되어서 내 편을 드는 오빠를 보고선 이제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소란을 들으면서 왜 이리 어렵게 돌아왔나 아쉬운 마음을 혼자 달랬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함께 살아가는 게 이렇게 어려워지는 걸까.


정답을 좇는 건 여섯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거나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어 줄 문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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